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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라진 뒤에] 조수경 “소설보다 아이들의 현실이 더 끔찍하다는 걸 잊지 말기를”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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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19 07:30:00 수정 : 2022-01-19 09: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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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이지만, 영원으로 통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그날 아침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그날도 평소처럼 노트북을 켜고 포털 뉴스를 검색 중이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동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에는 아동의 이름과 얼굴이 나왔고, 그의 집이나 화장실 등에서 겪은 학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함께 있던 누나가 다른 곳으로 보내진 뒤 아버지와 계모랑 살게 된 여섯 살 아이, 대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화장실에 감금, 화장실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이어지는 잔혹한 폭행, 아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해서 마음에 걸렸다는 지역 아동센터 선생....

 

관련 기사를 팔로잉해서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평소에도 아이와 동물을 좋아해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였다. 세월호 때에도 감정이 이입돼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그가 아니었던가. 여섯 살 아이는 화장실에 갇혀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소설을 써야겠다, 고 소설가 조수경은 2016년 3월 결심했다.

 

“하지만 쉽게 소설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소설로 쓰려고 할 때면, 학대로 죽어간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했는데, 그것이 고통스러웠지요. 소설의 구조는 다 만들어져 있었지만, 아이들의 모습이나 감정 등을 디테일하게 쓰기가 어려웠어요. 자꾸 미뤄지다가 2020년 10월 서울 양천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해 사건이 터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거죠.”

 

전작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에서 안락사 문제를 다룬 소설가 조수경이 한국 사회의 아동학대 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문제적 장편 『그들이 사라진 뒤에』(한겨레출판)를 들고 돌아왔다. 소설은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터지고 있지만, 법과 제도, 대응책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통렬히 찌른다.

 

“선배들이 가끔 그러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진 거라고. 그런데 그게요, 어른들이 한 일이 아니에요. 죽은 아이들이 한 일이야. 아이 하나가 죽어야 그나마, 아주 조금씩 세상이 변해가는 거예요.”(139쪽)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뒤 버려졌던 ‘아이’는 아동을 매매 또는 살해하는 ‘남자’의 집에서 남자의 일을 도우며 커간다. 남자는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해온 선생이라고 불리는 의사의 학대 아래 성장한 뒤 선생을 죽이고 집 주인이 된 인물. 아이는 어느 날 자신이 아끼는 장애 아이 ‘도우너’를 죽이려하는 남자의 집에 불을 지르고 탈출한다. 얼마 뒤, 아동을 학대해온 성인 남녀가 거실에서 숨져 있고 냉장고 속에는 훼손된 아동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지하실의 개’처럼 학대받던 아동 유나와 요미, 지유 등이 잇따라 사라지면서 도시에 공포와 혼란이 엄습하고 사회의 모순과 사람들의 부조리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때, 어릴 적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던 수연과 편의점에서 일하는 공시 준비생 영준이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나서는데.

 

“나는 매일 기다리고 있어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강물 위로 떨어지는 햇살에 내려앉아서, 여름날,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겨울날, 얼어붙은 땅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들 곁에서,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나는 기다리고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247쪽)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제1호 독자’의 멱살을 단단하게 포획한 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기어이 끌고가 부조리한 진실을 모두 보여주고서야 풀어줬으니. 독자들을 포획하고 힘차게 끌고 가는 조수경 소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조 작가를 지난 1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소설처럼.

 

―“문은 잠겨 있었다. 동시에 문은 열려 있었다.”로 소설이 시작하는데.

 

“아동 학대라는 것은 보통 집에서 일어난다. 집은 닫혀 있는 공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틈도 있지 않을까 해서 넣었다.”

 

―제1부는 아이와 남자, 선생의 이야기와 유나의 이야기가 두 축으로 무섭게 펼쳐진다.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강렬한 느낌도 든다.

 

“1부는 독자 입장에선 읽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겪었던 일이야말로 소설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럽다. 소설에는 죽은 아동의 시체가 훼손된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론 아이의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치킨을 시켜 먹는 일도 있었다. 소설 그거 말이 돼? 하지만 아이들의 실제가 더 힘들다. 소설보다 아이들의 현실이 끔찍하고 아팠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부에서는 ‘지하실의 개’로 불리는 학대받는 아동들이 많이 나오던데.

