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새벽 법사위서 단독 처리
당일 본회의 상정 시도했지만
朴 국회의장 연기 결정에 순연
野 시간 벌었지만 뾰족수 없어
與野, 30일 본회의 개최 합의
RSF “저널리즘 위협 가할 것”
허위보도·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등
與 의원끼리 해석 둘러싸고 이견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 조문서
‘명백한’ 삭제… 되레 추정범위 넓혀
각계 “독소조항만 강화… 언자완박”
송영길, RSF 비판에 “뭣도 모르고…”
기자協 “국제언론 단체 무시 사과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권과 시민단체, 국제사회 반발에 귀를 닫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언론의 자유를 파괴하는 종착지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민주당은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이어 25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언론중재법)을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은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초 민주당은 이날 국회 마지막 문턱인 본회의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었지만, 본회의가 여야 합의로 오는 30일로 연기되면서 171석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도 순연됐다.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제1야당 국민의힘은 절대적 의석수 열세 탓에 민주당을 막을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날 오전 4시쯤 야당 의원들이 부재한 가운데 여당 단독 표결로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전날 오후 3시20분부터 시작된 전체회의는 여야 충돌로 자정까지 이어졌고, 법사위원장 직무대리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날짜가 지난 데 따른 차수 변경을 선언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에 반발해 이날 오전 1시쯤 집단 퇴장했다. 야당이 떠난 뒤에도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언론계 우려에 공감하는 온건파와 더욱 강한 규제를 주장하는 강경파로 나뉘어 두 시간 넘게 갑론을박을 벌였고, 회의는 강경파의 일부 주장이 관철된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오전 4시 막을 내렸다.
개정안이 당초 민주당 계획보다 하루 늦게 통과되면서 민주당의 ‘25일 본회의 처리’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국민의힘이 위원회 심사를 마친 뒤 1일이 지나지 않으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고 규정한 국회법 93조2를 근거로 본회의 연기를 주장했고, 박병석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하면서다.
시간을 번 국민의힘은 동원 가능한 모든 투쟁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법의 테두리 내에선 민주당을 저지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도 검토하고 있지만, 범여권이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권인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응해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 소집 계획을 밝혔다. 정치권 안팎의 ‘여당 입법 독주’ 비판을 희석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RSF)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저널리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며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개정안을 부결시켜줄 것을 촉구(call on)했다. RSF는 24일(현지시간) 낸 성명에서 개정안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피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 조항에 대해 “위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입증 책임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한국의 7개 언론단체가 개정안의 ‘허위’와 ‘조작’ 보도의 정의가 모호하다고 비판한 점도 언급했다. RSF의 세드릭 알비아니 동아시아 지국장은 “개정안은 언론에 대한 자의적 개입과 언론을 압박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을 열게 될 것”이라며 개정안 부결을 요구했다. 국제사무직노조(UNI)도 이날 “개정안은 한국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충분히 논의했다더니… 즉석에서 법안 뜯어고친 巨與
더불어민주당은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비판에도 불구,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민주당은 그간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작 법사위 단계에서는 소속 의원 간 입장차를 드러내며 마라톤 회의를 이어간 끝에 법안을 ‘즉석 수정’한 뒤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반대를 감안해 고위공직자와 재벌 등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자에서 배제하는 수정안을 냈다. 민주당은 이를 명분 삼아 ‘협치’하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하며 법안 처리를 압박했다. 또 ‘충분한 논의’를 했다며 시간 끌기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정작 법사위 단계에 이르자 여당 의원 간 해당 법을 둘러싼 이견이 표출됐다. 이들은 △허위 조작보도의 기준 △언론사의 고의성, 중과실 추정 방법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그렇지 않은 손해의 개념 정리 등 다양한 사안을 놓고 엇갈린 주장을 내놨다. 법안 핵심내용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법관 출신 최기상 의원은 고의·중과실 추정의 판단기준 중 하나인 ‘회복이 어려운 손해’와 관련해 “어떤 경우는 회복이 가능한데, 어떤 경우는 어렵다는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즉답하기 어렵다. 피해가 너무 큰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뭉뚱그렸다. 검사 출신 송기헌 의원은 “결과가 중하다고 해서 중과실을 추정하는 사례는 법적으로 없다”고 거들기도 했다. 