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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이제는 영화 인생 끝났다는 생각 가질 나이”

입력 : 2021-10-07 16:40:47 수정 : 2021-10-07 16: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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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왼쪽)이 7일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성민 기자

한국 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이 오래간만에 기자들 앞에 섰다.

 

7일 오후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만난 임 감독은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함께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걸음으로 간담회장에 올랐다. 올해로 86세. 마이크 잡은 손이 떨리고 때로 질문과 대답이 안 맞는 등 노쇠한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초롱초롱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은 그는 “이제는 영화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을 가질 나이가 됐다”며 “끝난 인생에서 공로상 비슷하게 받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지만 더 활발하게 생이 남은 분들에게 가야 될 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 감독과의 일문일답.

 

-차기작을 구상한 게 있나.

 

“지금은 계획이 없다. 평생 영화를 찍기로 직업으로 삼고 살다가 쭉 쉬고 있으니까 영화 더 허고 싶지 않냐 하지만, 저 스스로 멀어져야 할 나이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건 내가 만들고 싶었는데 못 만들어 아쉽다는 영화가 있는지.

 

“저는 100여편을 찍은 감독이기 때문에 생각나는 건 다 찍고 그랬는데. 못 찍었던 것은 우리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종교적 심성 무속이 주는 것들 이런 것을 영화로 한 번 찍어봤으면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도 없고. 기회가 주어진대도 사양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한테 넘겨야 하는 그런 단계에 와있다.”

 

-극장이 존속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가 어떤 영화로부터 위안을 받던가, 재미를 받던가,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쪽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는 시대에 왔고, 괴상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영화관이 위안받고 시간 보내기 좋은 매체니까 다시 찾을 것으로 본다.”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영화의 저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몇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를 보고 나 자신도 좀 짜증 나는 구나 하는 허점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허점이 보이지 않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에 대해 불만이 없다.”

 

-기생충을 보고 너무 좋아서 봉준호 감독에게 직접 전화해서 좋았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으시다고.

 

“너무 좋았기 때문에. 늘 우리 한국영화는 불완전한 점이 눈에 띄곤 했는데 근자에 와서 봉준호 감독 이런 분들의 영화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그런 수준의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우리 영화도 이제 세계적 수준에 들어와서 탄탄하게 가고 있구나 한다.”

 

-영화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

 

“내 역량은 미치지 못하는데 계속 큰 영화제에서 상을 타오기를 기대하는 기대심. 여기 계신 분(허 위원장)도 그런 압력에 가세해서 좀 고달프게 했는데. 그런 압력이 영화 인생을 너무 쫓기게끔 살게 만든 것 같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나도 즐기면서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고통 안에서 작업을 했었구나 생각한다. 그건 제 책임이 아니고 여기 옆에 계신 분들이 기여하신거다.”

 

-후회스러웠던 것.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다. 너무 많은 것을 후회하고 산다.”

 

-20대 신인 감독 임권택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나이 들고 나서 어떤 젊은 패기로 산 나에 대해서 웃는다. 까불고 살았네 하며. 나는 살아온 인생에서 무엇인가 착각 때문에 헛바퀴 돌면서 많이 살았다. 그러면 지금 나이 들어서 제대로 코스를 잡았느냐. 그것도 잘 모르겠다.”

 

-영화 인생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 동료가 있다면.

 

“한 번도 칭찬을 안 해서 늘 꾸중을 듣고 사는 우리 집사람. 처음으로 이런 자리에서 칭찬하고 싶다. 신세 많이 졌고요. 별로 수입도 없어서 넉넉한 삶이 아닌데 잘 견뎌줘서 아직도 영화감독으로 대우받고 살게 해준 우리 마누라에게 감사드립니다. 울 줄 알았는데 안 우네요.”

 

-영화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102편인가를 찍은 경력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요. 한 마디로 얘기하라고 하는 것은 나를 죽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에요. 한마디로 하면. 영화가 좋아서 그것 쫓아서 살았어요.”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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