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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램 AI’로 되살아난 별들… 산 자를 위한 ‘유령 노예’ 비판도

입력 : 2022-02-09 06:00:00 수정 : 2022-02-09 07: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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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얼라이브’ AI 통해 임윤택 복원
‘비운의 천재’ 유재하도 우리 곁으로
생전의 곡 부르고 선·후배들과 콜라보
아티스트는 떠나도 노래는 영원 실감

일각 추모로 포장한 상업적 시도 비판
초상권·저작권 등 법적 난제도 수두룩
해외선 실제 소송전 ‘잊힐 권리’ 유서도
팬덤 문화 강한 국내 사회적 합의 필요
티빙 오리지널 ‘얼라이브‘를 통해 세상을 떠난 지 9년 만에 무대에 오른 울랄라세션의 리더 고 임윤택. ‘얼라이브’는 하늘의 별이 된 뮤지션 유재하와 임윤택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특별한 무대를 선사한다. 티빙 제공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언젠간 널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중략) 가고 싶어 널 보고 싶어 꼭 찾고 싶었어/ 하지만 너의 모습은 아직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비어 있던 단상에 홀로그램이 펼쳐지자 객석이 순식간에 일렁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설,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1962~2013)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9년 만에 멤버들 곁으로 돌아왔다. 멤버들과 눈을 맞추며 열창하는 그의 모습은 무대를 사로잡던 10여년 전, 그때 그대로였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8일 오전 기준 151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달 28일 첫선을 보인 티빙의 ‘얼라이브‘는 인공지능(AI)을 통해 임윤택의 음성과 모습을 복원했다. 오는 11일에는 ‘비운의 천재’ 유재하(1962~2018)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AI를 통해 되돌아온 이들은 생전의 곡들뿐 아니라 신곡을 부르고, 가요계 선·후배들과 콜라보 무대를 선보인다. 너무 일찍 별이 된 두 사람이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과 연결되길 바랐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담겼다.

재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복원해 무대를 만들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대형 미디어월을 통한 확장현실(XR), 음성·페이스 복원, 모델을 사용한 딥페이크 기법 등이 적용됐다. 임윤택의 경우 병마와 싸우기 전 건강했던 모습으로 복원해 달라는 가족들의 당부도 반영됐다. 생전 방송 출연이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유재하를 복원하는 데는 어려움이 더 컸다. 유재하는 남아 있는 사진이 20장 남짓이라, 그와 닮은 사람을 섭외해 특수분장을 한 뒤 AI에 학습시켰다. 목소리의 경우에도 악기 소리가 입혀지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방송에서는 유재하의 목소리만 온전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연출을 맡은 이선우 PD는 “(두 사람은)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 대중가요사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좋은 무대를 보여주었던 분들이 살아계셨다면 어떤 무대를 보여주실까,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까 하는 상상에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며 “AI로 복원된 목소리로 기존의 음악을 모창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복원된 스타 가수들의 모습. 왼쪽부터 김현식, 신해철, 터틀맨,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유튜브 캡처

◆김현식·김광석·신해철… AI가 복원한 ‘전설들’

아티스트는 세상을 떠나도 노래는 영원하다. 디지털 기술로 세상을 떠난 스타 가수들이 계속 소환되는 이유다. 2020년 12월 그룹 거북이의 보컬 터틀맨(1970~2008) 복원이 시작이었다. 신해철(1968∼2014)은 방탄소년단 등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과 협업 무대를 펼친 데 이어 라디오를 진행했고, 1996년 사망한 김광석은 2002년 발표된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불렀다. 지난해 7월 열린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홀로그램 콘서트 ‘리프리젠트’(Re:present)에서는 고 김현식(1958~1990)·전태관(1962~2018)이 김종진 등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AI 기술은 가수들의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무대 위에서의 버릇 등까지 학습해 재현해냈다.

해외에서는 더 일찍부터 고인이 된 가수들을 되살리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2012년 코첼라 페스티벌이 시작이었다. 1996년 피살된 전설의 래퍼 투팍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닥터드레, 스눕독과 노래한 당시 무대는 세계 대중음악계를 뒤흔들어놓았다. 2년 뒤엔 2009년 사망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빌보드 시상식에 섰다. 이후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AI 등 IT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너도나도 홀로그램 콘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에는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고, 지난해엔 2011년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의 월드 투어가 예정됐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소됐다. 영화 ‘첨밀밀’ OST로 유명한 대만의 국민가수 등려군(鄧麗君)은 최근 중국 장쑤TV가 기획한 신년 특집 가요제에 디지털 가상 인간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1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음악계의 변화를 담으며 “나이든 뮤지션은 절대 죽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홀로그램이 된다”고 표현했다.

◆‘잊힐 권리’… 윤리적·법적 문제 지적 잇따라

일각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모로 포장한 상업적 시도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고인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음성, 동작, 춤, 말투 등을 활용하기 위한 동의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을 것인지, 상업적으로 활용해 발생한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초상권과 저작권 등을 둘러싼 법적 난제가 수두룩하다. 이 같은 논란은 영국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며 ‘유령 노예’라고 비판하면서 본격화됐다.

‘유령 노예’의 대표적 사례로는 휘트니 휴스턴의 홀로그램 투어 콘서트가 꼽힌다. 휴스턴이 사망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가족들은 휴스턴의 복원을 기획했다. 휴스턴의 일부 친척들과 팬들은 휴스턴이 세상을 뜬 뒤에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릴린 먼로의 초상권을 놓고 먼로재단과 홀로그램 회사인 디지콘미디어도 오랜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 이후 투팍의 홀로그램 투어 콘서트가 진행되지 않은 것도 이런 문제와 관련돼 있다.

무엇보다 과연 고인이 홀로그램으로 되살아나기를 원했을까와 같은 의문도 많다. 산 자의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죽은 자를 불러오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2014년 사망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타계한 스타들이 디지털 기술로 부활하는 것을 보고 ‘잊힐 권리’를 택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이미지를 2039년까지 새로운 영화나 광고 등에 삽입할 수 없고, 홀로그램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는 유서를 작성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가수로 불리는 미소라 히바리가 AI 기술로 부활하자 현지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소라 히바리는 2019년 12월 방송된 NHK의 연말 음악방송 ‘홍백가합전’에서 AI를 통해 복원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신곡을 불렀다. 일부 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딥러닝 기술로 재현된 미소라 히바리로부터 리얼리티를 느끼기 힘들었고, 과연 기술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방송가와 가요계의 고민도 깊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방송 제작진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이들은 추모 공연에 대한 진정성을 부각하기 위해 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들을 다시 만나는 의미에 대해 방송 시간 상당량을 할애한다. ‘얼라이브’의 이 PD는 상업성에 대한 지적에 대해 “가족과 지인들의 동의를 먼저 얻었다”며 “아픈 기억일 수도 있지만, 기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빅데이터를 통해 복원된 모습과 작품들이 고인의 생전 세계관과 가치와 부합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며 “되살린 고인을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때 저작권의 개념보다는 팬덤 문화가 강한 국내에서는 특히 반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고인의 존엄성과 가치관에 대한 폭 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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