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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것 없는 정부, 지쳐가는 할머니들… 말뿐인 ‘편안한 노후’ [여전히 힘든 위안부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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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30 14:00:00 수정 : 2021-05-30 08: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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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생활실태·제 역할 못하는 정부

“할머니, 갖다 버린다” “혼나봐야” 폭언
분리 않고 가해자·피해자 한 공간에

생활지원금만 입금… 달라진 것 없어
전세임대 살며 4년마다 이주 불편도

24시간 간병인 필요한데 지원 부족
정신과 의사·전문가 동행 관찰 필요

(하) 이용수 할머니 인터뷰

日 만행 알리기 위해 ICJ 제소해야
일본이 확실한, 진실된 사죄 한다면
죄는 밉지만 사람은 용서해줄 수도

문 대통령 임기 전에 역사 해결 믿어
한·일 학생에 올바른 역사 교육 필요
피해자 명예회복 국제연대 나설 것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보호자들이 지난해 체감한 정부 지원 만족도가 201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 사태 이후 정부가 직접 위안부 할머니 지원을 챙기겠다고 나섰지만 만족도는 되레 하락한 것이다. 일본의 사죄 및 배상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답보 상태인 가운데 할머니들의 ‘건강하고 편안한 노후’를 약속했던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세계일보가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을 통해 여성가족부로부터 입수한 ‘202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실태 및 정책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설문에 응답한 할머니(6명) 및 보호자(14명)의 정부 지원 만족도는 3.6점으로 집계됐다. 개별조사에서 할머니의 경우 3.8점으로 전년 대비 0.2점 소폭 하락한 반면 보호자는 2019년 4.6점에서 지난해 3.4점으로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전체 만족도는 2015년(3.5점)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았고, 보호자 만족도는 할머니와 보호자를 분리 조사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최저치다.

이 조사는 여가부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에 위탁해 수행한 것으로, 할머니 16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난 2월 정복수 할머니, 지난 2일 윤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이날 현재 생존 할머니는 14명이다.

조사를 수행한 연구소 측은 “보호자의 만족도가 감소한 이유는 2020년 5월부터 지속적으로 보도된 위안부 피해 관련 시민단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인한 실망감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할머니와 보호자들은 단순히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 아니라 간병비와 건강치료비 등 현실적인 걱정이 많았다. 지난해 10월 기준 간병비를 받고 있는 11명(할머니 1명, 보호자 10명 응답) 중 9명이 간병비 부족을 호소했다. 할머니들에게 매달 지원되는 생활안정지원금도 할머니 6명 중 4명(매우 부족 1명, 조금 부족 3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보호자는 15명 중 6명이 ‘부족’ 또는 ‘매우 부족’하다고 답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등이 지난해 9월 재판에 넘겨진 이후 정부는 피해 할머니 지원의 패러다임을 바꿔 각 할머니별로 맞춤형 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세계일보 확인 결과, 나눔의집에서는 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간병인이 할머니와 즉시 분리되지 않고 4개월간 함께 거주했다. 또 전세 임대주택에 거주해 4년마다 이주를 걱정해야 하는 할머니와, 보호자가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김미애 의원은 “정의연 사태 1년이 지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보여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현 지원제도를 재점검하고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대 간병인’과 수개월 동거 방치… 편안한 노후는 말뿐

 

“수요집회에서 받는 성금은 할머니들한테 쓰이지 않고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5월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정의기억연대의 불투명한 후원금 사용과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정면 비판한 폭로였다. 이후 윤 의원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정부는 민간단체를 배제하고 할머니들에게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금전적 지원만 예년 수준으로 늘었을 뿐 할머니들의 지원 만족도는 오히려 5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2021년 5월24일 현재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14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할머니 폭로 1년을 맞아 할머니들의 생활실태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9월25일 브리핑을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료·주거·일상생활 지원 수요를 파악해 각종 맞춤형 지원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민간단체를 통해 이뤄진 건강치료비 지원 등 사업을 정부가 직접 책임지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을 계기로 잇달아 제기된 정의기억연대, 나눔의집 등 민간단체와 관련된 각종 의혹과 그에 따른 국민 여론을 수렴해 피해자의 상황에 맞춰 지원 체계를 정비하기로 했다.

지난 2020년 5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하지만 세계일보가 확인한 결과 할머니와 보호자들은 정부 지원이 개선된 점을 체감하지 못했다. 나눔의집에서는 학대가 발생했다는 민관합동조사단 발표(지난해 8월) 이후에도 문제의 간병인이 수개월 간 할머니와 생활했고, 할머니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원도 없었다. 또 거동이 불편한 한 할머니는 매입임대가 아니라 전세임대 주택으로 지원을 받아 4년 마다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울러 매년 실시되는 정부 만족도 조사 때마다 간병비, 건강치료비에 대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가 다르게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가 악화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부 지원이 그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

 

◆“학대 간병인과 할머니, 4개월 동안 같이 지낼 동안 정부 무관심”

 

26일 세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나눔의집 후원금 문제 등이 불거진 후 경기도를 중심으로 꾸려진 민관합동조사단 조사에서 한 간병인이 할머니를 상대로 학대를 자행한 정황이 지난해 8월 드러났다. 이 간병인은 “할머니, 갖다 버린다” “혼나봐야 한다” 등의 정서적 학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피해 할머니와 간병인에 대한 분리 조치는 없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조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적극적인 행정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3개월 뒤인 그 해 11월 경기동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해당 간병인의 학대가 인정된다고 정부에 알렸지만 이번에도 즉각적인 간병인 퇴거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간병인 교체에 시일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 해 12월 간병비까지 해당 간병인에게 지급됐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흉상. 서상배 선임기자

