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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검수까지 15년 대작업… “텍스트가 끌어당기면 또 도전”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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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23 22:30:00 수정 : 2022-08-25 09: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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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에세’ 완역·출간 불문학자 심민화 교수

“함께 번역해보자” 최권행 교수 제안
원문만 1000여페이지… “새 번역 내가 할 줄은…”
시간과 과정 길고 요원해서 ‘바보짓’ 후회도
2012년 딸과 함께 佛 몽테뉴 성 방문 큰 자극

왜 몽테뉴의 ‘에세’인가
몽테뉴가 죽기 전까지 몰입한 필생의 작품
중세적 자아 벗어나 ‘정신적 개인, 나’ 일깨워
상실서 출발한 ‘행복의 철학’ 현대인에 위로

심민화에게 ‘번역’이란
‘프루스트 뜨거운 삶’이 번역·학문세계 원점
번역가는 두 언어 헤매는 탐험가이자 방랑자
“너무 피곤한 일… 번역은 그만하고 일단 휴식”

2006년 2월, 정년보다 일찍 덕성여대 강단에서 물러난 불문학자 심민화 교수는 최권행 교수를 비롯해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이때 최 교수로부터 16세기 프랑스 최고 사상가이자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의 명저 ‘에세’를 함께 번역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1990년대 말쯤, 손우성 교수가 1965년 번역한 책(제목은 ‘수상록’)을 읽었습니다. 그때 이미 어휘와 문장이 고풍이라 대중적 어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느껴졌지만,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막연히 새 번역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제 자신이 번역하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지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지원을 받아서 최 교수와 함께 ‘에세’ 번역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홀수 장은 최 교수, 짝수 장은 심 교수가 각각 번역한 뒤 번역이 끝날 때마다 토의와 수정·보완하기로 계획했다.

원문만도 1000페이지가 넘는 ‘에세’ 완역은 그야말로 난산이었다. 제1권은 예정대로 진행했지만, 시간과 과정 역시 너무나 길고 요원해서 제2권은 심 교수, 제3권은 최 교수가 나눠 번역해야 했다. 번역하는 동안 팔에 테니스엘보가 오기도 했다. 괜히 했구나. 볼펜으로 키보드를 찍어가며 왜 내가 이런 바보짓을 했을까 후회도 했다.

그는 간난신고 끝에 15년 만인 최근 몽테뉴의 저작 ‘에세’(민음사)를 새롭게 완역, 출간했다. 번역에만 10년이 걸렸고, 검수와 출간까지 다시 그 절반이 소요됐다. 이 사이 부모도, 늘 격려를 아끼지 않던 스승 정명환 교수도 저세상으로 떠났다.

번역이 한창이던 2012년 6월부터 3개월간 딸인 이은지 영화감독과 함께 몽테뉴가 마지막 시기를 보낸 보르도의 몽테뉴 성을 찾기도 했다. 보르도를 방문한 그때 모습은 이 감독이 2014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몽테뉴와 함께 춤을’에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1885년 발생한 큰 화재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몽테뉴 성탑 4층에 있던 서재를 찾았을 때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예배실, 침실과 탈의실, 옷방을 거쳐 탑의 4층에 오르자 등장한 몽테뉴의 책상, 고대의 금언들이 아로새겨진 서재의 천장,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나는 의심 속에 머문다), 서재 밖에 펼쳐진 푸른 포도원과 강과 멋진 풍경까지…. 마치 몽테뉴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여기가 바로 내 서재야. 난 여기서 글을 쓰고 생각하지. 우리 마을에서 몇 번째 안 가는 멋진 서재라고.

심 교수는 왜 몽테뉴의 명저 ‘에세’를 번역해야만 했을까. 도대체 ‘에세’와 몽테뉴 사상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 교수를 지난 5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아울러 지난 7월14일 신사역 이봄씨어터에서 있었던 북토크 내용도 일부 녹였다.

―책을 번역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일단 남의 말인 데다가, 16세기에 쓰인 책이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6세기 프랑스어와 현대 프랑스어의 괴리가 우리말만큼 크지는 않아서 도전할 수 있었다. 상당히 ‘구불구불’한 몽테뉴 문장 스타일도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저술이 영혼의 정처 없는 행보를 쫓아가는 일이라고 했는데, 관계대명사나 콜론, 세미콜론 등이 많이 쓰여서 문장이 길어졌고 자주 구불구불해졌다.”

몽테뉴의 ‘에세’는 그가 서른여덟 살인 1571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몽테뉴 성 서재에 칩거해 1592년 죽기 전까지 써나간 필생의 작품이었다. 심 교수와 최 교수가 이번에 새롭게 번역한 ‘에세’는 몽테뉴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1588년판 개인 소장본 여백에 저자 자신의 손으로 내용을 추가한 ‘1588년판 보르도본’의 번역이다.

몽테뉴는 다양한 제목의 에세이 107편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실재를 넘어선 ‘세상 저편 너머’를 추구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온갖 인간 정념과 세상만사를 펜 끝에 소환해서 서로 주장하게 하고 반박하고 논증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신적인 개인, 나’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신분과 가문, 종교 등 외적 범주에 의한 중세적이고 집단적 자아를 탈피해 개인 주도권을 회복하고 비판적이고 주관적 견해를 가진 ‘근대적 주체’로 사는 길로 인도한다.

―왜 ‘에세’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까.

