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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살레스 토레스의 ‘완전한 연인’
사랑을 두 개의 벽시계로 표현해
시계 통해 삶과 사랑 이야기하며
동시에 관람자에 질문 던지는 듯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만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서양의 옛 그림에서는 손에 커다란 낫을 쥔 날개 달린 노인으로 시간이 의인화돼 있다. 이 시간 영감은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저승사자의 역할도 한다.

여러 나라의 언어에서 시간은 ‘흐른다’고 표현한다. 아마도 시간은 강물처럼 손으로 붙잡을 수 없이 흐르는 본성을 지닌 모양이다. 시간이 ‘휙 지나간다’는 말도 자주 쓰는데, 이때는 강물 대신 발이 달린 꽤 빠른 생명체가 떠오르기도 한다. 흐르건 지나가건 상관없이 시간은 거꾸로 거스를 수 없이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방향성 때문에 아이는 청년이 되고, 청년은 노인으로 변한다. 역방향은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미술사

‘시간이 없다’는 문장도 바쁘다는 뜻 대용으로 흔히 쓴다. 오늘이 저물어도 다음날이면 시간은 또 생겨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며 산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자유로운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자유로운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걷기의 인문학’을 저술한 리베카 솔닛은 발걸음 닿는 대로 걷는 산책을 통해 자유로운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산책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자유로운 시간을 첫 번째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다. 아무리 가난해도 쌀이 떨어지듯 시간이 다 떨어져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시간을 남에게 제공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한 시간은 부족하다. 부자라고 해서 시간을 더 포획해 창고에 쌓아둘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서 날 위해 쓰도록 할 수는 있다.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누리는 게 시간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조차 자본주의의 섭리를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남겨진’ 시간을 주제로 작업을 한 미술가가 있었다. 그는 촛불처럼 타들어가는 시간을 살아야 했다. 38년밖에 되지 않는 생애가 주어졌고, 그중 10년 정도를 미술가로 활동했던 그의 이름은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다. 쿠바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스페인의 고아원으로 보내져서 청소년기까지 자라고,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전 세계인을 공포로 내몰았던 시기에 그 재앙을 직접 겪었다. 에이즈에 감염돼 죽어가는 연인의 마지막 시간을 지켜보아야 했고, 자신도 결국 그 병으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곤살레스 토레스는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미술관 벽에 둥근 모양의 벽시계 두 개를 나란히 거는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시계는 동일제품이고 애초에 초침까지 동시에 움직이도록 설정됐으며, 제목은 ‘무제’이지만, 괄호 안에 ‘완전한 연인’이라는 사랑스러운 두 단어가 쓰여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시간을 여기에 담아두고 미술작품처럼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둘이서 마치 두 시계처럼 매 순간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똑같은 운명을 지닌 시계로 표현했나 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같은 시계를 두 개 사서 똑같은 건전지를 넣고 동시에 작동시킨다고 해도, 사실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초침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그러다가 어느 날엔 시계 중 하나는 건전지가 먼저 떨어져 멈추고 만다. 평생을 그토록 간절하게 하나이고 싶었던 연인도 두 시계처럼 제각각 다른 시간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두 시계를 통해 자기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관람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완전한 연인’은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품으로 걸려 있다. 2019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옛 친구를 10년 만에 우연히 만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금 보니 웃고 있는 우리의 등 뒤로 곤살레스 토레스의 두 시계가 걸려 있다. 한때는 늘 붙어 지내던 사진 속 두 친구는 앞으로 어떤 다른 운명으로 살아가게 될지 궁금하다. 시간만큼은 공평하다고 하는데, 개개인에게 할당된 시간의 양과 밀도는 정말로 똑같을까?


이주은 건국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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