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오는 20대 대선은 선거운동사에 ‘흑역사’로 기록될 법하다. 매번 ‘공수표’ 비판을 받았던 공약 경쟁과 이를 통한 후보 검증은 아예 유권자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페이스북, 유튜브 또는 시사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범람하는 진영 논리다. 뚜렷한 선거 구호조차 부각되지 않고, 대신 검증되지 않은 온갖 의혹과 정제되지 않은 무수한 말과 글들이 ‘역대급 불호감 대선’을 만들고 있다.
1995년 ‘김대중 죽이기’ 발간, 1998년 ‘인물과 사상’ 창간 등으로 지식인 실명 비판의 물꼬를 튼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이를 ‘좀비 정치의 시대’로 설명한다.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좀비‘는 대체로 무기력하나 타인을 공격할 때만 공격적이고 날렵하다. 상대방은 무조건 악마이며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음모론을 만들어 공포심을 부추기며 증오정치를 정당화한다는 게 그의 신간 ‘좀비 정치’가 비판하는 한국 정치·사회 현실이다.
‘이재명의 만독불침 투쟁사’, ‘윤석열의 리더십’에서 시작한 한국 정치에 대한 학자의 날 선 비판과 인물평은 ‘문재인의 오만과 비극’을 거쳐 유시민, 정청래, 김원웅, 박노자, 조은산, 진중권, 윤희숙, 정두언, 박용진, 김의겸, 권경애 등 좌우 진영 대치 전선에서 말과 글을 쏟아내는 이들의 겉과 속까지 두루 살펴본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아 이후 상황까지 반영해 새로 펴낸 저자는 “내가 거의 모든 면에서 존경했던 사람이 특정 정치종교의 광신도로 행세하는 걸 지켜보는 건 불편하다 못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흔들리게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며 “회색의 다양성에 대한 증오가 판치는 가상세계에서 탈출해 다양한 회색 옷을 입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소망한다.

‘슬기로운 좌파생활’은 ‘88만원 세대’로 한국 사회 세대론을 불 지핀 경제학자 우석훈의 신간. 그는 ‘중2병’의 주인공인 중학교 2학년이 특목고 트랙과 일반고 트랙의 갈림길에 서면서 우리나라 교육구조가 만든 집단 좌절을 처음 실감하는 나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유행어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이생망’을 이야기하는 중2 남학생이 진보 성향의 엄마와 만나면 “엄마도 페미야?”라고 힐난하는 ‘환장의 조합’이 만들어진다. 이 같은 갈등은 이후 모태솔로·데이트 비용 논쟁과 데이트 폭력 등으로 이어지고 전 세대보다 가난한 20대와 더 가난한 10대가 보수로 향하는 시대의 퇴행이 목격된다.
결국 우리나라에선 보수의 상대적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진보가 젠더 전쟁 같은 이슈에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게 우석훈의 진단이다. 이번 대선에서 뜨거운 쟁점이 된 남녀 문제 역시 결국 소득격차를 넘어 자산격차로 심화한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생긴 갈등인 만큼 생활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좌파가 나와야만 올바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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