언론중재법 처리를 위해 임시로 문체위에서 법사위로 사보임을 해온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문체위에서 수개월간 논의하고 심혈을 기울였는데 더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즉석에서 각종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날 수정된 의결안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단기준인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조문에서 ‘명백한’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또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가 “보복적·반복적으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로 수정됐다. 법원이 허위·조작보도의 고의성 및 중과실을 추정할 여지를 넓힘으로써 언론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부과를 보다 용이하게 법을 뜯어고친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더군다나 △동일한 시간·분량·크기의 정정보도 △인터넷 기사 열람차단 청구 등 기존 독소조항은 그대로 유지돼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이날 회의는 전날 오후 3시20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군사법원법과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에 대한 현안 질의가 이어지면서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갔다. 오후 11시40분쯤 민주당 소속 박주민 법사위원장 직무대리가 “더 논의해도 시간이 부족해서 차수 변경을 위해 산회를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민주당은 야당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이날 0시39분 차수 변경을 통한 법사위 2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민주당은 야당 불참 속에서 탄소중립법과 사립학교법 등 쟁점법안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회의는 오전 3시53분 언론중재법 통과 직후 산회했다.
한편 평소 거친 언사로 논란을 빚었던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언론중재법 관련 국경없는기자회(RSF)의 비판에 대해 “그건 뭣도 모르니까 (그런 것)”이라고 말해 또다시 설화에 휩싸였다. 논란이 커지자 송 대표 측은 “‘뭣도 모르니까’가 아니라 ‘뭐, 또 모르니까’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성명을 내고 “권위 있는 국제 언론단체를 무시한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이 지켜온 가치 훼손”… 與 내부서도 쓴소리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움직임에 대해 검사·변호사 등 당내 율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현재 법 조항으로서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당내에서 처음 공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조 의원은 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조항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주체에 전직 고위공직자, 친인척 및 측근 등이 포함되어 있어 감시기능 약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조항은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법 조항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우리가 민주당으로서 지켜왔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라면서 “4·7재보선에서 질타를 받았던 오만과 독선의 프레임이 부활되는 것이다. 옳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이롭지도 않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활동했던 초선 오기형 의원도 이날 SNS에 글을 올려 법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오 의원도 징벌배상제와 고의 및 중과실 추정조항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이용우 의원도 SNS에 올린 글에서 “많은 사람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숙의와 설득 과정이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야권 “영구집권 흉계… 결사항전”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여당이 8월 임시국회 내 강행처리를 고수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전체주의 입법’으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에 나섰다.
국민의힘 강민국 원내대변인은 25일 논평에서 “절차와 내용 모두 반민주주의의 극치인 이번 언론중재법 통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헌법소원 등 모든 방안을 동원해 최전선에서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언론단체가 국회 앞에서 주관한 ‘범국민 필리버스터’ 현장을 찾아 “언론재갈법에는 자신들이 영구집권할 수 있다는 흉계가 숨어 있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김 원내대표는 “현 정권은 언론을 협박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도만 하게 하려는 언론말살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못된 정권을 향해 국민 여러분들이 심판의 화살을 쏴 달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필리버스터는 야당이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의 최후의 수단”이라며 “당연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도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방침에 반발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언론재갈법은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정부 여당은) 입으로는 민주화를 외치며 머리로는 독재를 꿈꾸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와 최연숙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항의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국민의당 안혜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집권 여당은 영구한 독재를 이루기 위한 파렴치한 국민 기망행위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고 규탄했다.
정의당 대선주자 이정미 전 대표는 민주당 송영길 대표를 향해 “평생 여당 할 것 같으냐”며 “정권이 교체되면 이 법이 언론탄압의 도구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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