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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먹방’ 그림으로 엿보니… 예나 지금이나 ‘먹는 것엔 진심’

입력 : 2022-09-09 01:00:00 수정 : 2022-09-08 19: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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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묘사한 궁중기록부터 풍속화까지
그림 22점 추려 500년 조선음식사 조명

사대부부터 어부까지 ‘삼시 세끼’ 즐겨
삼해주·감홍로·위스키 등 음주도 겸해
궁중 주방엔 女 나인 아닌 ‘男 요리사’
전쟁·기근·빈부격차 등에 격랑 겪기도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주영하/ 휴머니스트/ 1만8000원

 

만취해 비틀거리며 경복궁을 빠져나가는 왕세자의 선생님들, 남성 요리사 일색이었던 궁중 주방의 낯선 풍경, 날씨 좋은 날 소고기와 한잔 술로 야유회를 벌이는 사대부들, 어부들의 밥도둑 숭어찜 요리….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어떻게 왜 먹었을까? 수백 년 전 그림을 살펴보면 선조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삼시 세끼를 먹고 마시고 취하고 요리했다. 삼해주, 감홍로, 소국주와 같은 전통주, 그리고 유사길(위스키) 한 잔에 곁들인 커틀릿처럼 생소하고도 매혹적이었을 음식까지 모두 그림에 담겨 있다.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는 당시 모습을 담은 그림을 통해 500년 조선시대 음식사를 알아보는 책이다. 그림은 성현의 ‘야연’. 남성 다섯 명이 둘러앉아 화로 위에 고기를 굽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식생활과 음식의 역사를 살피는 연구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먼저 대표적인 문헌인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릴 수 있지만, 막상 이 방대한 책을 펼쳐보면 기대와 달리 음식 관련 글은 매우 적다. 왕과 신하가 나눈 공식 대화에서 식량 문제와 국가 제사의 제물 종류는 다뤄지지만, 왕의 맛 취향이나 신하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임금과 신하 사이 대화가 상세한 ‘승정원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 조선시대 음식 관련 문헌을 읽을 때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 잘 따져야 한다. 조선시대 음식의 역사를 공부할 때는 문헌에 나오는 내용이 실제로 행해졌는지 따지는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반면 그림 자료는 문헌과 달리 식생활과 음식의 사실성을 가장 잘 묘사한 사료다. 저자가 조선음식사를 다루면서 그것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한 이유다. 조선시대 그림 자료 중에 여러 화가가 그린 풍속화와 왕실·사대부의 행사를 사진처럼 묘사한 기록화에는 식생활이나 음식과 관련된 장면이 제법 많이 나온다. 김홍도가 그렸다고 알려진 ‘단원풍속도첩’ 25폭 중에도 음식 관련 장면이 적지 않다.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주영하/ 휴머니스트/ 1만8000원

저자는 작가와 시기가 분명하면서 왕실과 사대부들의 행사를 기록한 궁중 기록뿐 아니라 다양한 신분의 일상적 풍경을 담은 풍속화까지 그림 자료 22점을 뽑아 500년 조선음식사를 설명했다. 다만 ‘단원풍속도첩’의 작가와 제작 시점에 관해 미술사학계에서 논란이 많아, 저자는 ‘어장’만 다뤘다.

책 속의 그림을 보면서 조선 음식과 그 문화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면 기존 통념이 깨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그림 ‘선묘조제재경수연도’와 함께 그것을 설명하는 대목을 읽다 보면 자신의 무릎을 탁하고 칠지도.

“장면은 제2폭이다. 조선시대 어느 기록화에도 보이지 않는 ‘숙설소(熟設所)’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남성 요리사 일색인 그림의 묘사가 이상하다고 여길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여성 나인들이 음식을 만들지 않았던가?… 이것은 전근대 왕실의 벼슬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근대 사람들은 남성이 공식적인 일을, 여성은 비공식적인 일을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궁중의 공식적인 직책 대부분은 남성들 차지였으며, 여성들은 단지 왕을 보조하는 일을 맡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조선시대 요리사 하면 대장금 같은 여성 나인만을 떠올리곤 한다. ‘선묘조제재경수연도’에서 보이듯이 조선시대 왕실의 핵심 요리사는 남성이었다. ‘요리=여성’이라는 인식이 오늘날의 편견일 수 있다는 점을 이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46~51쪽)

저자는 통시적인 관점으로 조선시대 음식문화의 변화상을 조명했다. 이를 위해 서민, 궁중, 관리 등 주체, 혹은 상황이나 음식의 종류에 따른 차례가 아닌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시대순으로 나눠 총 4부로 책을 구성했다. 또한 조선 전기인 16세기의 회화를 비롯해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을 고루 안배해 시대상을 더욱 촘촘하게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제1부 ‘새로운 왕조, 새로운 입맛’은 16세기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음식을 다룬다. 불교를 숭상해 육식을 기피했던 이전 고려 왕조와 달리, 태조를 위시한 조선 건국 세력은 고기와 술을 애호해 술로 정치를 펼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러한 풍경은 ‘수운잡방’ 등 음식 문헌뿐 아니라 ‘종묘조서연관사연도’ ‘기영회도’ 같은 그림에 생생하게 반영돼 있다.

2부 ‘전쟁과 대기근, 그 후의 밥상’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발생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잇따른 대기근은 조선 사회의 정치·경제뿐 아니라 음식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영조와 청나라 사신의 연회에 오른 음식과 궁중에 우유를 짜는 장면, 농민들이 벼를 수확하고 새참을 먹는 일상적인 풍경까지 당시 모습을 담은 그림을 통해 설명했다.

3부 ‘세도가의 사치, 백성들의 굶주림’에서는 18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한양을 중심으로 부유층이 형성돼 빈부격차가 심했던 시기를 다룬다. 식생활의 풍요와 사치를 누리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담고 있는 ‘주사거배’나 ‘야연’을 비롯해 동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백성의 일상이 녹아있는 ‘대쾌도’ ‘어장’ ‘생선 채소 장수’까지 다수의 그림을 소개했다.

4부 ‘이국과 근대와의 조우’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음식사를 보여준다. 근대적 조약을 잇달아 맺으며 문호를 개방한 조선은 본격적으로 세계 식품 체제 속에 편입돼 타자와의 접촉으로 조선적인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국 음식이 등장하고 서양식 작법과 시선이 투영된 ‘한일통상조약체결기념연회도’ ‘국수 누르는 모양’ 같은 그림이 이러한 시대의 물결 속에서 탄생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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