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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남과 짐승남의 기묘한 브로맨스를 만나는 호주 와인 여행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21-12-25 12:02:11 수정 : 2021-12-25 1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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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킨보탐 더 피크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 포털에서 ‘세련되고 중후한 남자 배우’를 키워드로 검색하니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가 조지 클루니이군요. 한국 배우는 현빈, 이병헌과 요즘 핫한 이정재 등이 검색됩니다. 이정재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연기 변신을 했지만 이전 영화나 드라마에선 날이 서고 세련된 도시남자의 이미지가 강했죠. ‘포도품종의 왕’ 카베르네 소비뇽이 이들과 많이 닮았어요. 한 모금에도 세련되고 중후한 이미지가 떠오르죠. 탄닌과 아로마가 강하며 색깔도 진하고 산도가 높아 앙상하고 날이 서 있는 느낌입니다. 자두, 완숙된 딸기, 민트향, 꽈리꼬추의 스파이시한 향이 대표적이죠.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메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정반대 캐릭터를 지녔답니다. 산도와 탄닌이 부드럽고 바디감도 풍만하며 레드체리 등 붉은과일향이 풍성합니다. 우아한 귀부인의 느낌으로 모니카 벨루치나 안젤리나 졸리와 비슷하겠네요. 이 처럼 두 품종은 서로 단점을 보완해주기에 프랑스 보르도의 대표적인 블렌딩 방식으로 자리잡았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두 품종을 마치 수학공식처럼 블렌딩할 정도죠. 카베르네 소비뇽이 건물의 철골 구조물이라면 메를로는 콘크리트 격으로 서로 찰떡궁합처럼 보완이 잘됩니다.

 

제이슨 모모아. 왕좌의 게임 인스타그램 캡처
제이슨 모모아.  왕좌의 게임 인스타그램 캡처

호주 쉬라즈도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데 카베르네 소비뇽과는 많이 다른 짐승남 캐릭터입니다. 컬러가 아주 짙고 산도는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낮지만 탄닌은 훨씬 부드럽답니다. 검은후추, 가죽향이 나고 더운 지역으로 갈수록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쵸콜릿이나 블랙체리 등 검은 과일향이 진해지고 스위트한 향신료도 더해집니다. 숙성되면 감초나 애니멀 노트, 야채 느낌도 피어납니다. 인기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용 엄마’ 에밀리아 클라크(대너리스 타르가르옌 역)의 남편 칼 드로고 역으로 활약한 제이슨 모모아가 바로 떠오르네요. 야생적인 근육질 복근이 엄청났죠. 그렇다면 이런 상반된 캐릭터를 지닌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를 블렌딩하면 어떨까요. 아마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와인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호주 멕라렌 베일 위치
멕라렌 베일 와인 지역

#호주 멕라렌 베일 최고의 포도밭 클라렌던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의 기묘한 동거. 이 와인을 찾으러 바로사 밸리(Barosa Valley)와 함께 호주 쉬라즈를 대표하는 맥라렌 베일(McLaren Vale)로 떠납니다. 이곳은 바로사 밸리나 애들레이드(Adelaide)보다는 신생 와인생산지이지만 이미 1800년대부터 과수원이 널리 퍼질 정도로 과일이 아주 잘 자라는 곳입니다. 포도가 자라는데 아주 적합한 기후를 지녔는데 애들레이드보다 남쪽이고 바다를 끼고있는데다 고도가 높아 아주 서늘한 기후를 보입니다. 풍부한 일조량은 낮에 포도를 잘 익게 하고 큰 일교차는 밤에 포도가 신선한 산도를 잘 움켜쥐게 만듭니다. 덕분에 응집력이 뛰어나고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 적합한 포도가 생산됩니다.

 

멕라렌 베일 포도밭 전경. 멕라렌 베일 홈페이지
히킨보탐 클라렌던 빈야드

맥라렌 베일에서도 서쪽의 클라렌던(Clarendon)은 이런 장점이 극대화 된 포도밭입니다. 해발 315m로 고도가 높고 인근의 바다와 강 덕분에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일교차가 커 밤에 포도는 산도를 잘 머금게 됩니다. 약 경사 40도 가량의 비탈에 자리 잡아 낮에는 햇볕을 잘 받고 배수도 잘 됩니다. 강의 상부로 돌과 암석이 많은 척박한 토양이라 포도나무는 물과 영양분을 찾아 뿌리를 깊이 내릴 수 밖에서 없답니다. 덕분에 토양의 미네랄을 잔뜩 움켜쥐고 천천히 숙성되면서 집중도 높은 포도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곳에서 자란 포도는 굉장히 뛰어난 산도와 신선함 지니고 숙성잠재력이 좋은 와인을 만들기 아주 적합하답니다.

