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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도 만날 수도 없어 더 애틋한… 간신히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위안

입력 : 2022-03-10 21:00:00 수정 : 2022-03-10 23: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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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환자의 간절한 사랑 그린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주인공 다발 경화증으로 시력·다리 잃어
연인 시르파도 혈액암 투병중인 중환자
틈만 나면 통화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
사랑을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 뭉클
실제 배우도 같은 병 앓아 더 깊은 감동
난치병인 다발 경화증으로 앞을 보지도, 걷지도 못하는 야코(오른쪽)가 원거리 연애 중인 연인 시르파와 처음으로 만나 서로 얼굴을 만져보고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야코 역할을 맡은 배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은 실제로 다발 경화증을 앓고 시력과 기동성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슈아픽처스 제공

야코(페트리 포이콜라이넨)는 시르파(마르야나 마이야라)와 통화하며 자신의 영화 DVD 컬렉션을 자랑하던 중 한순간 실수로 넘어진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지 못한다. 비상 호출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시르파. 야코는 방문요양사가 한 시간 안에 도착할 거라고 말한다. 바닥에 얼굴이 붙어 일그러진 채로 말을 이어가는 그는 영화 ‘타이타닉’을 왜 안 봤냐는 시르파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액션 영화가 최고였다고.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어비스, 에일리언2. 그러다 잘 계산되고 비싼 똥 덩어리를 만들었어.”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의 주인공은 난치병인 다발 경화증으로 시력을 잃고 다리도 움직이지 못한다. 전화로 원거리 연애 중인 그의 연인 시르파 역시 혈액암을 앓는 중환자다. 둘은 만난 적도 없고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틈만 나면 통화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간신히 삶을 지탱하고 있는 둘에게 서로의 존재는 유일한 위안이다.

야코는 시르파의 얼굴을 영화 에일리언에서 리플리 역을 맡은 배우 시고니 위버로 상상한다. 다른 사람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봤던 영화 속 인물로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다. 집을 방문해 수발을 들어주는 요양사에게는 애니 윌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그에게 요양사는 “나 애니 윌크스 검색했거든요. 영화 ‘미저리’에 나오는 미치광이 간호사잖아요”라고 핀잔을 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테무 니키 감독은 야코가 보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야코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그의 어깨너머로 카메라를 돌려 흐릿한 초점으로 화면을 잡아 관객들이 내용을 분간할 수 없도록 하는 식이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감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매일 몇 시간마다 근이완제를 먹어야 하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몸을 옮기는 게 혼자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그러던 중 시르파는 야코와 통화하며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트린다. 그런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야코는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라고 말한다. 탐페레에 사는 야코와 헤멘린나에 사는 시르파 사이의 거리는 1000㎞. 일반인에게는 택시를 타고 기차로 환승한 뒤 다시 택시를 불러 세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야코에게는 100만광년처럼 느껴질 수준이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이에게 가기 위해 혼자 여정을 준비한다.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마친 야코는 시르파에게 “낯선 사람 5명의 도움만 받으면 돼”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여정은 시작부터 고난이다. 출발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도중 도둑을 만날 뻔하고, 기차에서 내릴 때는 금품을 노린 괴한에게 납치를 당해 어딘지 모르는 창고로 끌려간다. 알 수 없는 곳에 버려진 야코는 전화기도 빼앗긴 채 혼자 탈출을 시도한다. 그는 시르파를 만날 수 있을까.

10일 국내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제78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특히 주인공 야코 역을 맡은 배우 포이콜라이넨은 실제로 다발 경화증을 앓아 시력과 기동성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더 깊은 감동을 줬다. 포이콜라이넨은 베네치아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꿈꾸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출발점이니까요. 꿈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뭐든 나중으로 미루지 마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대 모르니까요. 인생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당부했다.

포이콜라이넨은 1975년 핀란드 피엑세메키에서 출생했으며 2000년 헬싱키 연극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졸업 후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세이네요키 극장에서 활동했다. 헬싱키 시립극장, KOM 극장, 테아테리 유로파 4에서 활동했으며 수많은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전문 배우로 살아가다가 악성 다발 경화증 진단을 받은 그는 상태가 몹시 심각해 시각을 잃고 하지도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여기에 합병증까지 더해져 2013년부터 장애인 연금에 의존해 살았다. 그런 그에게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첫 장편 영화 주연 작품이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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