 

“제가 이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다른 많은 사람들도 아동 학대에 관심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아동 학대 문제를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 사건이 터졌을 때에는 분노하거나 슬퍼하다가도 금방 잊더라. 일단 자기들이 힘드니까 빨리 잊는다. 사는 게 바쁘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 교육 문제도 급하니까 쉽게 잊는다. 아동 학대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방임인데, 학대와 방임은 다른 것이라고 아는 분들이 많던데, 방임 역시 학대의 일종이다. 관련 기사라도 열심히 클릭하면 좋을 것 같다. 기사를 클릭하면 기자들이 이런 기사를 더 많이 쓸 것이고, 포털도 자주 노출할 것이며, 국회의원들도 국민들이 이것에 관심을 가지네 하면서 더 열심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사회복지사 문제를 꺼냈다. 사회복지사가 학대 받는 아이들의 곁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탓에 문제 해결이 더디다는 취지였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사 한 명당 80건의 사례를 담당하는데, 미국의 경우 12건을 담당하고 있다. 또 일은 힘든데 박봉이고 감정적으로도 힘들어서 술에 의지하는 분이 많다고 하더라. 그분들이 오래 일해야 전문성을 쌓으면서 이런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을 텐데, 2년 정도 하다가 그만두는 분도 많다. 결국 이 모든 문제가 아이들에게 간다.”

 

―소설 마지막은 수연의 죽은 언니 노래인가.

 

“아동학대가 무서운 것이 완전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에는 계부 계모가 저지는 것이 많지만, 실제로는 친부나 친모가 학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 수연 언니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는 아동학대 피해자의 노래일 수도 있다.”

 

―수연이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도 눈이 내리고, 수연 언니의 노래에도 눈이 나오는데, 눈의 의미는.

 

“어른들은 눈이 내리면 운전할 걱정부터 하지만, 영혼을 떠올리면 눈송이지 아닐까 생각했다. 눈은 묘하다. 아름답고, 차갑지만 따뜻한 느낌이다. 우리가 모르거나 안보일 뿐이지, 영혼은 바람일 수도 있고, 빛일 수도 있고, 잠깐잠깐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소설 속의 많은 어른들이 이름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많은 어른들이 김모씨 이모씨 등으로 불리다가 아이들을 위해 행동을 하면서 이름을 얻게 된다. 그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도 떠난 아이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무명씨처럼 살던 어른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하다못해 관련 뉴스 클릭 같은 아주 작은 관심 하나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작품 속으로 몰입이 돼 끝까지 읽게 되더라. 왜 그럴까.

 

“저는 16년째 방송국의 심야 라디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방송국에서 오래 일하면서 도움이 된 게 2가지인데, 첫째는 문장을 쉽게 쓰는 법, 가독성 있는 문장을 익힌 것이다. 라디오 글은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어야 하니까. 두 번째는 심야 청취자 중에 삶이 힘들고 고단한 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아픈 사연이 들어오면 좋은 글을 써서 위로해 주는데, 그분들이 위로를 받으면 저도 행복하다. 청취자의 사연 가운데 아픈 사연에 우선 맘이 가더라. 원래 성격이 밝고 농담도 좋아하고 장난도 잘 치는데, 소설가로선 어두운 부문부터 본다. 소외된 곳, 삶의 사각지대를. 그래서 소설도 어두운 얘기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개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작고 여린, 약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아이가 울면 다들 쳐다보고서 한번쯤 괜찮니, 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조 작가는 여기까지 말하며 영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기자는 의견 한 마디를 보태줬다. 작가가 아동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절박하게 느꼈고, 그래서 본질까지 파고들어갔기에 그 마음이 독자에게 가닿지 않았을까, 라는.

 

―독자의 입장에선 쭉 나아갔지만, 쓰는 작가로선 고비가 있었을 텐데.

 

“사실 1부를 쓸 때가 힘들었다. 아이와 유나의 힘든 시간이었는데, 감정적으로 힘들었고, 굉장히 오래 걸렸다. 유나의 경우는 평택 원영이를 생각하면서 썼다. 2부부터는 비교적 수월하게 썼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아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이 곁들여진다. 아이를 찾아주고 싶어서 속도감 있게 나간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선 오히려 제1부가 훨씬 몰입이 돼 꼼짝없이 끌려갔다) 제 친구들 가운데 아이 엄마가 많이 있는데, 1부에서 다 못 읽고 멈추는 경우가 많더라. 힘들다고 하더라.”