“몽테뉴의 ‘에세’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까닭은 아주 깊은 슬픔, 깊은 상실에서 출발한 책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작정 아름다운 거야, 라고 그는 말하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가 죽고,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의 품에 쓰러져 죽고, 아우가 스물셋의 나이에 정구를 치다가 죽고, 결혼해서 낳은 두 달 된 첫딸이 죽고, 자신마저 낙마하여 가사상태를 헤매게 된다. 이런 상실을 통과해서 얻어낸 행복의 철학이 바로 ‘에세’이다.”

 

―몽테뉴는 어떤 사람인가.

“몽테뉴는 사소한 데서도 글감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경험 하나하나가 대단한 무게를 지녀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오만 가지 측면, 수많은 행태에 흥미를 가지고 들여다보려고 했던 사람, 그것들이 모두 인간과 자신에 대한 어떤 정보를 알려준다고 생각한 사람, 타인을 연구하는 것이 자기를 연구하는 것이 된 사람이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 심민화는 스승 김붕구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이날 김 교수에게서 책 한 권을 건네받았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숨겨진 삶과 문학 이야기를 담은 셀레스트 알바레의 책이었다. 김 교수로부터 딱히 책을 번역해 보라고 말을 듣진 않았다.

그런데 책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는 8년 동안 그를 간호했던 여인 알바레, 프루스트 사후 50여년이 지난 여든둘의 그녀가 프루스트와 보낸 시절을 회고하는데…. 책에 빠져든 그는, 어느 순간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

번역을 마치자 번역 원고를 보자기에 싸서 출판사 홍성사를 찾아갔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황현산씨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황 평론가는 그의 번역 원고를 좋아했고, 곧 책으로 출간됐다. 1978년, ‘프루스트 뜨거운 삶’이 출간됐다. 불문학자 심민화의 번역과 학문 세계의 원점이었다.

심민화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서산에서 공무원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2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70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한 이후 이휘영, 김붕구, 정명환 교수 등으로부터 문학을 배웠고 이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학문과 번역, 교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프루스트 뜨거운 삶’을 번역한 이후 그는 ‘현상학이란 무엇인가’(1982), ‘비평의 역사와 역사적 비평’(1993),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2008) 등을 번역 출간했다.

―번역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작품이 있다. 원제목은 ‘Lost In Translation(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인데, 제목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말은, 언어가 마음을 100%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번역자의 가장 큰 고민의 핵심을 찌른다. 우선 내 앞의 원본은 작가라는 발화자가 자기 생각, 마음을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이란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언어’로 번역한 발화자와, 그 발화자와 전혀 다른 조건에 있는 수신자(독자) 사이를 매개하는 일이다. 번역자는 겹쳐지지 않은 지도를 들고 두 언어를 헤매는 탐험가, 방랑자이다.”

―구체적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처음에는 끝까지 빨리 번역하며 전체적인 구도를 이해한 뒤, 다시 처음부터 원문과 대조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한다. 먼저, 첫 번째 ‘빨리빨리’의 과정에서는 원어에 더 치중하며 작가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읽어내되, 너무 진을 빼지 말고 쭉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두 번째 번역에선 번역어에 더 치중하여 실팍하게 번역어와 문장을 다듬으며 조바심 내지 말고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작가를 사랑해야 한다.”

1987년 라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겨우 스물여덟이던 1980년부터 덕성여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1987년 책 ‘라신느 비극 연구’를 시작으로 ‘문예사조의 새로운 이해’(공저), ‘사르트르의 문학적 세계’(공저), ‘코르네유 인간학의 희극적 기원’ 등을 차례로 저술했다. 2006년 퇴직한 그는 덕성여대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앞으로 계획은.

“번역이 끝나서 책 한 권이 나오면 스스로 약속한다. 다시는 번역하지 않기로. 우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고, 한편으론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어겨가며 다시 번역하는 건 텍스트가 나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런 텍스트가 또 나올까. 나오면 또 질 것 같기도 하다.”

“공부를 잘했겠죠.”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 공부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말끝을 올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마치 남 이야기 하듯.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던 이야기를 할 때도 역시. “요란하게 쓰지 마시고, 그냥 끼적거려 보기도 했다고 해주세요.”

하지만 대학 교수 실체를 이야기할 땐 서늘한 단어를 얼마나 분명하고 날렵하게 던지던지! 마치 노련한 도수부가 잘 벼려진 칼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휘두르듯. “뭐 세상에서 좀 우러러봐 주는 측면이 있긴 하죠. 그런데, 그거 다 가짜예요.”

비록 북토크와 인터뷰 단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번역가이자 불문학자 심민화는 인간의 수많은 정념과 세상만사에 대해 분명했고, 명석했으며, 개성이 뚜렷했다. 어쩌면 그야말로 몽테뉴가 ‘에세’를 통해 탄생시킨 근대적 주체였다. 세상의 모든 신분과 종교, 성, 이념 등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 주도권을 분명히 회복하고, 비판적이며, 주관적 견해를 가진…. 이 순간, 그는 어쩌면 여전히 묻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

 

번역가 및 불문학자 심민화는… ●1952년 서산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불문과 석사 및 박사 학위 취득 ●덕성여대 교수 재임(1980∼2006) ●셀레스트 알바레의 ‘나의 프루스트씨’(1978) 번역 ●번역서로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새벽의 약속’ ‘비평의 역사와 역사적 비평’ ‘에세’ 등이 있음 ●저서로는 ‘라신느 비극 연구’ ‘문예사조의 새로운 이해’(공저), ‘코르네유 인간학의 희극적 기원’ 등이 있음 ●현재 덕성여대 명예교수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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