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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의 비극… 서글픈 청년 ‘간병살인’ 선처 목소리 고조

입력 : 2021-11-08 06:00:00 수정 : 2021-11-07 20: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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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마비 부친 굶겨 죽인 혐의
1심 징역 4년… 2심은 10일 선고

56세 젊은 부친, 요양급여 못받아
가스 끊긴 집에서 생활고 속 간병
지자체도 알지 못해 지원 못받아

이재명·심상정 등 잇단 탄원 동참
金총리도 “국가가 역할 못해 죄송”

지난 8월 22세 청년 강도영(가명)씨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5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기고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 가스가 끊기고 쌀을 사먹을 돈마저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고, 복지제도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강씨의 형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를 선처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밖에도 강씨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을 나가 아버지와 둘이 지냈고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느라 24시간을 홀로 간병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에 대한 2심 선고는 오는 10일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다.

7일 탐사보도 매체 ‘셜록’ 등에 따르면 6일 기준 ‘강도영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에 약 6000여명이 서명했다. 탄원서에서 글쓴이는 “강씨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엄한 처벌을 하는 게 타당하다면 경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청년에게 간병노동을 떠넘긴 우리 공동체는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강씨는 우리 공동체가 외면한 짐을 홀로 짊어졌고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됐을 때 자기도 포기하고 그 짐을 내려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강씨의 죄를 존속살해가 아닌 유기치사로 판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처음 이 사건이 공개될 때만 해도 강씨는 ‘아버지를 굶겨 죽인 패륜아’로 묘사됐지만, 이후 탐사보도 매체의 취재로 이 같은 사연이 알려졌다. 파장이 확산하자 대선후보 등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생긴 비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사를 공유하며 “이 사건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모두의 방임과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진 타살”이라며 “그 무게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한 청년에게 모두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하다”며 탄원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 후보는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22살 청년 강도영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이재명 후보 SNS 캡처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도 지난 5일 SNS에 “우리가 그에게 드리는 답은 ‘살인죄 실형’이 아니다”며 “국가와 동료 시민들이 그의 곁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 출석해 “국가가 역할을 다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강씨의 선처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건 결국 강씨 사례와 같은 ‘간병살인’에 정부 책임이 크다는 시각 때문이다. 강씨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진 직후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요양급여도 받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가 56세로, 요양급여는 만 65세 이상만 받을 수 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22살 청년 강도영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심상정 후보 SNS 캡처

또 가난하거나 아픈 사람이 행정기관에 본인의 사정을 입증을 해야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당사자 신청주의’에 입각한 복지체계로 인해 관할 지자체가 강씨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씨 가족은 집에서 간병을 시작한 이후 경제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월세를 밀리고 도시가스·휴대폰도 끊겼지만 긴급복지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복지시스템에 대한 긴급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김범중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강씨는 노인과 장애인에 집중되어 있던 한국형 복지시스템의 전형적인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라면서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긴급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국가가 먼저 발굴할 수 있게끔 인력과 예산을 충원해야 하고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케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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