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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⑤]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은 필수, ‘투쟁과 수양’ 계속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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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7 20:15:53 수정 : 2021-09-17 2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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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선진국 스웨덴을 가다’ 특별인터뷰⑤ 교육·청소년 기관편

스웨덴에서 성평등 교육은 더 이상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교육 기관의 방향성은 성평등관을 바탕에 둔다. 왜 이것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투쟁해 온 결과라고 이곳의 교육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 과정을 통해 성평등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아직도 이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설혹 성별 불평등을 조장하는 일부 세력의 주장이 제기되더라도 이는 ‘일탈적 시각’으로 여겨지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정착할 때까지는 후퇴하지 않는 자세로 계속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스웨덴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활동 시간을 즐기고 있다. Ann-Sofi Rosenkvist(imagebank.sweden.se)

지난 달 27일 찾은 말뫼시 스타펠베드초등학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교문 밖에서 좀 기다려야 했다. 운동장에는 삼사오오 무리지어 뛰어노는 아이들이 가득했고, 중간 중간 형광색 조끼를 입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지켜봤다. 

 

쉬는 시간인가 보다 했는데 수업 종이 한참 울리지 않아 물어봤더니 ‘활동 시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웨덴 학교는 아이들이 충분한 레저 시간을 갖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활동 시간이 많다고 한다. 교육자들도 아이들의 놀이를 적극 장려하고, 마음껏 뛰놀며 신체활동을 하게 하되 안전을 위해 운동장에 함께 나와 철저히 감독한다.

 

이날 인터뷰는 이곳의 교사로 수년째 일하고 있는 페트라 롱후르스트 클랑씨, 에밀리에 크론베크씨와 진행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성평등 교육을 하는 교사나 대학교수 등에 대한 사상검증과 괴롭힘 등 백래시(반발 심리)가 심해지고 있는 만큼 이곳은 교육 현장이 어떤 경험을 해 왔는지 궁금했다.

 

말뫼시 스타펠베드초등학교 전경.

신체적 차이에 따라 남성은 여성보다 대체로 더 빨리 뛸 수 있고, 더 많은 무게를 들 수 있다. 이는 인권의 차별적 대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차이와 차별이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무게의 짐을 들고, 똑같은 기준의 체력시험을 통과해야 평등한 것”이란 주장을 하게 된다. 스웨덴의 성평등 교육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크론베크씨가 이에 대한 답변을 해줬다.

 

Q. 스웨덴 학교에서는 성평등 지식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일부 반감을 드러내는 학생은 없는지 궁금하다.

 

크론베크: 예를 들어 차이와 차별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일부 학생들이 이렇게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빨리 뛰는데 어떻게 똑같냐’고 묻는 것이다. 그건 신체적 차이일뿐 인권은 평등한 가치라고 말해준다. 가끔 가정에서 잘못 형성된 성 관념을 듣고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 땐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고쳐준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같은 문제도 성별이 아닌 개인적 취향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클랑: 스웨덴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영향을 줄뿐 아니라 아이가 부모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운 성평등 관점을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 교육이 가정 내 성평등관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는 성평등 교육을 더 어린 나이에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웨덴 말뫼시 스타펠베드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페트라 롱후르스트 클랑씨(오른쪽)와 에밀리에 크론베크씨가 8월 2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Q.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는 등 학교에서의 성평등 교육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클랑: 더 목소리를 높이고 계속 투쟁을 해야 한다. 페미니즘, 성평등 교육은 여성의 권리를 넘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임을 자꾸 이야기해야 한다. 지식적으로 더 많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 정치·역사·경제적으로 이러한 가치가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담론을 늘려가야 한다.

 

Q. 스웨덴도 아직 더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크론베크: 우리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완전히 성평등한 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계속 해야 한다. 예컨대 학교 성적은 여학생들이 더 높지만 성인이 된 이후 여성들의 월급 평균은 남성들과 여전히 차이가 크다. 교육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Q. 성별 불평등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런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클랑: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모든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다. 나이, 성별, 자산 규모 등에 관계 없이 누려야 할 인권은 같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는 지식과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 이런 기회를 늘려야 한다. 가치관 문제는 계속되는 수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교육하지 않고 절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뫼시의 한 공공유치원에 방문한 야샤 에릭손씨가 10개월 된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타벨베드초등학교 방문 전 이른 아침엔 부모와 어린 자녀가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공유치원(Familjens hus)에 들렀다. 공공유치원은 18개월이 안 된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누구나 비용 걱정 없이 자유롭게 머무르다 갈 수 있다.

 

인터뷰는 이곳의 보육교사인 시브, 말레나씨와 함께 했다. 이들은 이곳에 오는 아빠가 엄마보다 오히려 더 많다고 밝혔다. 유치원 창문에는 아빠 혼자 아기를 안고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Q. 이용자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오면 어떤 일을 하는지.

 

A. 하루에 30∼40팀이 방문한다. 보통 일정 중간에 시간이 애매할 때 30분이나 1시간씩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는 곳이다. 운영 시간은 주당 30∼40시간이다.

 

우리는 주변 소아과 등과도 연결되어 있고 다른 단체들과도 소통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다. 보육교사들은 양육자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주로 아이들의 상태, 변화 등에 대해 조언하고 소통한다.

