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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얕봤다”… 드론쇼에 무인기 도발 나선 北, 한국은 또 ‘뒷북’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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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28 06:00:00 수정 : 2023-01-28 10: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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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9월 9일 평양 5월1일 경기장.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북한은 이날 집단체조 공연 ‘빛나는 조국’을 선보였다.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경기장 상공에 드론 수십대가 나타났다. 대형을 구성한 드론들은 경기장 상공에 ‘빛나는 조국’이라는 대형 문구를 새기며 화려한 드론쇼를 펼쳤다. 

 

지난 2018년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식이 열린 평양 5월1일 경기장 상공에 수십대의 드론들이 허공에서 ‘빛나는 조국’이란 대형 문구를 형상화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전문가들은 “군집 드론들을 충돌없이 정확히 이동시키려면 정교한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북한 무인기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평가는 남북 화해 분위기에 묻혀 버렸고, 군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4년여가 흐른 지난달 26일. 북한 소형무인기가 서울 상공에 진입,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P-73)을 지나갔다.

 

군은 요격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북한 무인기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대비책 등도 미비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군, 北 무인기 위협 인식 부족 드러냈다

 

합동참모본부는 26일 무인기 침투 관련 전비태세검열실의 검열 결과를 설명하면서 “북한 소형무인기에 대한 위협 인식이 부족했고, 대비도 후순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6월 21일 강원 인제군에서 발견됐던 북한 무인기가 회수 직후 국방부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북한 무인기 수준을 2014년 경기 파주, 인천 백령도 등에서 발견된 기체를 기준으로 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 기체는 DSLR 카메라 등의 상용 장비를 탑재한 채 비행경로 사전 입력 방식으로 날아왔다. 당시에는 “큰 위협이 안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북한은 무인기 기술을 축적하면서 성능을 높였다. 2017년 6월 강원 인제군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2014년 백령도에 추락했던 것과 유사하면서도 엔진 등의 성능이 향상됐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공개된 드론쇼는 북한 무인기 관련 기술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수십대의 드론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모양을 만들어내는 드론쇼를 하려면, 무선에 의한 정밀비행제어기술, 정밀위치인식항법 기술, 수십m 수준의 오차를 수㎝로 좁히는 실시간 이동측위(RTK) 기술 등이 필요하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무인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2018년 이후로 대규모 정치행사에서 다수의 드론을 활용한 드론쇼를 진행했다. 이는 북한이 군집드론 운용 개념을 이해하고 있고 관련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2014년에 드러난 무인기보다 기술이 더욱 발전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이란산 자폭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습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북한 소형무인기에 대한 인식을 전환했어야 했다. 

 

적 위협 수준을 정확히 인식하고 평가하는 것은 철저한 대비태세의 첫 걸음이다. 그러나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에 침투하기 전까지 군의 위협 인식은 핵·미사일보다 후순위였다. 

 

이는 북한 무인기 침투 당시 군의 대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육군 제1군단은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19분 레이더로 항적을 포착했지만, 휴전선 북쪽에 있다는 이유로 ‘긴급보고’ 대신 ‘수시보고’로 분류했다. 무인기가 남쪽으로 날아와 상부에 보고되는 과정에서도 분류는 그대로였다. 1군단이 지상작전사령부에 보고한 시점은 최초 포착 40여분이 지나서였다.

 

상황 공유가 늦어지면서 공군작전사령관은 무인기 대비 태세인 ‘두루미’를 낮 12시에야 발령했다. 1군단과 수도방위사령부 간 방공지휘통제통제경보체계(C2A)가 연동되지 않아 수방사는 뒤늦게 자체 대응에 나섰다.   

 

한국군이 운용중인 국지방공레이더. 소형무인기 포착이 가능한 탐지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 수뇌부가 북한 소형무인기 위협 수준을 예전부터 제대로 평가했다면,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상위 군 조직은 일선부대보다 훨씬 많은 참모 조직과 정보수집 채널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북한군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한다. 일선부대의 전투방식을 점검하고, 예하부대에서 보고를 하면 전략적 차원에서 검토해 피드백을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일선부대 보고에만 의지하는 대신 다양한 경로로 수집된 정보를 융합, 일선부대를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일선부대에서 보고한 내용만으로 지휘하면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상태에서 때를 놓친다. 군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최상위 군 조직에 수많은 참모와 정보라인을 배치하는 이유다.

