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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 트럭 상자에 7000만원 현금이… 22년째 찾아온 ‘얼굴 없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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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29 15:45:00 수정 : 2021-12-29 1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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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쌀 기부천사’, 10㎏들이 쌀가마 60포대 쌓아놓고 사라지기도
29일 오전 전주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인근 한 교회 인근에 주차된 트럭 적재함에서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낸 불우이웃 돕기 성금 상자를 운반한 뒤 세어보고 있다.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마다 세밑이면 노송동주민센터를 찾아 남몰래 성금을 놓고 사라진 그의 선행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 큰 힘이 되고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 또 다른 기부 행렬을 만들어 내고 있다.

 

29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5분쯤 한 중년 남성이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와 “인근 한 교회 오르막길에 주차된 트럭 적재함에 상자가 있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만 짤막히 남기고 끊었다.

 

이에 직원들은 주민센터에서 140m가량 떨어진 현장으로 달려가 한 5t 트럭을 살펴 적재함에 놓인 종이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가득 찬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는데, 세어보니 지난해와 비슷한 7009만4960원이었다. 그는 A4용지에 컴퓨터로 출력한 글씨로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시고 따뜻한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전했다.

 

천사가 노송동에 성금을 몰래 놓고 유유히 사라진 것은 올해로 22년째이며, 성금 누계로는 8억872만8110만원이나 된다.

 

천사의 성금은 2000년 4월 그의 자녀로 보이는 한 초등학생을 통해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이 전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매년 성탄절 전후만 되면 이곳에 수천만원의 현금이 든 종이상자 등을 놓고 사라질 뿐 신분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린다.

 

2019년 이맘땐 천사가 주민센터 화단에 놓고간 성금을 도난당해 경찰 수사로 되찾은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그의 선행은 지속되고 있다.

 

주민센터는 그동안 그가 보낸 성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소년소녀가장과 홀로 노인, 저소득층 등 6158세대에 현금과 쌀, 연탄 등을 지원하고 저소득가정 자녀 2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올해도 답지한 성금을 이런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이웃을 향한 얼굴없는 천사의 계속된 선행은 나비효과처럼 확산하면서 또다른 익명 기부 행렬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27일 이른 아침 완주군 용진읍 행정복지센터 민원실 입구에 익명의 기부자가 쌓아놓고 간 쌀포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완주군 제공

지난 27일 아침 완주군 용진읍 행정복지센터에는 익명의 ‘쌀 기부천사’가 10㎏들이 쌀가마 60포대를 쌓아놓고 사라졌다. 지금까지 14년 간 답지한 쌀은 440포대(8400㎏)나 된다.

 

그 위에는 손 편지도 한 통 놓여 있었다. “너무 추워지는 연말,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어두운 곳에 저의 작은 소망을 금년에도 약소하지만 놓고 갑니다”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용진면 직원들은 기부 천사의 선행을 직감하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답지한 쌀을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고루 전달할 계획이다.

 

인접한 비봉면 행정복지센터에도 또다른 쌀 기부 천사가 등장했다.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은 이달 중순 주민복지팀에 전화를 걸어와 “택배로 백미 20㎏짜리 5포대를 보내겠다. 조금밖에 못 드려 죄송하지만,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약속한 쌀이 도착했다. 이 기부자는 지난해에도 비슷한 시기 쌀 5포대를 보내왔다.

 

지난해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김달봉(가명)’이라는 50대 남성이 5만원권과 1만원권 다발 1억2000만원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건네고 발길을 돌렸다.

 

일상복 차림에 마스크를 쓴 이 남성은 담담한 말투로 “코로나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이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전주시 관계자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본받아 초등생부터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가리지 않은 익명 기부자들이 늘고 있다”며 “온정의 손길이 나비효과처럼 확산하면서 더불어 사는 따듯한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데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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