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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역대 군주 중 최장수·최장 재위… 왕자 추문에 축제 ‘찬물’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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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05 22:00:00 수정 : 2022-02-05 21: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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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 6일 즉위 70주년

1952년 25세에 즉위… 유럽 최장 재위 육박
호주 등 15개국 원수·영연방 54개국 수장
왕실은 英 문화적·외교적 영향력의 원천
“여왕의 역사가 바로 1952년 이후 英 역사”
대관식 열린 6월에 공식 기념행사 개최

차남 앤드루 美서 성폭행 혐의 재판 받아
해리 왕손 회고록서 폭탄선언 가능성도
95세인 여왕 건강, 왕위 계승과 직결 ‘촉각’
서열 1위 찰스 왕세자 인기 너무 없어 문제
군주제 폐지 운동 고개… 왕실 미래 불투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포트다운=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95) 영국 여왕이 6일(현지시간) 즉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Platinum Jubilee)’를 맞는다. 여왕은 영국 역대 군주 중 최장수에 최장기간 재위란 기록을 매일 새로 써 내려가고 있다. 72년110일간 재위한 프랑스 루이 14세를 제치고 유럽 역사상 최장기간 재위한 군주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영국은 오는 6월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하면서도 속내는 복잡하다. 국가 경사를 앞두고 불거진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 성추문이 입헌군주제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여왕의 역사가 곧 영국 역사”… 6월 공식 기념행사

여왕은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호주 등 15개국의 국가원수다. 여왕이 국가원수인 이들 입헌군주국을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s)’이라 한다. 여왕은 또 영연방 왕국을 비롯한 54개국의 느슨한 연합체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수장이다. 영연방 수장은 상징적 존재이며 임기가 없고 세습되지 않는다.

여왕은 부친 조지 6세가 서거한 1952년 2월6일 25세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대관식은 이듬해 6월2일 열렸다. 당시 전 세계에서 약 2억7700만명이 TV로 대관식을 봤다.

여왕은 2015년 9월9일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갖고 있던 영국 역대 군주 중 최장기간 재위 기록(63년216일)을 깼다. 당시 여왕은 “내가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친절하게도 오늘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1952년 12월 3일 영국 런던 버킹엄 궁에서 열린 영연방 지도자들을 위한 만찬이 열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가운데)와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왼쪽에서 4번 째)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70년간 여왕을 거쳐 간 영국 총리는 윈스턴 처칠부터 보리스 존슨까지 14명에 달한다. 여왕이 만난 미국 대통령은 13명이다.

영국이 수많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동안 여왕은 명목상 최고 지도자 역할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실은 영국의 문화·외교적 영향력의 원천이 돼 왔다.

신디 매크리리 호주 시드니대 부교수(역사학)는 “앞으로 여왕의 역사와 1952년 이후 영국 역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여왕이 해 온 봉사와 의무, 품위의 등대 역할은 영국의 명성을 높였고 결국 영국에 막대한 이익이 됐다”고 말했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여왕은 어떤 선출된 국가원수 못지않게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평했다.

즉위 70주년 기념행사는 오는 6월2∼5일 진행된다. 6월2일 여왕의 공식 생일 행사인 군사 퍼레이드 트루핑 더 컬러(Trooping the Colour)를 시작으로,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감사 예배, 버킹엄궁 외곽에선 여왕의 통치 이야기를 담은 라이브 콘서트 등이 이어진다.

영국령 채널제도 등 영국의 영토 전역, 영연방 국가들 수도도 여왕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횃불을 밝힌다. 여왕 사유지인 샌드링엄 별장과 밸모럴성은 행사 나흘간 개방된다. 여왕이 대관식 때 입었던 드레스와 예복은 윈저성에 전시될 예정이다.

다만 여왕이 어떤 행사에 참석할지는 불확실하며 찰스 왕세자 등 다른 왕실 고위 인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찰스 왕세자. AP연합뉴스

◆앤드루 왕자 성추문, 분위기에 ‘찬물’… 여왕 건강 우려도

영국이 마냥 축제 분위기인 건 아니다.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미국에서 민사재판을 받게 돼서다. WP는 “대중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여왕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영국 왕실의 노력에도 앤드루 왕자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돼 축제에 그늘이 드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여성 버지니아 주프레는 17세였던 2001년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에 의해 인신매매를 당해 앤드루 왕자에게 수차례 성폭행당했다며 지난여름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앤드루 왕자는 주프레를 만난 기억이 없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여왕은 지난달 13일 앤드루 왕자의 군 직함을 박탈하고 ‘전하(His Royal Highness)’ 호칭을 쓸 수 없게 했다. 이제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다. 여왕의 즉위 70주년 기념행사에도 불참한다.

