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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박멸’ 안 돼 공존이 답
두려움 넘어 ‘일상의 회복’ 기대

어느 날 외국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헬싱키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오래 보았다. 아내는 활짝 웃고 있다. 사진을 보는데,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기분이 몰려오는 순간 가슴이 울컥해졌다. 우리는 북유럽 도시의 플리마켓을 둘러보고, 바닷가 식당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었다. 이국의 도시에서 꿈결같이 보낸 휴가였다. 불과 서너 해 전인데, 그 여행이 기억에서 아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파생시킨 소동이 지구를 휩쓴 지 두 해가 지났다. 면역 위기는 바이러스와 관련한 유언비어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혼란과 불안을 키운다. 바이러스는 확진자의 비말로 전염되고 더러는 무증상으로 퍼지는데, 이에 따른 공포는 흩뿌려지고 퍼져나가는 것의 공포다.

장석주 시인

질병청 관계자가 날마다 확진자 숫자를 발표하고, 개인위생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며, 마스크 쓰기를 독려한다. 손을 잘 씻고, 외출할 때 마스크를 써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 팬데믹 사회는 모두를 감염의 위기로 내몬다. 우리는 붐비는 지하철 안,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옆에 있는 사람을 의심한다. “모든 이웃은 잠재적인 바이러스 운반자다.” 이런 근거가 미약한 의심이 이웃과 불화를 낳고, 사회적 관계에 뒤틀림을 가져온다. 팬데믹이 사회 관행을 바꾼 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가 면역의 방호벽으로 여겨진 탓에 그걸 어기는 이는 비난을 받고 공분의 대상이 됐다. 4인 이상 모임은 금지되고, 이동이나 사회활동은 최소한으로 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이 권고는 삶의 실질적인 제한이다. 결혼식이나 강연 같은 대면 행사는 취소되고, 인기 스포츠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확진자는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확진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났는지 동선이 낱낱이 밝혀지고 무자비하게 격리됐다. 이 모든 게 바이러스에서 시작됐다. 팬데믹이 격리 사회를 만들고, 바이러스는 우리를 좀비로 만든다. 격리 사회에서 우리는 죽지도 않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좀비로 방치된다. 우리는 겨우 살아 숨 쉬는 삶의 최소주의 속에 속박된 채로 살았다. 바이러스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물음을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바이러스가 ‘사회의 거울’이고,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예방 백신으로 확진자는 줄지 않는다. 백신을 맞은 일부는 돌파감염이 됐다. 백신이 치사율을 떨어뜨렸으나 우리를 감염 위기에서 해방시키지는 못한다는 게 드러났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일으키며 위세를 떨친다. 바이러스 감염 위기는 오직 테러에만 견줄 수가 있다. 우리는 테러에 노출된 벌거벗은 생명들이다. 팬데믹은 곧 생명의 위기다. 일상을 마비시키고 영세 자영업자를 줄도산 위기로 밀어넣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생존의 히스테리를 불러온다.

우리는 무작위로 흩뿌려지는 바이러스의 기원도 밝히지 못한 채 팬데믹 이전과 다른 세계로 밀려 들어왔다. 팬데믹 이전의 안녕과 평화가 담보된 삶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전에 겪지 못한 전례 없는 생명의 위기 앞에서 절망감에 진절머리를 치며 나날을 견뎌낸다. 그러나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새날은 밝는다. 우리는 팬데믹의 한복판을 지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일은 없으니, 살아 있는 한 인류는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팬데믹 이후를 설계할 때다.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박멸이 아니라 면역 위기와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이다. 삶은 계속돼야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 웃고 먹고 마시며 우정을 나누자. 잃어버린 일상의 질서와 평화를 되찾고, 소박한 기쁨을 누리자. 만성화된 불편과 제약을 털어내고 다시 여행을 떠나고, 벗들과 담소를 나누고, 공원을 산책하자. 주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공연장을 찾아 공연을 즐기자. 그렇게 의미와 생기로 가득 찬 가슴 설레는 나날을 누리자.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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