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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할배’로 반짝 활기 띠지만… 3년 코로나 못이겨 ‘시름시름’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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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23 09:30:00 수정 : 2023-12-10 08: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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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공연·연극계 흥망성쇠
서울 종로5가역∼혜화 로터리까지 1.6㎞
공연문화의 ‘마르지 않는 샘’ 같았던 곳
1990년대 유료관객 60∼70% 최전성기
최근 코로나로 소극장 150→120개 급감

사람·돈 모여 상권 커지며 임대료도 상승
2004년 ‘문화지구 지정’ 불에 기름 부은 격
오프·오프-오프 대학로까지 형성 외곽으로
“랜선 중계·공공극장 등 다양한 활로 시급”
게티이미지 제공

대학로에서 ‘오영수’라는 월드스타가 나왔다. 연기 인생 50여년 만에 골든글로브상을 거머쥔 오영수는 오늘도 대학로 무대에 선다.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한 오영수는 팔순에 찾아온 영예를 한껏 누릴 만도 한데 “잠시 자제력을 잃었었는데 이 연극을 만나 다시 중심을 잡게 됐다. 내게 종교는 연극”이라고 말한다. “내 시작은 연극이었고 마지막도 연극입니다. 배우가 연기로 다양한 삶을 표현할 때 관객들이 많은 것을 깨닫지 않습니까. 이것이 내가 사명감을 갖고 연기하는 이유입니다. 연극이 인생을 좀 더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가 이 원로배우의 연기철학이다.

큰 경사에 대학로는 반짝 활기를 찾은 모양새다. 또 다른 국민배우 신구와 번갈아 출연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장은 연일 만원사례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시련을 3년째 겪고 있는 대학로 소극장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전부터 진행된 대학로 일대 임대료 상승에 넷플릭스 등의 영상플랫폼 인기,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무대예술의 랜선중계 활성화 등 대학로의 현재는 어둡고 앞날은 불투명하다.

◆명동, 신촌→대학로에서 열린 연극 전성시대

21일 연극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극 문화의 중심 ‘대학로’는 원래 서울 종로5가역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1.6㎞, 마로니에공원을 품고 있는 거리를 뜻한다. 숱한 배우들이 열정으로 무대에 서며 꿈을 키우고 다양한 작품이 관객을 만난 우리나라 공연문화의 마르지 않은 샘 같은 곳이다. 서울대 옛 동숭캠퍼스가 자리 잡으며 1965년 정식으로 ‘대학로’란 이름이 부여된 이곳은 1976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시작으로 문예진흥원 미술관(아르코미술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아르코 예술극장)이 들어서면서 공연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명동과 신촌 일대에서 발흥했던 여러 극단, 극장이 차례로 옮겨왔다. 1984년 샘터 파랑새극장, 1986년 바탕골소극장, 1987년 연우소극장 등이 들어오면서 대학로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극단 민예가 마로니에 소극장을, 극단 76이 76소극장을 대학로에 세웠다. 이어 아룽구지 소극장, 성좌 소극장, 혜화동 1번지 등 연극 전용 극장이 추가로 생겨났다.

 

대학로 최전성기는 1990년대. 극장마다 유료관객이 60∼70%를 차지할 정도로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엄청난 흥행작도 탄생하는데 92년부터 94년까지 공연된 이만희 작 ‘불 좀 꺼주세요’는 무려 20만 관객을 동원한다. 극단 동숭무대, 극단 골목길, 극단 백수광부 등 2세대로 분류될 법한 극단도 새로 생겨나 창작극 위주로 무대를 만들었다. 해외 유수 작품을 번역해 공연하는 번역극 위주의 1세대 극단과 2세대 극단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대학로는 서구 사실주의 연극과 부조리극, 낭만주의 등 서로 다른 경향 연극이 한꺼번에 물밀듯 들어오는 전성시대를 만끽했다.

이 중 특별한 곳은 극단76. 1976년 창단된 이곳은 사르트르의 ‘구토’를 창단 공연으로 시작해서 부조리극에 집중했다. 가장 유명한 건 페터 한트케의 ‘관객 모독’. 배우가 관객을 향해 고함을 치고 거친 언사를 내뱉으며 무대와 관객석 경계를 없앤 이 연극은 79년 초연 당시부터 큰 충격을 줬다. 훗날 극단 76에선 여러 인재가 독립해 극단 동숭무대, 극단 골목길, 극단 죽죽이 만들어지는 ‘아버지 극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대학교 연극회 출신이 두각을 나타낸 2세대 극단 중에선 극단 연우무대와 작은신화가 대표적이다.

연우무대는 서울대 출신이 모여 만들었다. 연극은 물론 마당극 운동을 통해 대학가 민중문화단체들을 결합하는 구심점 역할까지 맡았다. 그들의 창작극은 독재시대 관객 욕구 분출의 장이기도 했다. 1980년대 ‘장산곶매’, ‘장사의 꿈’,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 여러 화제작을 선보였는데 신촌에서 87년 전세금 인상 문제로 혜화동으로 이전해서 ‘칠수와 만수’ 이후 ‘날 보러와요’, ‘김치국씨 환장하다’를 선보이며 대학로 대표적 창작극 극단으로 명성을 떨쳤다.

