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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사이트에서 우연히 댄스 경연대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잠깐만 보려 했는데 참가자들의 춤 실력이 상상 이상으로 탁월하고 신묘하기까지 하여 나는 한참을 넋 놓고 시청했다. 그런데 문득 화면에 ‘과모립’이라는 자막이 떴다. 심사위원들이 한 참가자의 춤 동작에 일제히 감탄하는 장면에서였다.

나 역시 영상에 한창 집중하고 있었으나 문제의 그 괴상한 단어 때문에 내 몰입감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말았다. ‘과모립’이 뭐지? ‘과몰입’의 오타인가? 설마. 케이블 방송이라 해도 그 위세와 인기로 따지면 공중파 못지않게 영향력이 큰 채널인데 저 정도 오타도 못 잡을 리가. 그렇다면 실제로 저런 단어가 있나? 동영상은 끝까지 보지 못했다. 대신 나는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창에 ‘과모립’을 입력했다.

그것은 ‘과몰입’을 그냥 재미 삼아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이었다. 아직은 변형된 형태가 원 형태보다 우세할 정도는 아니어서 ‘과몰입’이 훨씬 많이 쓰이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나처럼 ‘과모립’의 의미를 묻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과모립’이라는 표현을 의도이건 실수이건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추세대로 가면 언어의 역사성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유행을 만들고 또 바꾸기 좋아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취향과 맞물려 결국 ‘과모립’은 그 표현 그대로 정착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되나. 입맛이 썼다. SNS의 발달로 채팅이 가장 보편적인 소통 방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타이핑의 경제성 및 편의를 위해 쉽고 짧은 말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정서법을 무시하고 소리 나는 대로 쓰거나 모음을 생략하거나 이모티콘을 혼용하는 등의 변칙적 표기들이 퍼졌다는 것, 최근에는 더 나아가 그저 재미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고 유행시키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이러한 현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못마땅하게 여기면 이른바 ‘꼰대’로 취급받는다는 것 또한 안다.

그러나 나의 몰입이 ‘과모립’에 의해 방해받았던 것처럼 애초에 쉽고 빠른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들이 오히려 세대 간 소통에 장애가 된다면 어쩌나. 어쨌든 재미있으면 그만인가. 모르겠다. 갈수록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방송이 나서서 인용 부호도 없이 변칙적 표기를 그대로 자막에 쓰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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