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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맘때쯤이면 나는 언제나처럼 이국의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곳에서 나는 호젓함과 함께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그 외로움이 좋았다. 익숙한 것들과 복잡한 관계들에서 떨어져 나와 오롯이 혼자 되는 것. 그 헛헛하고도 적묵한 시간들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자 또 나를 추스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생래적 고독이라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독한 존재들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지 않던가.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유일하고, 그 유일함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나는 이즈음이면 번다한 관계와 일들을 피해 이국의 거리를 헤맸었다.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이국의 풍경들 가운데서 황량하면서도 광활한 그곳이 떠올랐을까.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선구자라는 가곡이 순식간에 그때 그곳의 나로 데려갔다. 노래에 얽힌 사연이야 분분하지만 해란강과 용정계곡은 독립군들에게는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쉼터 같은 장소였다. 나는 그때, 백두산에 가기 위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연해주인가?

과거의 기억들은 그렇게 시간의 타래에 얽히고 섞여 불분명하게 남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나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감정들 속에서 제법 애국자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해란강과 광활한 만주벌판과 연해주를 헤매면서 타국을 떠돌던 선조들의 울분과 설움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바람은 왜 또 그리 드세던지. 어떤 이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광복자금으로 내놓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다들 아끼지 않았고, 이후 자신이 받을 몫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와 투쟁과 고단한 삶이 있었기에 나는 여행자의 신분으로 그곳을 밟을 수 있었고, 외롭다는 감정적 사치를 누리면서 그 땅을 순례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내 마음은 복잡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은 물론이고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사뭇 비장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 대한민국은 그들이 이뤄내고자 했고, 또 꿈꾸었던 세상이라는 것을 안다. 하긴 그들의 죽음뿐일까. 이어달리기하듯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은 또 어떻고.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안다. 유난히 굴곡지고 부침이 심한 역사이지만 그래도 잘 헤쳐 나왔다. 그 힘든 시기시기마다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들려오는 미래의 전망들이 아무리 암울해도 그때보다는 낫지 않은가. 선인들이 일궈놓은 유산이 너무나 많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구간을 마치고 사라질 때 다음 세대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품격 있고 여유로우며 인류애적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 말이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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