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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랜드캐니언' 한탄강 주상절리길… 벼랑길 따라 절경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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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01 16:08:39 수정 : 2022-01-01 16: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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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한탄강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까지 3.6㎞ 구간에 조성된 주상절리길에서는 화강암과 현무암이 빚어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강원도 철원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은 현무암 주상절리가 빚어낸 풍경이 압권이다. 수십만년 전 북한 평강군 오리산과 680고지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강을 메웠다가 깎여나가며 협곡이 형성됐다. 여름에는 래프팅, 겨울에는 얼음트래킹으로 쉽게 닿을 수 없는 한탄강의 자연을 즐겨왔다. 그러다 지난달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이 열리면서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일반인 개방 한 달여가 지난 한탄강의 잔도(棧道), 겨울철 얼음이 얼지 않아 트래킹을 대신하는 물윗길,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소이산 등을 다녀왔다.

 

◆절벽에 세운 13개의 다리가 주상절리로 이끌다

 

한탄강 일대는 2015년 12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각각 지정됐다. 한탄강은 평강군에서 발원해 철원∼포천∼연천을 지나 임진강과 만나 한강으로 흐른다. 한탄강과 임진강 일부지역은 약 54만∼12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됐다. 현무암 절벽, 주상절리와 폭포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지형경관을 갖게 된 배경이다. 

한탄강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까지 3.6㎞ 구간에 주상절리길이 조성돼 지난달 개방됐다. 철원군 자료에는 “잔도 구간은 1.5m 폭으로 13개 교량과 3개 전망대를 포함해 1415m이고, 데크는 2275m”라며 “한탄강 협곡에 생태관광 거점을 마련해 중국 장가계, 스위스 클리프워크 등 자연생태 탐방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을 국내로 유입해 지역 소득 증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개됐다.

 

김영애(65·여) 지질해설사를 순담게이트에서 만나 13개 다리와 10개의 쉼터, 3개 전망대로 구성된 주상절리길 잔도 탐방에 나섰다. 순담은 조선의 영의정 김관주가 은퇴해 이곳에 머물 때 못을 파서 제천 의림지에서 나는 순채를 재배해 복용하며 요양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1만원을 내자 5000원짜리 철원사랑상품권을 내어준다.

순담 스카이전망대.

순담계곡 쉼터를 지나 반원 모양의 스카이전망대에 닿았다. 다리 바닥이 작은 격자 구멍으로 가득한 데다 강물 쪽으로 말 발굽 형태로 난 길을 걸으니 오금이 저린다. 무서워서 전망대에 닿지도 못하고 되돌아가는 여행객도 많다고 한다. 50∼60m 절벽의 중간 위치에 잔도를 냈으니 그럴 법하다. 어떻게 암벽에 이런 길을 냈을까. 김 해설사는 “4년간 난공사였다”며 “공사 물품을 옮길 방법이 없어서 강 건너 포천시 관인면에서 줄을 이어 짐을 보내 공사했다”고 소개했다. 오른쪽에 시원한 물소리가 이어진다. 순담계곡은 래프팅 C코스 출발점이자, 태봉대교에서 시작되는 7.8㎞ 물윗길의 종착점이다.

 

첫 다리인 단층교에 접어들었다. 단단한 암석이나 지층이 충격을 받으면 틈이 갈라지는데, 이로 인해 암석이나 지층이 이동하거나 미끄러져 어긋나는 것을 단층이라고 부른다. 단층교에선 화강암 절벽의 갖가지 단층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13개 다리는 각각 즐길 수 있는 풍경을 특징짓는 이름이 붙었다.

철원9경의 하나인 고석정은 한탄강 중류에 외롭게 서 있는 고석(孤石)과 정자,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말한다. 인근에 놓인 물윗길을 따라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한탄강은 경사가 급하고 물의 흐름이 빨라 하천의 침식지형이 흔하다. 선돌교에서는 단단한 화강암 바위가 깍여나간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리소 쉼터에 닿았다. 한탄강 여울의 소리가 가마솥 끓는 물 소리 같다 해서 구리소라고 불렸다고 한다. 강쪽을 잘 보면 하천 바닥에 생긴 원통 모양의 깊은 구멍이 있다. 자갈이 물과 함께 회전하며 바위를 갈아내 만들어진 돌개구멍이다. 돌개구멍교를 지나면 한여울교다. 하천 바닥이 급경사를 이뤄 물 흐름이 빨라지는 곳을 여울이라고 한다. 여울에서 산소가 발생해 물을 정화하기 때문에 강의 허파로 불린다. 깨끗한 한탄강을 만드는 자연 정수기인 셈이다. 한여울교 중간에 ‘5단 폭포’ 소리가 시원하다. 원래 없던 이름을 해설사들이 붙였다.

