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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붐… 누가 큰 돈 주는 이야기 써보자 생각했죠”

입력 : 2021-12-28 19:52:09 수정 : 2021-12-28 19: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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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달까지 가자’ 작가 장류진

코인 열풍·직장인 일상·우정 그려내
출판인 60인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출판사 장편 요청에 처음엔 큰 걱정
코인·주식투자는 실제로 하지 않아
자료조사로 흐름 정확히 반영 하고
엑셀로 그래프 만들어 이야기 맞춰”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것들 있어
그런 생각들 결합 하나의 이야기로”
올해 평단과 대중 모두의 지지를 받았던 장류진 작가는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에 대해 “설명하기 난감하다”면서도 “기술적으로 요렇게 해야지, 라고 생각해서 쓴 게 아니라, 제가 읽었을 때 좋아하는 방식으로 써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 제공, ⓒ 유재욱
아이씨, 누가 백만원만 주면 좋겠다! 지난달 월급은 동나버리고 이번 달 월급이 들어오기 직전, 이십대의 직장인이었던 그는 열흘 남짓한 그 기간 거의 매분 매초 그 생각을 했다. 삼십대가 돼서 오래 만난 연인과 둘이 살 신혼집을 구할 때에는 또 이런 생각을 달고 다녔으니. 누가 일억만 주면 좋겠다!고.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용꿈, 피꿈, 똥꿈, 조상님이 나오는 영험한 꿈을 꾸고 나면 로또를 사곤 했다. 추첨을 기다리면서, 그는 생각했다. 아, 3억만 되면 좋겠다! 그 돈만 있으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최적의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또 당첨이 되지 못하고 대신 소설가가 되자, 그는 누가 큰돈을 주는 얘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해와 친구들에게 3억씩 나눠 주는 이야기를. 소설가라는 직업의 장점은 키보드와 모니터만 있으면 어떤 이야기든 만들어낼 수 있는 거잖아. 어차피 소설이라 내 마음대로 줄 수 있으니.

 

“그렇다면 돈을 어떻게 줄까. 2017년, 가상화폐 제1차 붐이 있었지요. TV에선 특집 다큐나 찬반토론을 하고, 모자이크 처리한 사람들이 나왔어요. 이상하게, 그 얘기만 나오면 멈춰서 보곤 했지요. 사람들의 반응이라든지 (존버, 떡상, 가즈아~ 등등) 그런 말들이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큰돈을 주는 소설을 생각하다가 비트코인으로 주는 것으로 해볼까, 아냐, 비트코인은 너무 뻔하니까 이더리움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흙수저 직장 여성 3인의 코인열차 탑승기’로 부를 만한, 우리 사회 가상화폐 문제와 직장인들의 일상과 우정을 빼어난 현실감각으로 그려낸,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론제과의 다해는 은상 언니가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언니의 권유로 투자에 나서 매일 ‘가즈아~’ ‘떡상(상한가 도달)’ ‘달까지 가자’를 외친다. 가상화폐는 실체가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던 지송마저 제주 여행 이후 동참한다. 가상화폐는 한때 ‘떡락’하지만 다시 오르면서 ‘존버’했던 그들 모두 돈을 벌게 되는데.

그리하여, 작품은 “사회의 풍속도를 유머러스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서술”(한영인 평론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료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6위에, 최근 편집자와 마케터 등 출판인 60인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소설’ 조사에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이 무려 10만부가 팔린 데 이어 ‘멀티골’을 터뜨린 셈이다.

장류진과 그의 소설은 어떻게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을까. 그의 소설과 문장에는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일까. 낮에는 비교적 포근했던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장편 ‘달까지 가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출판사에서 장편을 쓰자고 해서 계약했는데, 장편은 써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큰일 났다고 걱정했다. 그러다가 누가 큰돈을 주는 얘기를 소설로 써보자고 생각했고, 그러면 돈을 어떻게 줄까, 하다가 가상화폐 이더리움으로 주자고 생각한 거다. 또 하나는 차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나오는데, 각자 자기의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으로 생각해 봤다. 큰돈을 번 세 사람이 각자 외제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세 사람이 여자라면 또 어떨까. 이더리움으로 큰돈을 벌어서 차를 타는 모습을 쓰자, 해서 나온 것이다.”

