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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정쟁화’에 퇴색된 추모…분향소 조문객·보수 유튜버 잇단 충돌 [이태원 참사 100일]

, 이태원 참사

입력 : 2023-02-05 21:00:00 수정 : 2023-02-05 2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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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설치 외면
서울광장 분향소 철거 놓고 충돌 예고
유가족 대표, 강제철거 시 분신 경고도

이태원 분향소에선 ‘2차 가해’ 이어져
보수단체·유튜버, 조문객에 욕설·도발
돈벌이 목적으로 가짜뉴스도 퍼뜨려

이태원 압사 참사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모적 정쟁이 사고 발생 100일이 넘도록 진정되지 않고 있다. ‘네 탓 논쟁’에 매몰된 정치권의 공방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기대를 모았던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실망스러웠다. 정쟁의 장으로 전락해 국조 본연의 목적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논의는 사실상 실종됐다. 유가족과 분향소 조문객을 향해 조롱과 막말을 일삼는 일부 유투버도 애도 분위기를 흐렸다. 시민의 피로도를 높이는 이러한 행태는 사고 자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멀어지게 하고, 희생자 추모와 생존자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편히 쉬소서” ‘이태원 압사 참사’ 100일을 맞은 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전날 이곳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고, 서울시는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통보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추모는 뒷전…“지나친 정쟁 비화 답답”

 

5일 국회는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여야 지도부, 유가족 등이 참석한 추모제를 열었다. 여야는 유족의 요구 사항인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설치, 분향소 설치 등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추모제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정부와 집권여당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다”며 “100일간 피해자와 유가족 입장에선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다는 것으로 안다. 국민의힘은 유가족과 함께 미래를 바라보면서 집권여당의 책무를 다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유가족 측에서는 ‘각성하라’, ‘반성하라’고 항의하며 그간 정쟁에 머무르며 진상파악 등에 소홀했던 정치권을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유가족들은 서울시가 시청광장에 설치한 천막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려 할 경우 분신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배우 고 이지한씨 아버지인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제에서 “내일(6일) 서울시에서 (오후) 1시에 저희의 조촐한 천막 분향소를 철거하러 올 경우 저희는 휘발유를 준비해놓고 그 자리에서 전부 이 아이들을 따라갈 것”이라며 “그 날이 당신과 우리의 마지막 날인지, 앞으로 영원히 국민, 시민으로서 같이 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우측으로 보수 단체가 ‘이제 그만 합시다’라는 문구를 쓴 트럭을 세워놓고 있다. 김계범 기자

세계일보 취재진이 앞서 지난달 중순부터 약 2주 동안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의 희생자 분향소, 이태원 일대를 돌며 만난 시민들은 하나 같이 ‘참사의 정치화’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태원에서 의류 판매를 하는 상인 이모(65)씨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참사를 두고 서로 정치 싸움하느라 바쁘고, 유가족과 상인에 대한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며 “이태원에서 집회하는 태극기 부대 등이 정치권에 믿는 구석이 있는듯 막무가내인데, 좀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 근처에 있었다고 한 대학생 장영윤(23)씨도 “안타까운 사고를 이슈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100일 가까이 지켜본 결과 앞으로 어떻게 이런 사고를 막을지보다 누구 책임이 더 큰지 논하는 것에 치중됐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분향소에 방문하기 위해 인천에서 온 신모(50)씨는 “힘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권력을 가져야 하지 않냐”며 “최소한 대통령이 유가족 앞에서 사과하는 진정성은 보여야 밑에 있는 이들도 움직일텐데, 계속 모른 척 하며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159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분향소는 이번 사건의 정치적 갈등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된 장소가 되어버렸다. 특히 분향소 주변에 추모를 방해하는 선전물을 내걸고 시위하는 보수 단체·유튜버의 2차 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 ‘국민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이제 그만 합시다’ 같은 현수막이 분향소를 에워싼 풍경은 유가족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분향소 천막을 지키는 유가족을 향해 거친 비난을 쏟아내거나 유튜브로 분향소를 24시간 생중계하며 시민의 발길이 닿기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에서 일하는 공익인권법재단 조인영 변호사는 “신자유연대 등 보수 단체들이 초반에는 분향소 천막을 향해 하루 종일 카메라를 켜 놓고, ‘시체팔이’ 같은 표현도 썼을 정도”라며 “정치적 주장을 하지 말라고 외치지만, 이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단체”라고 말했다. 반면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시민대책회의 같은 좌파 단체가 집회한다고 하면 선순위 신고를 통해 우리가 먼저 가서 못 하게 하거나 맞불 집회를 하는 것일뿐”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로 가는 건널목 앞에 유가족과 연대하는 정치권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가득 내걸려 있다. 김계범 기자