2019년 9월 7일 벨기에 브뤼주 해방 75주년 행사에 참석한 앤드루 왕자. 브뤼주=EPA연합뉴스

왕실과 여왕 손자인 해리 왕손 부부 사이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올가을 출간 예정인 해리 왕손 회고록에 왕실의 인종차별 의혹 폭로에 뒤이은 다른 폭탄선언이 담기리란 추측이 난무하다. 이 때문에 왕실은 회고록을 출간 전 미리 보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왕손 가족이 여왕 즉위 70주년 행사에 참석할지도 미지수다. 해리 왕손은 영국 내무부에 경찰 경호 비용을 개인적으로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왕실에서 독립해 더 이상 영국에서 경찰 경호를 받을 수 없는데 가족을 보호하려면 개인 경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여왕은 지난해 6월 태어난 증손녀 릴리베트를 아직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건 고령인 여왕의 건강이다. 여왕은 지난해 10월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11월엔 허리를 삐끗하기도 했다.

최근 여왕의 건강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이다. 지난달 26일 여왕이 샌드링엄 별장으로 향하는 도중 직접 랜드로버를 모는 모습이 포착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샌드링엄이 윈저성에서 약 225㎞ 떨어져 있는 점을 언급하며 이번 여행 결정을 여왕이 건강하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여왕은 이곳에서 가족들과 휴식하며 즉위 70주년을 맞이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5)이 오는 6일(현지시간) 영국 왕실 사상 처음으로 즉위 70주년을 맞는다. 영국 정부는 이날 대중이 참여하는 행사는 열지 않지만, 오는 6월 초에 열병식과 음악회 등 대규모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진은 1966년 4월(왼쪽)과 2006년 11월(오른쪽) 런던 의사당에서 열린 의회 개원식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 런던 AP=연합뉴스

◆군주제 미래 ‘불투명’… 폐지 운동 다시 고개

여왕의 건강 문제는 왕위 계승과 직결된다.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여왕의 장남 찰스 왕세자다. 73세인 그는 1958년 왕세자로 책봉됐다.

찰스 왕세자가 여왕에 비해 인기가 너무 없다는 게 문제다. 일각에선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된 뒤 장남 윌리엄 왕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줄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군주제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앤드루 왕자의 성폭행 의혹으로 영국에서 군주제 폐지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반군주제 압력단체 리퍼블릭은 군주제 폐지 운동을 강화하고 나섰다.

단체 관계자는 “우리 모두 미래를 보고 찰스 왕세자가 최선이 아니며 우리가 국가원수를 선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헌법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때”라며 “여왕이 떠나면 왕실은 매우 취약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남편 필립공이 1959년 캐나다 방문 중 촬영한 사진. 런던=AP연합뉴스

군주제 반대론자들은 왕실이 일부 세금으로 지탱되는 건 부당한 특권이라고도 주장한다.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영국 재무부의 왕실 교부금은 2012년 3000만파운드에서 지난해 8630만파운드(약 1407억원)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다만 여왕은 납세 의무가 없지만 1993년부터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

영국 헌법 전문가인 크레이그 프레스콧은 “과거에 국민은 군주를 당연히 존경했지만 오늘날엔 군주 스스로 존재를 더 정당화해야 한다”며 “왕실 역할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다른 영연방 왕국에도 군주제 회의론이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공화국으로 전환해 영연방 왕국은 15개국으로 줄었다. 매크리리 부교수는 “호주에선 한 국가(영국)의 군주가 다른 국가의 원수를 하는 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에선 아직까지 군주제 찬성론이 우세하다. 지난달 영국 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여왕이 영국의 마지막 군주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3만1186명 중 70%가 아니라고 답했다. 집권 보수당 등 기득권층도 군주제 폐지에 반대한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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