 

Q. 아빠들은 어느 정도 방문하는지.

 

A. 아빠들이 더 많이 온다. 젖을 먹이는 기간만 지나면 확실히 아빠가 더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이제 육아를 하는 이가 엄마인지 아빠인지 나눠서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아빠가 온다’라고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데 있어 엄마냐 아빠냐보다는 그냥 ‘양육자’라고 똑같이 여기는 것이다.

 

이곳에서 하는 부모 클럽에도 아빠가 12명, 엄마는 4명이다. 육아휴직을 부모 양쪽이 모두 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방문하는 남성이 확 늘었다. 예전에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

 

Q. 공공유치원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는 것은 어떤가.

 

A. 최고의 직업이고 만족도는 최상이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환경을 구성하는 일에 참여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보람되다. 교사들 간의 파트너십도 매우 좋은 편이다.

 

말뫼 공공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시브씨가 스웨덴의 보육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달 26일 방문한 청소년·청년 단체 ‘헬라말뫼’(Helamalmö)는 2004년 설립된 스웨덴에서 가장 큰 사회·경제적 청년 커뮤니티 중 하나다. 사회 정의,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을 다양한 청년 활동을 통해 메시지화 하고 있다. 직원 수는 약 250명, 매년 20∼30개씩 열리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원은 연 4500명가량이며, 방문객은 연 25만명에 달한다.

 

2018년 헬라말뫼가 말뫼시 뉘달라 지역에 만든 ‘만남의 장소’(Meeting Place)는 이 단체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뉘달라 지역은 소위 사회·경제적 환경이 도심 다른 곳보다 취약한 곳으로, 여기에서 사회적 인프라를 보강한다는 취지로 공간을 열었다. 1000㎡ 넓이에 17개의 활동실로 구성된 이곳에선 지역주민들이 주최하는 다양한 사회 활동이 이루어진다.

 

뉘달라 지역에서의 이런 시도는 단 1년 만에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사회 안전지수가 약 8% 상승해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운 것이다. 헬라말뫼는 취약 지역에서 인프라를 개선하는 공간을 만드는 이같은 방식을 이 지역의 이름을 따 ‘뉘달라 모델’로 명명해 발전시켰다.

 

다음은 니콜라 루나바스 헬라말뫼 대표와의 일문일답.

 

사회·경제적 청년단체 헬라말뫼 활동가들과 니콜라스 루나바 대표(오른쪽).

Q. 헬라말뫼는 어떤 단체인가.

 

A. 사회 지속성과 평등에 대해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주 목적이다. 이 인터뷰 이후 다른 방송매체와 또 만난다. 이렇게 발언권을 얻을 기회를 열심히 쟁취하고자 한다. 소외 계층, 청소년,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도 늘 고민한다. 도서관을 마련해 준다든지 스포츠 활동을 계획한다든지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만든다든지 하는 식이다. 

 

Q. 스웨덴처럼 높은 성평등 인식과 문화를 가지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A. 교육이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 교육받는 시점이 어릴수록 더 좋다. 물론 성인이 돼서도 계속해서 관련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는 힘들다는 뜻인가.

 

A. 물론이다. 교육은 기본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 이후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장 과정에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반항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싸웠기 때문에 평등이 얻어진 것이다. 단지 교육만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헬라말뫼가 하는 일도 그런 것이다.

 

Q. 스웨덴도 인권 평등 문제를 싸워서 얻어야 할 만큼 힘들었던 건가.

 

A. 스웨덴에서도 그렇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하는 목소리가 있다. 보수적인 이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한다. 인권을 평등하게 하자는 것에 대해 이런 반발 목소리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단체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Q. 성평등 관점에서는 이곳에서 어떤 교육이나 활동을 하는지. 

 

A. 내 생각엔 아직 이곳도 완전히 성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를 비롯해 말뫼에서만 봐도 성평등을 위한 기관들이 여럿 존재하는 이유다. 그리고 헬라말뫼와 다른 한 두 그룹을 제외하면 대부분 청소년 단체들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더 많다. 남자들이 여전히 더 많이 외부 활동을 하고, 남자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도 더 많고, 그들의 의견이 들릴 확률이 더 높다. 

 

교육하는 리더 입장에서 보면 나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각 뭘 원하는지 듣고 공평하게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자들도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질문을 더 많이 한다.

 

직원을 뽑을 때도 성평등 가치관을 내재한 사람들과 일하려고 한다. 이 부분이 부족할 때는 더 교육을 하려고 하고. 지금 보이는 이런 인테리어를 할 때도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 편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고려한다.

 

Q. 최근 했던 활동은 무엇이 있나. 

 

A. 다음 주 새롭게 공간 하나를 오픈한다. 그 전에 계획 중인 활동 하나는 ‘파워 말뫼’(Power Malmo)라는 것이 있다.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여성 아티스트를 초대했다. 여학생들과 성수자를 위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Q.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정서가 최근 생기고 있는데, 성평등 사회를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A. 외부에서의 압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경우 평등을 지향하는 독립적인 외부 조직의 압력이 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기관이 많이 있을수록 좋다. 우리는 이곳 지역 주민 전체를 위해 도서관을 짓겠다고 조직을 꾸렸고, 여기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 등을 시에 요구해서 일을 진행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런 외부 압력과 요구가 훨씬 더 많아야 변화가 빨라질 수 있다.

 

시민들이 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조직을 만들든 어떤 식으로든 강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냥 기다려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교육만으로도 안된다. 적극적으로 싸우겠다는 의지도 더해져야 한다.


말뫼=글·사진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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