조 변호사에 따르면 유가족협회가 분향소를 처음 설치할 때만 해도 신자유연대는 ‘진상규명을 도와주겠다’며 참여연대나 민변 대신 자신들과 함께 하자고 접근했다. 그러다 유가협이 진보 단체와 같이 움직인 뒤로 “추모제 등의 행사 때마다 훼방을 놓고 있다”고 조 변호사는 말했다. 유가족의 발언을 녹음해 스피커로 크게 틀고, 모욕의 수위도 상당해지면서 지난달 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이 접수됐다. ‘신자유연대 등이 명백히 참사 추모를 방해하고 있음에도 경찰이 이를 방치하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제기다. 이에 인권위는 보수단체의 시위에 대한 경찰의 조치가 적정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유가협은 지난해 12월 29일 신자유연대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분향소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현재 법원은 ‘분향소 주변 집회와 현수막 등으로 추모감정이 훼손됐다’는 유족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가처분 신청 심리에 들어갔다.

 

경찰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정치권의 미온적 대처에 의문을 표한 이들도 많았다. 현재 용산구청은 희생자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 아닌 한 현수막 설치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온 이강학(43)씨는 “신자유연대 현수막이 잔인하고 비인격적인 느낌이 든다”며 “추모 공간에 저런 현수막을 허가해줬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사건이 잘못 비추어지게끔 선동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가족이나 분향소에 대해) 진짜 문제가 있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분향소 지킴이로 자원봉사 중인 강학원(33)씨도 “지나가는 시민들이 현수막에 대해 무섭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조문객 A씨가 직접 준비한 의상과 소품을 활용해 대통령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는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가 A씨의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조문객 도발하며 욕설 유도…통제불능 유튜버

 

이들 보수단체 유튜버와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 간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초 유가족 측의 요구로 신자유연대 관계자들이 상주하는 천막과 분향소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됐지만, 현장은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온라인과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확산한 유언비어, 미확인 음모론 등은 참사 이후 줄곧 불필요한 소음을 키우는 실정이다. 지난달 31일 분향소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159배가 진행된 현장에서 만난 정모(62)씨는 “사람들이 언론을 안 보고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한탄했다.

 

취재진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19일 조문객과 유튜버가 충돌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날 오후 3시쯤 50대 남성 조문객 A씨와 김상진 대표 간 욕설이 섞인 고성이 오갔다. 입씨름 끝에 흥분해서 달려드는 두 사람을 경찰이 겨우 떼어놨다. A씨가 자신을 촬영하는 김 대표를 향해 “개XX야, 허락 없이 촬영하지 말라고!”라고 소리치자 김 대표는 “욕설 잘 하는 것들 중에 간첩이 많아. 고소장에 첨부하려고 채증하는 거야”라고 응수했다.

 

역술인 천공처럼 흰머리 장발에 흰색 가운을 입고 온 A씨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상징하는 인형을 카트에 실은 뒤, 분향소 영정을 한바퀴 도는 퍼포먼스를 했다. A씨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 참사 앞에 정치적인 것을 따지기보다 분향하러 올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희생자 조문을 오지 않은 윤 대통령을 비판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본 김 대표는 그 모습을 생중계하며 다가왔다. 평소에는 ‘신자유연대’라고 쓰인 빨간 천막 안에서만 방송하다가 분향소 쪽으로 온 그는 A씨를 향해 야유하며 “꺼지라”고 소리쳤다. A씨가 분향소에서 나온 뒤에도 계속 그를 비추며 “딱 좌파 스타일”이라거나 “분향소가 좌파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A씨가 카메라를 피해 들어간 카페까지 찾아와 “왜 분향소에서 정치 퍼포먼스를 하냐”고 따져물었다.

 

이를 도발로 받아들인 A씨는 불쾌감을 표하며 욕설을 했고, 김 대표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김 대표의 방송은 계속됐다. A씨가 “촬영하지 말라”고 거듭 의사를 밝혔지만, 김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A씨를 비추며 “금융 치료(벌금)를 받아야 정신을 차리지”라고 말했다. A씨는 분향소 앞에서 도발하는 방송을 하는 유튜버들에 대해 “저게 저 사람들 돈벌이”라며 “조문객들이 초상권 침해로 소송 걸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추모 장소가 싸움으로 얼룩지는 것을 보며 한 유가족은 “가림막 설치 이전에는 분향소를 향해 스마트폰 삼각대 3~4개를 설치한 적도 있었다. 설치 이후에는 방송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김선영·정지혜·박유빈·조희연·김나현·안경준·유경민·윤솔·윤준호·이규희·이민경·이예림·채명준·최우석·김계범·이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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