 

클라렌던에 1971년 포도나무를 처음 심은 이는 알렌 로브 히킨보탐(Alan Robb Hickinbotham). 그는 1929년 호주 최고 와인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애들레이드 대학에 와인 교육학과를 설립한 장본인으로 호주 와인 발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히킨보탐은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 쉬라즈, 그르나슈 등을 식재했는데 포도 품질이 뛰어나니 유명 와이너리들이 당연히 눈독을 들였겠죠. 호주 ‘국가대표 와이너리’ 펜폴즈(Penfold’s)의 그랜지(Grange)와 펜폴즈의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빈(Bin) 757, 하디(Hardy)의 엘린 하디(Eileen Hardy) 등 유명한 와인들이 이곳의 포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와인메이커 크리스 카펜터. 히킨보탐 홈페이지
히킨보탐 더 피크

#두 천재 와인메이커의 ‘브로맨스’

 

히킨보탐은 2012년 잭슨 패밀리에 인수됐고 현재 두 천재 와인메이커 크리스 카펜터(Chris Carpenter)와 피터 프레이저(Peter Fraser)가 히킨보탐을 이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태어난 작품이 바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가 결합한 히킨보탐 더 피크(The Peake)입니다. 둘다 센 품종을 섞는 것은 굉장히 생소한 블렌딩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미 아주 오래전 프랑스 보르도에서 시작된 블렌딩 기법이랍니다. 1800년대 초 호주 식민지 개척자들이 프랑스에서 첫 포도나무를 구입할 때부터 보르도의 유명 와이너리에서는 론 지역의 에르미타주에서 생산된 시라를 카베르네 소비뇽에 소량 블렌딩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호주로 건너온 보르도와 에르미타주의 포도 품종들은 필록세라 피해를 당하지 않아 아주 옛 모습 그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크리스 카펜터는 카베르네 소비뇽, 피터 프레이저는 쉬라즈 마법사로 통합니다. 재즈를 사랑하고 트롬본 연주를 즐기는 생물 화학자이자이기도 한 크리스 카펜터는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클래식한 보르도 품종 와인을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해 ‘마운틴맨’으로 불립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를 대표하는 컬트와인 카디날(Cardinale), 로코야(Lokoya), 라 호타(La Jota), 마운틴 브레이브(Mt. Brave)가 바로 그의 손에서 빚어집니다.

 

히킨보탐 더 피크 2016과 2018
와인메이커 피터 프레이저

반면 피터 프레이저는 맥라렌 베일의 양가라 에스테이트 빈야드(Yangarra Estate Vineyard)의 수석 와인메이커로 ‘쉬라즈와 그르나슈 마스터’로 불릴 정도로 두 품종을 다루는 능력이 매우 탁월합니다. 피터 프레이저는 친구이던 크리스 카펜터를 초빙해 2017년부터 히킨보탐의 포도밭 200ha에서 파트너 십으로 와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피터 프레이저는 굉장히 우아하면서도 산뜻한 스타일의 와인을 잘 만들고 디테일에 강한 크리스 카펜터는 1~2% 블렌딩이 와인 전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분화해서 와인을 만든다고 하네요.

 

히킨보탐 와인들
히킨보탐 더 피크 2018

#짐승남과 도시남의 기발한 동거 ‘The Peake’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를 섞은 와인은 어떤 맛일까요. 상남자끼리 만난 덕분에서 스케일이 아주 크고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와인이 탄생했군요. 히킨보탐 더 피크 2018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향기로운 블랙 베리 파이, 다크 초콜릿의 아로마를 선사하고 여기에 쉬라즈는 검붉은 자두, 토스티함을 더합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산도는 잘 살아있으면서도 탄닌은 부드럽게 만들어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여운까지. 한 모금에도 폭발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니 ‘단 하나의 호주 크랑크뤼’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네요.

 

알란 로브 히킨보탐은 1860년대 클라렌던 빈야드에 처음 포도나무를 심은 공상가 에드워드 존 피크(Edward John Peake)에게서 영감을 받아 1971년에 이곳에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군요. 와인 이름은 이런 피크에 대한 오마주로 황무지에 생명을 불어넣은 그의 개척 정신을 잇는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피크는 와인 양조자, 디자이너, 농부, 화가, 광부, 고딕 건축 부흥가, 철도 책임자이며 카베르네 소비뇽와 쉬라즈 애호가였다는군요.

