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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탄핵' 주도했던 최병렬 前 한나라당 대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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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02 15:52:50 수정 : 2022-12-04 16: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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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으로 정계 입문… 4선의원 지내
노태우·YS정부 시절 장관 3번에 서울시장도
2004년 대통령 탄핵 후 역풍 맞고 정계은퇴

노무현정부 시절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도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2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2003년 10월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오른쪽)가 국회에서 2004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마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3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명문 부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1963년 조선일보로 옮긴 고인은 처음엔 편집부 기자로 출발했으나 취재부서 전출을 강력히 희망한 끝에 정치부로 옮겨 정치부 기자로 대성했다. 정치부장, 사회부장 등을 거쳐 1980년에는 편집국장까지 올랐다. 데스크로 있으면서 후배 기자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최틀러’란 별명을 얻었다. 고인한테 크게 혼난 어느 후배 기자가 “내가 히틀러 밑에서 일하나, 최틀러 밑에서 일하나” 푸념한 뒤 생겨난 명칭이다.

 

고인이 사회부장이던 시절 사회부의 이른바 ‘시경 캡’으로 경찰 출입기자들을 지휘했던 이가 서청원 전 의원이다. 언론인 시절부터 서로 티격태격했던 고인과 서 전 의원은 2003년 한나라당 대표를 뽑는 경선에서 경쟁자로 맞붙어 ‘그 악연이 참 질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고인이 조선일보에 몸담고 있던 1985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그를 여당인 민정당의 전국구(현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로 점찍었다. 그해 12대 총선에서 당선돼 처음 금배지를 단 고인은 정치부 기자로 오랜 기간 정치권을 취재했던 경험을 십분 되살려 순식간에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알려진 노태우(1932∼2021) 당시 민정당 의원과 친하게 지내며 19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노태우정부에서 고인은 정치인, 그리고 공직자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청와대 정무수석(1988년 2월∼12월), 문화공보부 장관(1988년 12월∼1990년 1월), 공보처 장관(1990년 1월∼12월), 노동부 장관(1990년 12월∼1992년 6월)을 차례로 지내 다른 이들은 평생 한 번도 맡기 힘든 요직을 줄줄이 거쳤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다시 전국구 의원이 된 고인은 이번에는 김영삼(YS) 당시 민자당 총재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밀었다. 원래 야당 지도자였던 YS는 1990년 민정·민주·공화 3당합당으로 여당 대권주자가 되었다. YS가 김대중(DJ)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며 고인은 YS정부에서 서울시장(1994∼1995년)을 맡는 등 여전한 관운을 자랑했다.

최병렬(1938∼2022) 전 한나라당 대표.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국구 의원만 2번 했던 고인은 15대(1996∼2000년)와 16대(2000∼2004년) 국회에선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연거푸 당선되며 4선의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1998년 DJ정부가 출범하며 고인은 그동안은 생소했던 야당 정치인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2003년 노무현정부 들어 제1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에 오른 고인은 당시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당이 초토화하는 위기를 맞는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의혹과 측근비리 등을 들어 탄핵소추를 시도해 국회 통과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곧바로 ‘역풍’이 몰아쳤다. 그해 4월 17대 총선이 예정된 가운데 민심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가로막으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한나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쪽으로 쏠렸고, 결국 고인은 탄핵 추진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대표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정계에서도 은퇴했다. 그 후임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 일명 ‘천막당사’ 생활을 통해 가까스로 민심을 추스른 이가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고인이 떠난 뒤 한국 보수정당은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그리고 현 국민의힘으로 계속 당명을 바꿨고 고인은 줄곧 이 정당들의 상임고문을 맡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회원 자격으로 윤석열 현 대통령 지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4일 오후 1시. (02)3410-6915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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