 

공군 장병들이 제논 탐지등으로 적기를 식별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시각에서 볼 때 북한군 위협을 정확히 평가해 최적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무기 소요를 확정하며 일선부대의 대비태세를 정비하는 것은 합참이 해야할 일이다. 합참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합참은 검열을 통해 ‘부실대응’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지휘관 문책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여기에 합참이 “기술적 한계로 초기 상황판단을 대부분 장비 운영자에 의존한다”고 밝히면서 “실무자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모양새다.

 

군 관계자는 “검열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일선부대 등에서는 ‘예하부대 실무자 몇 명 징계하고 끝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돌았다”며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책임있는 직위를 맡겠다는 유능한 실무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괴적 혁신’ 통해 재발방지책 마련해야  

 

합참은 드론부대 창설 등을 포함한 대책을 발표하며 재발방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값싸고 성능이 낮은 북한 소형무인기의 영공 침투 사건을 계기로 위협 인식부터 정보공유 및 전투방식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전쟁 국면을 복잡하게 만들고 혼란을 부추겨 수도권을 위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가의 소형무인기에 레이더 반사장치를 붙여 휴전선 남쪽으로 한꺼번에 투입하면, 우리 군 레이더에는 수많은 북한 항공기가 몰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육군의 천마 지대공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에 대응하고자 지대공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하면, 정밀유도무기가 빠르게 소모된다. 전장은 혼란스러워지고, 전력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소형무인기가 수도권의 민간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자폭 드론 공습을 지속하는 것처럼 북한도 민간 인프라를 무인기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수도권 방어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을 부추겨 정부와 군의 전쟁 수행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같은 문제점에 대응하려면 훈련 방식 전환과 방공체계 통합, 부대간 장벽 타파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모의항적 경로를 사전에 공지하고, 공군 전력 협조도 제한됐던 기존의 무인기 대응 훈련 방식은 장병들과 지휘부에 그릇된 안도감과 대외적인 무력시위 효과만 줄 뿐이다.

 

훈련 과정에서 방어 또는 공격 작전이 실패하는 것을 목표로 공격과 방어훈련을 치열하게 진행해야 한다. 훈련에서 실패했다고 지휘관과 참모를 질책하지 말고, 교훈을 반영해 교리를 발전시키고 다음 훈련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방공포병들이 20㎜ 발칸포로 무인기를 요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합참 제공

북한 무인기 위협으로부터 민간과 군사 인프라를 지키기 위한 민군 통합방공훈련, 공군과 육군 방공부대의 합동훈련도 이같은 방식대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군사보안이나 관료적 문제 등을 이유로 제약을 받는 일선 부대간 정보공유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1군단과 수도방위사령부 간 방공지휘통제통제경보체계(C2A)가 연동되지 않아 수방사가 뒤늦게 무인기 침투를 파악하기도 했다.

 

C4I 체계를 통해 항적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면 방공부대들이 대응에 나설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이같은 조치에 제약을 가하는 기술적, 정치적 문제가 있다면 군 수뇌부가 나서서 해소해야 한다. 일선 부대간 원활한 통신을 위해 최신 무전기를 소부대에도 충분히 배치해야 한다.

 

육군과 공군 방공전력의 유기적인 연계작전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다. 일각에선 이를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지만, 방공전력의 통합은 미국도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하는 난제다.

 

공군 장병들이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실사격훈련에서 미사일을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각 군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방공자산들을 C4I 등으로 실시간 연계하고, 여러 차례 요격을 시도할 수 있도록 다층방어망을 구성한 뒤 이를 토대로 합동훈련을 정례적으로 진행해서 합동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은 정부와 군에 큰 충격파를 안긴 사건이다. 싸구려 무인기지만 수도권을 위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공을 휘젓는 무인기에 맞서려면, 곳곳에 산재한 부대와 장비를 실시간으로 한데 묶을 C4I를 구축하고 정상 가동시키는 것이 필수다. 

 

고도의 기술과 신뢰성을 지닌 C4I를 토대로 실전같은 훈련과 더불어 북한 위협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철저히 점검한다면 우리 군의 대비태세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사건 검열 이후의 조치가 더 중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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