 

화강암교는 13개 다리 중 가장 길다. 이 다리를 지나던 한 여성은 “다리가 흔들린다”며 탄성을 질렀다. 사실 출렁다리로 느껴질 정도로 흔들리는 다리가 여럿이다. 화강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식어서 생긴 암석으로, 한탄강의 기반암이다. 기암괴석이 지천이다. 고릴라, 주름치마, 자라, 이무기 등 곳곳에서 이름 붙이기 경쟁이다.

 

수평절리는 땅속 화강암의 연약한 부분이 가로로 깨지면서 생긴다. 수평절리교 바로 옆 샘소 쉼터에 닿아서야 숨을 고른다. 물살도 잦아 강물 위에서는 오리들이 노닌다. 3.6㎞ 구간에 화장실이 있는 곳은 샘소 쉼터가 유일하다. 샘소는 기묘한 암석들이 둘러싼 가운데 샘물이 솟아난다.

화강암교.

주상절리길은 표고차를 계단으로 맞추다보니 전체 구간에 1300여개 계단이 놓였다. 길을 재촉해 계단 40개쯤을 오르니 바위그늘교다. 강물은 크고 작은 바위 틈을 따라 깊은 땅속까지 침투할 수 있다. 화강암 안쪽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져 동굴을 형성해 그늘을 지운다. 물빛이 쪽빛인 쪽빛소 쉼터를 지날 때쯤 화강암지대가 현무암지대로 바뀐다. 기반암인 화강암 위로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현무암이 덮었다.

 

13개 다리 중 지질, 풍광과 무관한 이름은 2번홀교가 유일하다. 세계지질공원에 있는 한탄강CC의 2번 홀에서 날아오는 골프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리에 보호망을 둘렀다. 철원한탄강 스카이전망대도 반원 형태다. 중간에 강화유리 사이로 바닥이 훤하다.

은하수교는 연장 180m, 폭 3m의 현수교로, 다리 가운데가 강화유리라서 바닥이 훤해 아찔하다.

현무암은 지표로 흘러나온 마그마가 빠르게 식어 생긴 암석으로 어두운 회색이나 검은색이다. 현무암교에서 갖가지 현무암을 볼 수 있고, 현화교에서는 화강암과 현무암이 공존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다리 중간의 동주황벽 쉼터부터 거대한 황토 벽이 마중한다. 동주는 철원의 옛 명칭이다. 김 해설사는 “철원 한탄강은 1억여년 전에 지하의 화강암이 땅밖으로 드러났고, 이후 약 54만년 전부터 약 12만년 전 사이에 현무암 용암류가 이곳을 덮었다”고 설명했다.

동주황벽.

현무암의 주상절리 틈으로 돌단풍이 피어난다는 돌단풍 쉼터와 돌단풍교를 지나 쌍자라바위교에 닿으면 멀리 드르니 스카이전망대가 보인다. 13번째 주상절리교에 이어 너른바위·민출랑·맷돌랑·드르니 쉼터까지 지나면 3.6㎞ 주상절리길 잔도는 끝난다. 너른바위 쉼터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화강암을 볼 수 있고, 민출랑은 전라도 사투리로 ‘깎아지른 절벽’을 뜻한다고 소개됐다. 드르니는 ‘들르다’라는 의미의 우리말인데,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왕건의 반란으로 쫓길 당시 이곳을 들렀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드르니 쉼터 풍경.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내년 3월 중순까지 동절기 일몰에 맞춰 오전 9시부터 30분간격으로 300명씩, 오후 3시까지만 입장객을 받는다. 순담과 드르니 게이트간 무료 셔틀을 운영한다. 드르니 쪽에서 강 건너 포천시 관인면 쪽으로 3년 안에 다리가 놓일 예정이다.

