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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누명' 허리케인 카터에 무죄 선고한 美 판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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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25 08:57:39 수정 : 2023-06-25 08: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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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96년 연방법관 지낸 리 사로킨
美 수사기관 만연했던 인종차별에 '철퇴'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이른바 ‘허리케인 카터’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인권 옹호에 앞장선 것으로 평가되는 전직 연방판사 리 사로킨이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24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사로킨은 캘리포니아주(州) 샌디에이고 해변에 있는 자택에서 지난 20일 지병으로 숨졌다. 사로킨은 법관직을 은퇴한 뒤 노후를 보내기 위해 샌디에이고 인근에 집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리 사로킨.(1928∼2023). AP연합뉴스

고인은 1928년 11월 뉴저지주에서 태어났다. 명문 다트머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20년 넘게 변호사로 활동한 고인은 절친한 친구가 뉴저지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후보에 출마하자 그 선거자금 모금 책임자를 맡은 것을 계기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1979년 9월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민주당원인 고인을 뉴저지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15년 이상 지방법원 판사로 일한 고인은 역시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이던 1994년 뉴저지주를 관할하는 제3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승진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안 된 1996년 고인은 고령을 이유로 법관직 은퇴를 선언하고 기후가 좋은 캘리포니아주로 이전했다. 당시 나이 67세였다.

 

고인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5년 허리케인 카터 사건 판결이다. 본명이 루빈 카터(1937∼2014)인 허리케인 카터는 원래 유명한 권투선수였다. 태풍이 몰아치듯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서 ‘허리케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1966년 뉴저지주의 한 선술집에서 흑인 2명이 백인 3명을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친구 존 아티스와 함께 경찰에 체포됐다. 당사자들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법원은 종신형을 선고해 확정됐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으며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이 두 사람의 무죄 입증에 나섰다. 결국 20년 가까이 지난 1985년 뉴저지주 연방지방법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는데 당시 담당 판사가 고인이었다. 판결문에서 고인은 “카터와 아티스에 대한 기소는 이성보다는 인종차별에 더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 등 수사기관을 질타했다.

 

19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허리케인 카터의 사연은 1975년 가수 밥 딜런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1999년에는 노만 주이슨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는데 할리우드 스타 덴젤 워싱턴이 허리케인 카터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으로 워싱턴은 이듬해인 2000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허리케인 카터’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루빈 카터(1937∼2014). 1960년대 유명한 권투선수였던 그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20년 가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끝에 1985년 리 사로킨 판사의 무죄 판결로 풀려났다. 연합뉴스

훗날 고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1985년 11월 7일에 무죄 판결이 난 것을 기념해 허리케인 카터가 매년 11월 7일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하곤 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도 고인은 수십년 동안 흡연을 한 끝에 사망한 이에게 담배 제조사가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노숙자가 단지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공공도서관 이용을 금지하도록 한 조치는 위법이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고인의 부인은 “그는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은퇴 후에는 극작가로 변신해 사회정의와 시민권 등을 주제로 12편의 연극 대본을 쓰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외에도 5명의 자녀와 11명의 손주가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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