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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물이 된 한국 금관…도쿄박물관 ‘오구라컬렉션’ [일본 속 우리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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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5 16:00:00 수정 : 2023-03-26 14: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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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내 조선반도실(한국실), 남성 관람객 두 명이 조선시대 회화, 서예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마음에 들었던 지 한참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 앞에 놓인 8점의 안내판 모두에는 오구라컬렉션 보존회 기증품이라는 사실이 적혀 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전경. 

고대 한반도의 금속유물을 모은 전시대에는 10여 점의 전시품이 놓여 있다. 중간 쯤에 나란히 배치된 귀걸이, 팔찌, 관모 등 6점에 눈길이 간다. 안내판에 도장처럼 찍혀 일본 정부가 지정한 ‘중요문화재’임을 밝힌 빨간 글씨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재 지정체계에서라면 보물에 해당한다. 뛰어난 가치를 가졌음을 일본 정부가 공인한 것이다. 이것 또한 전부 오구라컬렉션 보존회 기증품이다.  

 

두 장면을 합치면 도쿄박물관 소장 오구라컬렉션을 대표하는 수식어를 조합할 수 있다. ‘최대, 최고의 컬렉션’, 오구라컬렉션을 대표하는 수식어다. 

 

오구라컬렉션(小倉コレクション). 도쿄박물관 한국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명칭이다.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년)라는 사람이 있었다. 1904년 일본에서 한반도로 건너와 전기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 시절 ‘전기왕’으로 불렸다. 당대 한반도 최고의 부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컸고, 그것이 한국 유물 수집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양국의 교류를 증명하는 한국 유물이 일본 역사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1921년 경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해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이뤘다. 서울 시내 스무 칸짜리 기와집 한 채가 4000원 정도이던 그 시절 오구라가 문화재 수집에 들인 돈이 2000만원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1945년 일본으로 돌아간 뒤 오구라컬렉션 보존회를 만들어 수집품을 관리하다 1984년 1110건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중국 유물(32건), 일본 유물(41건)이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 유물이 1030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 유물을 종류별로 보면 고고 유물이 557건으로 가장 많아 한국 고대사에 대한 오구라의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사를 통한 일본사 규명이 관심사였던 만큼 양국 교류가 특히 활발했던 고대의 유물 수집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도쿄박물관은 동양미술 소장품이 “질이 높은 개인 컬렉션에 유래된 기증품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하며 중국 유물 중심인 ‘다카시마 컬렉션’, ‘요코가와 컬렉션’, ‘히로타 컬렉션’과 함께 오구라컬렉션을 소개하고 있다. 도쿄박물관 전체 11만 여건의 소장품 중 외국에서 유래한 것이 약 1만7500건. 이 중에 국보 14건, 중요문화재 81건이 있는데 모두 한국, 중국 유물이다. 지정된 한국 유물 중 상당수가 오구라컬렉션에 속한다.    

 

이런 위상은 현재 한국실 전시품을 따져보면 단번에 드러난다. 한국실 전시품 192건 중 오구라컬렉션에 속한 것이 104건(54.1%)이다. 이 중 21건은 중요문화재, 혹은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구라컬렉션실’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눈에 띄는 전시품 몇 가지를 살펴보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5년 발간한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에 소개된 금제관과 금제관 세부. 

금제관은 전시실 입구에 단독으로 배치돼 관람객들이 처음 만나는 유물이다. 도쿄박물관이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6세기 중엽의 것으로 보이는데 삼성문화재단 소장 고령금관과 함께 대가야 최고위급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동양미술 100선’(한글판)에 실린 금동관모(왼쪽)와 귀걸이. 두 점 모두 오구라컬렉션 보존회 기증으로 표시돼 있다.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6세기 금동관모는 모자 좌우에 날개 같은 모양의 장식판이 붙어 있고, 가늘고 긴 날개모양 장식이 꼭대기 위에 달려 있는 독특한 형태다. 도쿄박물관이 동양관 소장품을 대표하는 유물 100개를 골라 소개한 ‘동양미술 100선’에 올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간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에 소개된 견갑형동기

역시 100선에 꼽힌 견갑형동기(肩甲形銅器)다. 서기전 3~1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가죽 주머니 장식 또는 어깨를 가리는 갑옷의 일종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고사리 모양, 호랑이 혹은 개로 보이는 동물, 사슴 무늬가 선명하다. 사냥과 관련된 의례용품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박물관은 “조선 주동기술(鋳銅技術·동을 다루는 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가사유상 사진을 활용한 도쿄국립박물관의 엽서.

국보 83호로 대표되는 고대 한국의 반가사유상은 종류가 많을 뿐 아니라 예술성이 뛰어나다. 6~7세기에 특히 많이 만들어졌다. 오구라컬렉션의 이 반가사유상은 또 다른 우수 사례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높이 16.3cm의 크기로 7세기 작품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간 ‘오구라 컬렉션 한국문화재’에 소개된 토우. 

토우(土偶)들은 가장 사랑스런 전시품이다. 사진 속 왼쪽 아래 새 모양 토우는 주둥이에 물고기를 물고, 날개를 살짝 포개고 있어 고대 한반도인의 유머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일본 중요미술품이다. 

 

그러나 오구라컬렉션은 우리에게 기꺼운 존재일 수만은 없다. 최대, 최고의 컬렉션이라 더욱 그렇다. 이 컬렉션에는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도쿄박물관 한국실에서 심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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