 

◆얼음트래킹 대신하는 물윗길, 철원평야가 펼쳐지는 소이산

 

한탄강 얼음트래킹은 꽁꽁 얼어붙은 하류에서 상류의 강 위를 걷는 철원의 겨울여행 코스였다. 한여름 래프팅으로 즐기던 한탄강 협곡 풍경을 얼음 위를 걸으며 누렸다. 하지만 춥지 않은 겨울이 몇해 거듭되면서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얼음 길을 기대한 여행객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름 래프팅 코스에 겨울에 부교를 놓아 물윗길을 만든 이유다. 물윗길은 올해 벌써 10년차다.

 

김 해설사는 “태봉대교에서 시작되는 물윗길은 고석정까지 6.2㎞,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 1.6㎞ 이어진다”고 했다. 통상 10월에 강 위에 부교를 깔고 이듬해 3월 말까지 그 위를 걷는다. 일부 구간은 유람선 운항이 끝나는 11월 중순 이후 길을 놓는다. 

철원9경의 하나인 고석정은 한탄강 중류에 외롭게 서 있는 고석(孤石)과 정자,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말한다. 인근에 놓인 물윗길을 따라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철원9경의 하나로 한탄강 중류의 고석정으로 향했다. 강 중앙의 고석(孤石)과 정자,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총칭한다. 서기 610년 신라 진평왕 때 고석바위 맞은 편에 10평 규모의 2층 누각을 짓고 고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하고, 서기 1560년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정자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웅거했다는 얘기도 있다. 강 중앙 10m 정도의 거대한 기암봉에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동굴이 있고, 건너편 산 정상에 석성이 남아있다는 설명이 덧붙는다. 고석정을 지나면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돌탑이 가득하다. 물윗길에서 고석정 관광지로 가려면 200여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영화 안내문이 즐비하다.

 

고석정에서 2㎞ 상류에 있는 직탕폭포는 폭 80m, 높이 3m로 일명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불린다. 직탕폭포 인근에 있는 은하수교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1코스인 동송읍 장흥리와 2코스인 칼말읍 상사리를 연결하는 연장 180m, 폭 3m의 현수교다. 다리 가운데가 강화유리라서 바닥이 훤해 아찔하다.

명성산 중턱의 화강암지대에 자리한 20m 규모의 3단 폭포인 삼부연폭포.

삼부연폭포에 닿았다. 명성산 중턱의 화강암지대에 높이 20m 규모의 3단 폭포로 화강암이 오랜기간 깎여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이자 시인인 삼연 김창흡이 폭포의 물줄기가 세 번 꺾어지고, 그 하부는 가마솥처럼 음푹 패어있는 것을 보고 가마 ‘부(釜)’자를 써서 삼부연(三釜淵) 폭포라고 이름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삼부연폭포의 경관을 화폭에 담았다.

 

소이산(362m)에 올랐다. 철원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이곳에 모노레일 공사가 한창이다. 고려 때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는 봉수대가 있었고, 6·25 이전에 화려했던 구철원이 지척이다. 이젠 노동당사만 덩그러니 남았다.

소이산 정상 헬기장에 오르면 철원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

노동당사는 1945년 8월15일 광복 후 북한이 공산독재 강화와 주민 통제를 위해 건립해 6·25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명을 떨친 곳이다. 시멘트와 벽돌로 만든 3층 건물인데, 이 일대는 6·25당시 파괴됐지만 철원읍 시가지였다.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의 양민을 수탈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 건물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실탄 등이 발견됐다.

노동당사.

지뢰밭과 민간인 통제구역에 갇힌 소이산은 육군 6사단이 개방에 합의하면서 2012년 일반인의 발길을 허용했다. 6·25 이후 60년간 통제됐는데, 개방 10년 만인 내년 모노레일로 오르게 됐다. 6·25 당시 소이산에는 북한을 향한 발칸포기지와 레이더기지가 있었다. 방공초소와 부대시설은 최근까지 군이 관리했다. 소이산 밑에서부터 정상까지 지하 교통호가 뚫려있고, 그 안에 물탱크와 화장실, 부대 정비공간, 탄약고, 창고, 발전실 등 진지와 벙커가 남아있다.

군 전략기지에서 평화마루공원으로 탈바꿈한 소이산의 평화 조형물.

소이산 헬기장 가는 길에 작은 건물이 나온다. 미군이 레이더기지로 쓰던 막사는 6·25 이후 군이 사용했다. 소이산에서 보이는 철원평야는 약 6000만년 전 현무암 화산 분출로 생긴 용암대지로 넓은 평야가 발달했다. 6·25 당시 철원평야 확보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로 평가받았다.


철원=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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