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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은의멜랑콜리아] ‘님아 그 시장을 가오’에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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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4 23:07:56 수정 : 2022-10-24 23: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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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재래시장 맛집 탐방
미화나 장황한 서사 없이 방송
지역회생 목적 불구 한계 분명
아름다운 실패, 연대 이끌어내

‘님아 그 시장을 가오’는 백종원(이하 ‘백’) 유튜브 프로젝트다. 지역 관광자원 살리기가 목적이다. 백은 재래시장을 살리는 것이 지역을 되살리는 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 식당이 잘돼야 한다고 말한다. 헐거운 인과관계다. 시장의 몇몇 식당이 잘된다 해서 지역이 융성해질 리 없다. 지역 문제는 지역의 문제로 풀어서는 해소가 안 된다. 지방을 살리려는 집요한 목소리는 그 일의 불가능성을 증명하고, 그것이 결국 지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돼 버린다.

‘님아 그 시장을 가오’에는 시장에 대한 미화가 없다. 상인들 인생에 대한 장황한 서사도 없다. 카메라는 한산하고 적적한 시장 풍경을 가감 없이 옮긴다. 시장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내지도 않는다. 식당에는 매뉴얼화된 과잉 서비스도 없다. 돈으로 환산되는 친절도 없다. 시장 식당은 관광과 구경의 대상으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맛에 대한 정교한 설명도 없다. ‘골목식당’에서 보이던 신랄한 지적도, 명쾌한 퍼스널 브랜딩도 없다. 음식에 대한 포르노적인 클로즈업도 없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백: 시장에 뭐가 유명해요? / 상인: 유명한 것도 없어. / 백: 그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해요? / 상인: 살살 한번 댕겨 보이소.

백은 다큐와 예능 사이에서 작동하는 방송인이다.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캐릭터 때문에 프로그램은 대중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아슬아슬 긴장된다. 그 긴장감이 백의 매력이다. 가공된 캐릭터도 아니고, 날것의 불편함도 주지 않는 그 경계에서 백은 운신한다. 백의 이 균형이 그를 대체 불가능한 아이콘으로 만든다.

백이 변했다. ‘님아 그 시장을 가오’는 다큐에 더 가깝다. 상주 국밥집 편에서 그는 스스로 카메라를 들었다. 엉뚱한 카메라 위치와 각도가 낯설고 더 반갑다. 일반 카메라워킹이라면 보일 수 없는 ‘틈’이 가늠된다. 백은 마치 좋은 실패를 위해 힘을 빼는 것 같다.

백은 시장과 지역을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했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장을 둘러봐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 것이다. 재래시장 살리기, 전 지역의 관광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에 가능성이 있다. 실패에도 순기능이 있다. 이 실패는 역설적 기회일 것이다. 프로그램의 성공은 백이 얼마나 오래 실패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백이 이 프로젝트를 지속한다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누군가 또 뒤따른다면, 그 쌓이는 실패가 그 장소를 살릴 것이다. 이 실패들은 부산물을 발생시킬 것이다. 단지 관광상품이나 지역사회의 정량적 발전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와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이다

백은 오래된 것들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처럼 보인다. 후덕하고 재치있고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 잘 먹는 순례자. 이 순례를 잇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지속적이고 아름다운 실패일지도 모른다.

‘님아 그 시장을 가오’에는 새벽 두 시, 연탄불 위에 국물을 우리는 국밥 주인이 나온다. 국밥은 삼천 원이다. 동이 트면 한두 명씩 손님이 식당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연탄구이를 하는 노부부도 나온다. 시부모가 하던 식당을 이어서 한 지 40년째. 그들은 40년간 연탄구이를 하면서 자식을 먹이고 교육시켰다. 이제 건강 때문에 식당을 그만두려 한단다.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않을 거란다. 여기에는 건강을 비용으로 밥벌이하는 엄중한 진실이 있다. 그럼에도 노부부는 식당문 닫는 것을 망설인다. 여기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삶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도시 진주에도 오래된 식당이 있다. 어떤 식당은 리모델링에, 2대, 3대로 이어져서 제법 세련되었고, 어떤 식당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장소감으로 마치 과거로 타임리핑한 듯한 느낌을 준다. 밥 한술 뜨면 마치 미래의 내가 과거 속으로 들어와 치유받는 느낌이다. 이 치유에는 미안함이 들어 있다. 아무 노력 없이 따뜻한 밥을 받아먹는 것에 대한 미안함. 공동체를 묶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미안함이 아닐까.

‘님아 그 시장을 가오’의 장면들 사이에서 어떤 기억과 문득 만났다. 어린 시절, 엄마는 시장에서 반찬을 팔았다. 오랫동안 잊힌 기억이다. 망각 속에 박혀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닥친 기억은 슬프고 아름답다. 망각의 이유는 어린 나의 상처에 있겠지만, 재기억의 이유는 젊은 엄마에 대한 연민에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는 없었다. 새벽에 일찍 나가야 싼 물건을 받아 반찬을 만들어 팔 수 있다. 시장 노점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본 적 있다. 기억은 두 지점에 포커스-인 된다. 하나는 엄마의 반찬이 무척 정갈했다는 것. 또 하나는 엄마가 젊었다는 것. 엄마는 서른셋이었고, 아마도 음식 솜씨는 별로였을 터인데, 손님들은 젊은 새댁이 파는 정갈한 반찬을 사 갔으리라. 어쩌면 밥벌이를 나온 젊은 여자에 대한 애틋함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반찬을 담아간 사람들의 삶도 고단했겠지.

시장엔 밥벌이의 엄격함과 살림의 고단함, 서로에 대한 애틋함, 감사와 미안함이 공존한다. 그래서 더 힘껏 살아간다. 실패해도 그 실패에서 연대가 이루어진다. ‘님아 그 시장을 가오’가 더 오래, 더 아름답게 실패하기를 바란다. 나도 그 실패의 성공에 동참하며 ‘구독’, ‘좋아요’ 꾹.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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