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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성능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알려진 포르셰. 이 차를 만든 독일의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딴 페르디난트 구축전차(驅逐戰車)를 설계했다. 지금까지도 범접이 힘든 엄청난 덩치(65t)와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독일군의 주력 무기였던 이 전차는 1943년 7월 소련에서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에 89대가 처음 실전 투입돼 원거리에서 무적의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근접전에는 취약했다. 방어 장비가 전무했던 탓이다. 결국 소련군 보병이 던진 화염병 따위에 격파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45년 종전까지 남은 전차가 고작 4대에 불과할 정도였다.

‘지상전의 영웅’으로 불린 전차의 굴욕은 이후에도 있었다. 1973년 중동에서 벌어진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초기에 대전차 미사일을 동원한 이집트군에 이스라엘 전차들이 무더기로 털려나갔다. 1991년 미군은 ‘사막의 폭풍’ 작전에 M1 전차를 대량 투입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이라크 육군 기계화 부대를 궤멸시켰으나 이후 벌어진 비정규전에서는 급조폭발물(IED)에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가 서방 측이 제공한 미국산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등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개전 이후 러시아는 전차와 장갑차 1292대를 잃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전차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형 전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몰락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전선을 돌파할 때 전차만큼 강한 화력을 퍼부을 존재는 찾기 어렵다.

러시아 전차의 굴욕은 러시아군의 잘못에 기인한 바 크다. 시가전에서 전차는 대전차 미사일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전차의 시가전 투입은 전격적이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 불가피하다면 사전에 도시 주요 교통로를 봉쇄한 뒤라야 한다. 보병과 함께 움직이고 여차하면 후방에서 자주포 지원사격 내지는 항공지원은 필수다. 러시아군은 이를 간과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혼쭐이 났던 우크라이나 전역의 진흙투성이 땅과 울창한 숲도 우습게 봤다. 늘 그렇듯 전쟁의 승패는 무기를 다루는 자의 전술 능력에 좌우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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