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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기준 복지제도 소외층 생겨… 욕구 기반 재설계 시급” [심층기획 - 고령사회 ‘연령주의 극복’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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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15 06:00:00 수정 : 2021-12-15 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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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사회복지제도 개선 어떻게

주요 사회복지혜택 노인층에 집중
재원 담당 젊은층 불만 유발시켜
연금 기금 고갈론속 형평성 논란도

“개인 필요성 감안 수혜자 선정방식
나이 관계없이 선택권·자율성 보장
고용 불안정 문제 해소에 더 적합”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수아(가명·32)씨에게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에 한 끼뿐이다. 퇴사 후 모아둔 돈으로 시험 준비를 시작했으나 수험생활이 길어지면서 생활비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에서 주는 청년수당도 이달이 마지막이다. 아르바이트와 수험생활을 병행해야 할 상황에 처한 김씨는 “시험준비 기간이 더 길어질까 걱정”이라며 “청년수당이라도 몇 개월 더 받을 수 있었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반면 올해부터 국민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강철민(가명·62)씨는 ‘연기연금제도’를 활용해 연금 지급 시기를 미뤘다. 은퇴 후 재취업한 회사 소득으로도 생활이 충분해서다. 최대 5년까지 지급을 미룰 수 있는데, 이 경우 연금액이 가산돼 36%의 수령액을 더 받을 수 있다. 강씨는 “아직 연금 없이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며 웃어 보였다.

 

사회복지제도의 주요 수혜자가 노인이어야만 할까. 청년 4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자인 우리 사회에서는 ‘사지 멀쩡한 청년’도 생존을 위해 나랏돈을 지원받는 게 불가피하다. 연령주의 극복을 외치는 전문가들도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사회복지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노인뿐 아니라 청년·중장년층 등 전 연령층에서 노동시장 진입이 어렵고, 높은 일자리 불안정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수시로 이탈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연령주의 극복 사회’란 쉽게 말해 나이와 관계없이 원하는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하며, 원하는 여가를 즐기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교육·고용·복지 등 여러 사회적 기반이 나이와 무관하게 제공돼야 한다. 나이가 아닌 정책 수급자의 ‘욕구’를 기준으로 하는 사회복지제도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복지제도 대부분 ‘나이’ 기준

 

14일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제도는 대다수가 ‘나이’를 기준으로 수혜 대상자를 정한다. 대표적인 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의 경우 올해는 62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2033년부터는 수급개시 연령이 65세로 상향된다. 소득 하위 70%에게 지원하는 기초연금도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자로 한다.

 

의료보장제도도 마찬가지다. 치매 검진은 만 60세 이상이 기준이다. 65세 이상은 치과 임플란트 지원과 폐렴·독감 예방접종 무료지원 등도 받을 수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역시 우선접종 대상자를 선별하는 주요 기준이 나이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나이 기준 복지제도가 연령주의 극복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복지 혜택이 노인층에 주로 집중된다는 인식을 강화해 복지 재원을 담당하는 젊은층의 불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이 그 예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2055년 무렵이면 90년대생이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된다.

 

이처럼 국민연금 고갈론이 계속 대두되다보니, 청년층에선 ‘우리는 내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거냐’며 연금제도에 대한 불안·불신이 커진 지 오래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사회복지에 대한 욕구는 청년층 등 전 연령에서 높아지고 있는데 나이 기준 사회복지제도는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다보니 소외된 연령층에서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욕구’ 기준 복지제도 설계가 해법

 

전문가들은 나이가 아닌 복지제도 수혜자들의 ‘욕구’에 기반한 복지제도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일률적인 나이가 아닌, 개개인의 실질적인 필요성을 기준으로 수혜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욕구 기반 복지서비스의 대표적인 예는 독일의 장기요양보험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을 급여대상자로 한다. 장기요양보험조합에 신청하면, 자립성의 제약이나 능력의 손상 정도를 보고 등급을 판정한다. 또 시설급여와 재가급여, 현금급여 중 선택이 가능해 수혜자의 선택권과 자율성도 보장한다.

 

욕구 기준 복지제도는 전 연령층에 해당하는 고용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는 데 보다 적합하다.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청년들과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중·장년층의 ‘소득 보장’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어서다.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은 “나이와 무관하게 생애주기 언제라도 소득 보장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 가기 위해서 더 적합한 형태”라며 “최근 플랫폼 노동·초단기 근로 등 고용보험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노동 형태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욕구에 기반한 복지제도 재설계는 재정 효율성도 높인다. 연금개혁을 예로 들 수 있다. 4년 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정년연장 논의는 불가피하다. 일하는 노인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보니 국민연금 등에 대한 필요성이 개인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은퇴 시점과 연금 수급 나이를 개인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면 일정 나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연금 수급을 일률적으로 개시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 가능해진다.

 

성공적인 연금개혁의 모델로 꼽히는 스웨덴도 이렇게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이뤄냈다. 개혁 전 연금제도에서는 수급 개시 나이가 65세였으나, 개혁 후 제도에서는 61세가 지나면 스스로 연금 수급 개시 나이를 정할 수 있게 했다. 은퇴 시점을 자신이 결정하고, 은퇴 직후부터 자신이 낸 만큼 연금을 받는다. 65세 이전에 수급을 개시하면 매월 수령액이 감액되고 반대로 개시 시점을 늦추면 수령액이 늘어나는 구조다. 스웨덴은 이 같은 개혁을 통해 재정 안정화까지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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