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흑백 TV 기술 도입해 공장 설립
LCD 등 개발 디스플레이 강자 군림
1994년 사업 조정… 배터리로 전환
1998년 당시 최고 용량 배터리 개발
시장 점유율 94% 日업체 단기간 추월
BMW와 손잡으며 전기차 시장 진출
2009년 ESS TF 가동하며 미래 준비
美 시장 진출 계기 세계 1위로 우뚝 서
“혁신 멈춘 적 없어… 또다른 출발 준비”

1970년대 흑백 브라운관 TV를 만들던 삼성SDI는 현재 세계 주요 배터리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당시 진공관을 만들며 수율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이 기업은 이후 거듭되는 기술 발전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21세기의 원유로 불리는 배터리를 개발하게 됐다. 다음달 1일(제일모직 합병일)로 창립 51주년을 맞는 삼성SDI의 도전과 변천사를 살펴본다.
◆디스플레이에서 배터리로 진화
1970년 1월20일, 삼성SDI의 전신인 삼성-NEC(일본전기)주식회사는 일본의 기술을 도입해 흑백 TV를 만드는 공장을 설립했다. 이는 이후 세계 디스플레이 최강국이 된 한국의 기반이 됐다. 개발 초기에는 수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든 공정에 표준을 정하고 불량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임직원들이 불철주야 매달린 끝에 이를 해결했다. 이후 기술 개발을 거듭하며 브라운관에서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 표시장치(PDP),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며 디스플레이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명예회장은 1997년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의 ‘자동차는 전자제품’편에서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가격 중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기술, 반도체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기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현재를 정확히 내다본 것이다.

1994년 삼성그룹의 계열사 간 사업을 조정할 당시 삼성SDI의 모니터 사업은 삼성전자로 이관하고, 대신 삼성전자에서 연구하던 배터리 사업은 삼성SDI로 가져왔다. 이것이 지금의 배터리 기업을 만드는 시발점이 됐다.

◆94% 점유율의 일본 기업 단기간에 추월
삼성SDI는 초기 니켈수소 배터리를 연구했으나 이후 성능이 뛰어난 리튬이온 배터리에 주목했다. 삼성SDI는 사업 초기, 핵심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개발을 이어가면서 1998년 당시 최고 용량인 1650㎃h 원형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 1800㎃h 배터리까지 개발하며 당시 후발주자에서 경쟁사들을 놀라게 하며 배터리 업계에서 점차 이름을 알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94%는 일본 업체가 점유하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 등 일본 외 기업들은 2000년 5% 안팎의 점유율에서 이듬해 14%, 2002년 24%까지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삼성SDI는 2001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인 2.8㎜ ‘각형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최고 용량인 2200㎃h 원형 배터리를 양산했다. 높은 에너지 밀도의 폴리머 배터리 개발에도 성공하며 ‘디스플레이 회사’라는 인식을 점차 ‘배터리 회사’로 바꿔 나갔다.
◆프리미엄 자동차와 손잡으며 시장 진출
삼성SDI는 2005년 소형 배터리 사업에서 흑자를 달성하며 사업 초기부터 구상하였던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앞서 이 명예회장은 “정보기술 기기는 물론 자동차에 있어서도 배터리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시기가 머지않아 온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SDI는 BMW와 손을 잡으며 전기차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2008년 BMW는 순수 전기자동차 전용 모델을 개발·출시하는 프로젝트인 ‘메가시티비히클’을 추진하고 있었고, 삼성SDI(당시 SB리모티브)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배터리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고, BMW에서도 개발 엔지니어들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이 수시로 삼성SDI를 방문하며 제품을 검증했다.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배터리의 안전성이었다. 자동차 산업은 전자제품과 달리 한번 사고가 나면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검증된 안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삼성SDI는 BMW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돼 업계를 놀라게 했다.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지 1년도 안 된 삼성SDI가 프리미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자동차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BMW는 최초로 선보인 전기차 모델 i시리즈의 시작을 삼성SDI와 함께했고 이후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의 주도권을 거머쥐게 됐다. 2019년 11월 삼성SDI는 BMW에 2021년부터 10년간 약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하며 기존의 파트너십 관계를 강화했다.
◆중국, 유럽 이어지는 배터리 생산라인 구축
이 밖에도 삼성SDI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바라보고 시안에 삼성환신 동력전지유한공사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15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했다. 또 이듬해 헝가리에 배터리 공장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또 배터리팩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임러·포르쉐 등에 배터리팩을 공급한 경험이 있는 오스트리아 ‘마그나 슈타이어 배터리 시스템즈’를 인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상용 전기차 시장으로도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19년 볼보그룹과 차세대 e-모빌리티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전기 트럭용 배터리팩을 공동 개발해 배터리 셀과 모듈은 삼성SDI가 맡고, 볼보는 이를 활용해 현지 공장에서 팩을 조립하기로 했다. 또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인 미국 델파이와 하이브리드 트럭·버스용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고, 2016년 만-스카니아에 상용차 배터리를 공급하기도 했다.

◆세계 1위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업
삼성SDI는 2009년 10월 기흥사업장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생산된 전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이 기술은 신재생 에너지가 강화되는 요즘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ESS시장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원자력발전소의 전력 공백을 화력발전소가 메우면서 전력 단가가 높아졌다. 이때 일본의 전력시장이 요동쳤다. 그러자 일반 가정에도 자급형 전원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ESS시장이 부각됐다. 이에 삼성SDI는 가정용 ESS의 일본 진출을 타진해 2011년 현지 니치콘과 손을 잡으며 시장에 데뷔했다.

미국 시장도 위기에서 기회가 왔다.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리소캐년 가스저장소의 가스누출 사고로 발전소 가동이 불가능해지자 이듬해 캘리포니아 공공발전위원회는 6개월 만에 400㎿h 규모의 ESS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미국 연간 ESS 시장과 맞먹는 규모였다. 삼성SDI는 이 사업에서 240㎿h급 배터리를 공급하며 ESS 시장을 석권했다. 덕분에 2019년 기준 시장 점유율 35%로 세계 1위의 ESS용 배터리 업체로 우뚝섰다.
삼성SDI 관계자는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51년 역사 동안 변화와 혁신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며 “초격차 기술 확보와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은 100년 기업을 향한 대여정에 원동력이 될 것이다. 회사는 도전과 극복의 새 역사를 써내려갈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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