◆코로나 3년에 문 닫는 소극장들

1990년대 펼쳐졌던 대학로 전성시대는 사람과 돈이 모여드는 상권이 커지면서 ‘극장 임대료 상승’이란 독을 만들어낸다. 이는 다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여배우 노출이 많거나 코미디물 등의 흥행작이 대학로 중심을 차지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2004년 이뤄진 대학로 문화지구 지정은 ‘기름에 불을 부은 격’이었다. 실제 연극인에게는 큰 혜택 없이 건물주들에게만 땅값이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극장 이탈 및 대학로의 상업화라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학로는 중심지, 오프-대학로, 오프-오프 대학로로 나누어졌다. ‘대학로’ 하면 떠올리는 혜화역 주변을 중심지로 볼 때 그 인근은 ‘상업극’이라 불리는 로맨틱 코미디나 개그쇼 등이 기한 없이 장기 공연되고 있다. 여기에서 밀려난 기존 극단은 혜화역에서 이화사거리 쪽으로 이전했는데 이를 ‘오프 대학로’로 부르곤 한다. 혜화로터리 너머 성균관대 입구와 혜화초등학교 사이 골목에 많은 극장과 극단 사무실이 자리 잡았는데 선돌극장, 동숭무대 소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오프-대학로 역시 임대료 상승 현상이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선 유료관객이 감소하면서 일부 극단, 극장은 창경궁 인근과 한성대입구쪽 삼선교 쪽으로 옮겨가서 ‘오프-오프 대학로’를 형성했다. 대학로 소극장 숨통을 조이고 있는 임대료는 작은 지하극장 기준 평균 월 450만∼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물론 목 좋은 중심가는 월 1000만원 이상도 있다. 자체 극장을 가진 극단이라도 자기네 작품으로 절반 정도 무대를 만들고 나머지는 대관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극장 없이 대관으로 무대를 빌려 작품만 올리는 프로덕션 체제 극단도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관객 감소와 그만큼 더 커진 연극 제작 어려움 때문에 문 닫거나 운영을 중단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소극장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시대 이전 대학로 소극장 규모를 150여개 정도로 추산했는데 지금은 120여개 정도로 본다”며 “폐관까진 아니더라도 일시적이나마 운영을 중단한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대학로 소극장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전망한 ‘오픈런 대학로’의 저자 이민우 희극작가는 현재 상황을 연극과 소극장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로 본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은 여전한 가운데 랜선 중계 등으로 연극을 접하는 관객 통로가 다양해진 만큼 극단과 소극장도 보다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또다른 현안으로는 ‘공공극장’의 확대를 꼽는다. 이 작가는 “연극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연극을 아직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미래세대가 보다 쉽게 연극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만큼 공공극장이 대학로 중심에 좀 더 생겨나든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나 재정 어려움을 겪는 소극장을 공공에서 인수해 운영관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이 시대에 맞는 극장 공연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안 그러면 대학로 소극장 거리는 민속촌이 되고 말 거예요. 조만간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여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극이라는 것을 했던 곳입니다’ 하면서 말이죠.” -‘오픈런 대학로’ 중 극단 작은신화 최용훈 대표-

 

◆116만→ 57만→ 85만… 작년 늘어난 관객 올해는?

 

나날이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대학로는 극장이 군집한 우리나라 공연계 중심이다. 다만 정부 문화 정책에 따른 지원금이나 공식 예매처 등을 거치지 않고 소수 지인만을 대상으로 티켓이 판매되는 공연도 적지 않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대학로 지역에는 총 163개 공연시설이 존재하며 공연장 수는 총 209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티켓 판매 매출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 티켓 매출자료를 기준으로 총 3개의 공연장이 가동되는 예스24스테이지가 전체의 17.99%를 기록하며 1등을 차지한다. 다음은 역시 공연장 4개를 가진 대학로 드림아트센터가 12.37%이며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가 10.17%, 대학로 아트윈씨어터가 9.55%, 유니플렉스가 8.68%, TOM씨어터가 6.89% 등이다.

 

공연계에 따르면 대학로 공연은 대체로 프리뷰 기간엔 높은 유료 객석 점유율을 보이다가 이 기간이 끝나면 일정 부분 떨어진 후 마지막 공연 때까지 다시 서서히 상승하는 곡선을 그린다. 이때 얼마나 빨리 상승 궤도에 오르냐는 작품성에 달려 있으며 흥행 성적을 결정하는 최대변수다.

 

티켓 가격의 경우 어느 극장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책정되는 편인데 VIP석 기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은 보통 9만9000원,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은 8만8000원, 그리고 다른 유명극장은 대체로 7만7000원에서 6만6000원 정도로 책정된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으로 대학로 연극가에서 줄어든 관객 수는 어느 정도일까. 2019년 하반기부터 가동된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자료로 최근 3년간 하반기 대학로 관객 수를 비교하면 2019년 116만명에서 2020년 57만명으로 격감한 후 지난해 85만명으로 다소 회복된 추세다. 매출액은 2019년 232억원에서 2020년 158억원, 2021년 201억원을 기록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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