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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역사 굴곡의 흔적…기시다 정치 기반 ‘히로시마’ 노학자가 변두리 전시관에 편지 보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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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07 13:16:04 수정 : 2023-05-07 13: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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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에 있는 달천철장 전시관의 모습. 이보람 기자

울산 도심에서 차로 25분 정도 경북 경주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국도변에 ‘달천철장(達川鐵場)’이라고 간판이 내걸린 토철, 쇠와 관련한 전시관이 있다. 2019년 12월 문을 연 곳으로, 지하 1층, 지상 1층(연면적 400여㎡) 규모의 지방 변두리의 자그마한 전시관이다. 이곳엔 7일부터 방한 중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정치적 기반 지역인 히로시마 한 유명 노학자가 쓴 일본어 편지가 액자로 내걸려 있다. 기시다 총리가 방한 중인 가운데, 달천철장과 노학자의 편지, 철 생산과 관련한 굴곡진 한일 역사가 주목받고 있다. 

 

달천철장 전시장 벽면에 걸린 편지는 시오미 히로시(潮見浩) 히로시마대학 문학부 명예교수의 ‘달천철장 철광산 보존에 관한 요청서’다. 히로시마대학은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인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대학이다. 기시다 가문은 이 히로시마를 기반으로 3대째 정치가를 배출한 명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역구를 찾으면 수시로 이 히로시마대학을 찾아 학자들을 만난다.

 

달천철장 전시관에 걸린 시오미 히로시 교수의 편지. 이보람 기자

편지는 2000년 10월 울산광역시장 앞으로 온 것이다. 시오미 교수는 당시 고대의 철 생산을 연구하는 ‘타타라연구회(たたら硏究會)’의 회장이었는데, 달천철장 철광산부지가 도시 개발 예정 부지에 편입돼 없어질 위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편지를 보내왔다.

 

일본어로 된 편지글엔 “달천철장은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에서 고대국가 형성기의 철 생산과 유통을 고찰하는 데 매우 귀중한 유적군이다. 부디 울산시 도시계획 추진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존해주시길 진심을 담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경하여 사뢴다는 뜻의 경백(敬白), 삼가 아뢴다는 근계(謹啓) 등 조심스럽고, 공손한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편지는 달천철장을 보존해 달라는 일본인 학자 등의 서명부와 함께 왔다.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두 차례 왔다고 한다. 달천철장 전시관 관계자는 “일본 타타라연구회가 고대 철의 성분을 분석했더니 비소 성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달천철장에서 생산된 철만 가진 특징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학자들이 편지에 서명까지 보내며 달천철장 보존에 관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달천철장은 고대 영남지역 최대 철 생산지였다. 그 존재는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달천철장에서 세공(해마다 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던 공물)으로 생철 1만2500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철장이 있었다고 언급된 경주, 안동, 영덕, 합천 등지에서 바친 철 중 가장 많은 양이다.

 

달천철장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굴곡진 역사도 담고 있다. 임진왜란 등으로 피폐해진 민생 개선을 위해 효종 8년인 1657년 이의립 선생이 이 철장을 재발견해 활용했다. 양질의 무쇠 제조법을 개발해 나라에 공납했단다. 이후 이의립 선생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던 철장은 1906년부터 일본인이 관리했다. 이 시기부터 흙에서 쇠를 뽑아내던 토철 제련은 종료됐고, 철과 광석 개발을 시작해 일본이 모두 약탈해갔다고 한다. 한·일간 ‘셔틀외교’ 부활에 즈음해, 달천철창에 아로새겨진 지난한 역사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다. 

달천철장 전시관이 있는 달천철장 유적공원에는 고대 제철작업인 쇠부리기술을 복원하기 위한 실험터가 있다. 이보람 기자

달천철장은 광복 후인 1964년 대한철광개발 울산광업소로 재탄생해 철광석 생산 작업이 이어졌다. 2002년 폐광되면서 광산으로서의 달천철장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시오미 교수의 편지 등으로 문화적 가치가 주목받게 됐고, 2003년 4월 울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40호로 지정돼 발굴조사가 이어졌다. 2005년부터는 달천철장을 기리기 위한 ‘쇠부리축제’가 열리게 됐다. 쇠부리는 토철 등 철의 원료를 녹이고 다뤄서 가공하는 모든 제철작업을 일컫는 말이다. 정재화 쇠부리축제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한일 관계의 새로운 변화 속에 지금은 사라진 쇠부리기술을 복원하는 것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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