―가상화폐 투자 모습이 리얼한데, 실제 가상화폐나 주식투자를 한 것인가.

“제가 직접 하진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는다.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구체적으로 썼다니, 대단하다) 제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건 아니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책에 나오는 가상화폐 시세 흐름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다. 2017년 이더리움 시세를 날짜별로 엑셀 스프레트에 적어 넣고, 세 인물별로 칼럼도 만들어 각자 얼마를 넣고 얼마를 파는 등 수식을 걸어서 1년치 차트를 만들었다. 특정 시기에 어떤 이슈가 있어 폭락을 했고, 어떤 이슈가 있어서 올라갔는지 표시를 한 뒤 그래프에 이야기를 맞췄다.”

―큰돈을 번 뒤 퇴사하고 건물을 산 은상, 몇 억을 벌어 사업을 구상하는 지송, 전셋집을 꿈꾸며 우선 회사를 다녀보기로 한 다해, 이들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알 수는 없다. 현재는 소설보다도 몇 년 후다. 확실한 건, 은상 언니는 건물주가 돼서 떵떵거리고 잘살 것 같다. 지송은 약간 소설 안에 넣어놓은 게 있다. 2017년에는 흑당 밀크티가 큰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후 흑당 붐이 일었기에 사업은 대박이 났을 것이다. 다해는, 은상 언니의 말을 듣고 집을 샀어야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사지 않는 걸 후회하고 있겠죠(웃음).”

2018년 출간된 그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취업준비생부터 시작해, 첫 출근, 직장 초년병 생활, 결혼, 주택 구입 등 보통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이 리얼하게 담겨 있다.

단편 ‘탐페레 공항’은 우연히 퇴근길 지하철에서 핀란드산 자일리톨 껌을 씹게 되면서 6년 전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추억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공항에서 만나 소소한 인연을 쌓은 핀란드 노인 얀은 한국으로 편지를 보내지만, 화자는 바쁜 일상 속에서 답신을 보내지 못한다. 식품회사 회계팀에 취직한 그는 피디 채용공고에 응모하려다가 후회하는 일을 묻는 질문에 불현듯 노인의 일을 떠올리고 여러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 소설은 어떤 계기로 썼는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 하나는 2008년 대학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핀란드에 갔다. 다녀오면 취직을 해야 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에 경제상황도 어려워지고 취직도 어려워질 때여서 걱정이 많았다. 아름답고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마음속에는 금융위기인데 돌아가서 취직을 어떻게 하지, 풍경과 다르게 현실에 대한 생각이 계속 충돌한 감정이 녹아났던 것 같다.”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중고거래 앱 ‘우동마켓’을 운용하는 스타트업 직장인 안나의 이야기다. 그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문제의 거래빈발 고객 ‘거북이알’을 만났다가 대표에게 찍혀 포인트로 월급을 받는 그의 웃픈 사연을 듣게 되는데.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나왔나.

“재취업을 준비하던 2018년 초, 이 작품을 썼다. 내가 할 일, 일할 공간, 만나게 될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게 됐다. (여러 경험이 녹아 있는 것 같은데) 어떤 회사에선 포인트로 월급을 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많은 이야기들은 대체로 잊어버리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것도 있다. 그는 그만뒀을까, 먹고살려고 어떻게 했을까, 문뜩문뜩 이런 생각을 하던 게 들어갔다. 판교에 소설에 나온 것과 비슷하게 건널 수 없는 육교가 있는데, 거기를 지나갈 때마다 다른 사원증을 건 두 사람이 위로 올라가 둘러보는 장면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 있다가 결합돼 하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등을 차례로 펴냈다. 심훈문학대상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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