 

작가는 인터뷰 내내 아동 학대 문제의 여러 대책을 강조했다. 가령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남자가 학대를 대물림하는 어른으로 자란 반면, 같은 피해자였던 수연이 학대를 끊는 어른으로 자란 것을 거론하면서 아동 학대 예방 문제를 강조했고, 아동학대 예방 지원금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식탁 앞에 쪼르르 모여앉아서 밥을 먹던 어린 시절, 꼬마 조수경은 이상한 얘기를 지어내서 자주 들려주곤 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든 언니와 동생은 어느 순간 눈물을 뚝뚝 흘리고 듣고 있었으니.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그는 어릴 때부터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책을 읽은 것도 좋아했지만, 그것보다는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더 좋아했으니까.

 

1980년 파주에서 태어난 뒤 서울에서 자란 조수경은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젤리피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문학의 숲, 작가의 길에 들어온 건가.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짓기에 재능이 있어서 상을 받았고, 열세 살이던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처음 소설을 썼다. 비록 창피해서 고교 때 모두 불태웠지만.(웃음) 경희대 국문과에 황순원 선생이 재직 중이어서, 중학교 때부터 경희대 국문과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선 열심히 쓰지 않아서 등단이 늦어졌다. 어릴 때부터 인상 깊은 것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고, 상상을 많이 했다. 읽은 것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등단 이후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과 장편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등을 펴냈다.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신진상 등을 수상했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라디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하루 일상은 어떤가.

 

“보통 오전에는 방송 원고를 쓰거나 다른 사람이랑 얽힌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소설을 쓰거나, 소설과 관련된 일을 한다. 책을 읽거나, 상상하거나. 저녁에는 사람을 만나거나 영화를 본다. 그런 식으로 매일매일. 마감이 있을 때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소설 안에만 빠지는 걸 좋아한다. 여러 가지를 못하는 성격이어서 소설을 쓸 때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전업은 언제) 아직은 밥벌이가 안되니까 일을 해야 한다.”

 

―글을 쓸 때 리추얼이나 징크스가 있는지.

 

“오전에 일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청소를 하기도 한다. 집에 지저분한 것 같아, 펜이 있어야 써질 것 같아, 하는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글을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앉아서 엉덩이로 써야 한다. 리추얼이나 징크스는 딱히 없는데, 에너지 소모 때문인지 글을 시작하기 전 초콜릿, 쿠키, 아이스크림처럼 단 음식을 잔뜩 쌓아놓는 게 저만의 의식이라면 의식인 것 같다.”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제가 조금 어렸을 때엔 10년 후라고 하면 큰 꿈을 꿨는데, 지금은 10년 뒤가 금방, 환갑이 금방 온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10년 뒤에도 계속 쓸 것이고, 더 많은 독자들이 제 책을 읽는 그런 작가이길 바란다. 쓰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만큼 행복하기도 하다...계속 열심히 쓰고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쓸 것이라는 취지의 그 말, 그간 인터뷰했던 수많은 작가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 가운데 하나지만, 왠지 쉽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환하던 그의 얼굴에 뭔지 모를 어떤 비장함 같은 게 스쳐가서였을까. 아니면 여리고 밝았던 그의 목소리에 어떤 절절함 같은 게 느껴져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기자의 과한 상상력과 환각, 또는 감정 이입 때문이었을까. 또 하나의 숙제가 턱 하니 남겨졌고, 그리하여 밖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터져 나왔지만, 끝내 영원으로 향할지도 모를.

 

“첫 번째 장편을 펴냈을 때,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이 많았죠. 그런 리뷰를 보면 그분들이 제 손을 잡아준 것 같아서, 저도 힘이 나고 위로를 받았고요. 제 책은 비록 어둡고 아프지만, 따뜻함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이 팔릴만한 책은 아니죠. 독자들의 니즈를 알고 전략적으로 쓰는 작가들이 있지만, 저의 경우 팔리지 않을 줄 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써야 해, 하는 간절함을 담아서 책을 내면, 화답이 적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읽고 제가 전달하고 싶은 따스함을 느끼고 리뷰를 쓰면 힘이 나더군요. 이런 식으로 독자의 응원을 힘을 입어서 계속 쓸 것 같습니다.”(2022.1.19)


김용출 선임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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