 

히킨보탐 더 피크
히킨보탐 더 피크 2016

더 피크는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 55%, 쉬라즈 45%로 블렌딩합니다. 쉬라즈의 과일감을 카베르네 소비뇽이 덮어 버리지 않는 적절한 비율입니다. 2016년과 2018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2018이 좀 더 과실향이 잘 느껴지고 밸런스도 좋으며 생동감이 넘쳐 지금도 마시기 편합니다. 더 피크 2016년은 블랙베리, 무화과 같은 과일향이 돋보이고 감초 등 허브와 커피, 가죽 등 숙성향이 더 확실하게 느껴지지만 속내를 잘 보여주지 않기에 디캔팅이 필수입니다. 1~2년 숙성을 더 거치면 활짝 열릴 것 같아요.

 

와인메이커 크리스 카펜터
히킨보탐 트루맨
히킨보탐 트루맨

#크리스 카펜터의 트루맨과 리바이벌리스트

 

카베르네 소비뇽은 크리스 카펜터가 가장 잘 만드는 품종입니다. 당연히 100%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도 선보이고 있는데 바로 히킨보탐 트루맨(Trueman)입니다. 2016 빈티지는 굉장히 아름다운 카베르네 소비뇽입니다. 코에 갖다 대는 순간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정도로 품종 특성을 잘 살려 스파이시한 꽈리고추향이 비강을 자극합니다. 레드베리, 블랙체리 등 검고 붉은 과일과 라벤더, 제비꽃 같은 보랏빛 꽃향, 담배와 머스크, 그리고 오크숙성에 오는 바닐라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멋진 슈트를 잘 차려입은 아주 세련된 도시남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네요. 15개월동안 숙성하며 프렌치 새오크 비중이 75%로 비교적 높은 편인데도 오크향이 튀지 않고 잘 녹아있는 것을 보니 오크를 다스리는 기술이 아주 뛰어 난 것 같네요.

 

히킨보탐 리바이벌리스트
히킨보탐 리바이벌리스트

히킨보탐 메를로 와인 더 리바이벌리스트(The Revivalist)도 크리스 카펜터의 작품입니다. 2016은 메를로 96%에 쁘띠베르도 4%를 넣었습니다. 사실 호주에서 메를로는 크게 인기있는 품종은 아닙니다. 갓난아기처럼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품종이기 때문이죠. 특히 수분과 적절한 일조량이 잘 받쳐줘야 합니다. 보르도 품종을 잘 다루는 크리스 카펜터는 호주 최고의 메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역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메를로는 아주 풍부한 허브향과 잘익은 검고 붉은 과일풍미를 선사하면서 볼륨감, 구조감, 탄닌을 담당하고 쁘띠베르도는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숙성이 잘 진행돼 시간이 지날수록 말린 허브와 스위트 타바코 같은 숙성풍미가 많이 올라옵니다. 15개월동안 프렌츠 오크(뉴오크 25%)에서 숙성합니다.

 

와인메이커 피터 프레이저
히킨보탐 브룩스 로드

#쉬라즈 장인 피터 프레이저의 브룩스 로드

 

히킨보탐 와인들은 하이트진로에서 단독 수입중입니다. 피터 프레이저의 작품인 히킨보탐 브룩스 로드(Brooks Roads)는 쉬라즈 100%로 쉬라즈 장인의 솜씨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호주 쉬라즈는 ‘미녀와 야수’, 두 가지 스타일을 모두 만날 수 있는데 브룩스 로드는 미녀쪽에 가깝네요. 50년 수령의 포도로 부드럽게 압착해 우아한 스타일로 만듭니다. 500리터 프렌치 오크(뉴오크 30%)에서 1년 숙성한 뒤 2차로 25헥토리터(hL) 푸드르와 18hL 콘크리트 에그에서 6개월 동안 숙성합니다. 이렇게 하면 오크향이 과하지 않고 탄닌과 바닐라향만 약간 깃들게 됩니다. 2019 빈티지는 제비꽃향 같은 아로마가 지배적이며 블랙베리, 블루베리, 카시스, 에스프레소, 스파이시 등 복합미가 느껴집니다. 바위가 많은 토양덕분에 피니시에서 미네랄도 잘 느껴집니다. 신선하게 지금 마시기도 좋지만 3~5년 정도 더 셀러에 보관하면 이런 향들이 활짝 열릴겁니다.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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