여가부 관계자는 “학대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아서 시일이 지연된 부분이 있다”면서 “학대 판정이 이뤄진 이후에는 경기도에 공문을 보냈지만 교체하는 데 시일이 걸린다고 해서 12월까지 간병비가 지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가부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서 11월에 최종 학대판정이 났다고 하더라도, 한 달 동안 학대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두고 간병비까지 지급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인가”라면서 “그게 정말 할머니를 보호하겠다는 정부가 할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3월 광주시는 이 간병인에 대해 수사를 의뢰해 현재 광주경찰서가 수사 중에 있다.

 

또,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야 할 할머니가 학대당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여가부는 지난해 11월 위탁기관을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대상으로 생활실태 조사를 진행하면서 코로나19를 이유로 정작 학대피해 조사는 하지 않았다.

 

아울러 정부가 맞춤형 지원하겠다고 지난해 9월 약속한 뒤에도 지원 형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생활안정지원금 등 돈만 할머니 계좌에 입금할 뿐 각 할머니 지원에 있어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특정 물품이 부족하다는 등의 할머니들의 연락이 있을 때 지원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눔의집에 거주하지 않는 할머니들에 대한 정부 지원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할머니는 주기적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전세임대주택을 지원받은 탓에 거동이 불편한데도 이사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매입임대주택은 줄 수 없고, 전세임대주택만 줄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할머니 가족이 4년 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점에 대해 애로사항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겠다고 밝히며 거의 유일하게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는 활동비 등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간병비, 건강치료비 부족 호소하는 보호자들”

 

위안부피해자법 제10조에 따라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할머니들의 ‘생활실태 및 정책만족도 조사’에서는 간병비와 건강치료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10월 조사 당시 할머니와 보호자 전체 20명이 간병비를 수령하고 있었는데, 이 중 16명(80%)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간병비 부족을 호소하는 이유로 할머니와 보호자들은 ‘하루 24시간 간병인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 3명(18.8%), ‘정부의 간병비 지원 기간보다 더 오래 간병인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과 ‘간병인이 정부 지원액보다 많은 간병비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각각 1명이었고 나머지 11명(68.8%)은 세 가지 이유에 모두 해당한다고 답했다. 이런 추세는 2019년에도 이어져 간병비 수령 할머니 및 보호자 전체 13명 중 9명(69%)이 간병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정의연 사태가 발생한 후 이뤄진 지난해 11월 조사에서도 설문에 응한 할머니(1명)와 보호자(10명) 11명 중 9명(매우 부족 5명, 조금 부족 4명)이 간병비 부족을 호소했다. ‘하루 24시간 간병인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88.9%로 가장 많았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간병비가 부족하다고 답한 비율은 평균 76.6%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6년 조사 당시 간병비 불만족 비율 39.2%의 두 배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2018년부터 3년 간 간병비는 소폭 증가에 그쳤다. 여가부에 따르면 할머니에게 주어지는 간병비는 2018년 연간 1인당 최대 1800만원이 지원됐고, 이는 2019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후 지난해에는 10월까지 간병비가 월 기준 1만9000원이 올라 지급됐다. 할머니들의 건강이 악화하며 간병비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간병비는 그에 맞춰 상승하지 못했던 셈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간병비를 적게 지급한다는 지적이 있어 지난해 10월 지침을 개정, 하루에 간병비로 10만원가량 쓸 수 있도록 했다”면서 “예전에는 보수적으로 간병비를 지급했다면 이제는 공격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건강치료비 지원과 관련한 할머니와 보호자들의 정부 지원 만족도도 높지 않았다. 지난 2018년 건강치료비는 연 936만원이 지급됐는데 당시 만족도는 할머니의 경우 3.7점, 보호자는 4.0점이었다. 이후 2019년 할머니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3.8점, 4.1점으로 소폭 올랐지만 지난해에는 3.0점, 3.4점으로 조사돼 큰 폭으로 하락했다. 불만의 이유로는 ‘건강치료비 액수가 적어서’와 ‘건강치료를 받기 위해 외출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라는 답이 많았다. 조사를 진행한 한 관계자는 “건강치료비 명목으로 한약 등에 대해서는 지원이 어려워서 할머니들이 불만을 가지고 계셨다”면서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건강치료비로 지원이 가능한 항목들이 연령에 맞게 다시 재점검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할머니들이 가장 원하는 정부 지원 서비스는 ‘건강 치료지원’(중복 응답)이 50%로 가장 많았다. 보호자 역시 ‘간병서비스’ 개선을 원한다는 응답(33.3%)이 높았다.

 

할머니를 돕고 있는 한 관계자는 “노인보호 관련 전문성이 없는 정부 관계자가 와서 ‘할머니 괜찮으세요’ 이렇게 물을 게 아니라 정신과 의사나 노인보호 전문가가 와서 할머니의 실제 거주 및 영양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는 방식으로 정부 조사가 달려져야 한다”면서 “선물 들고 와서 ‘만족하냐’ 이렇게 물어보는 현행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하상윤 기자

◆현재 생존자는 14명… 평균 연령 만 92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 조사 당시 생존자는 16명이었지만 지난 2월과 이달 초 2명이 별세해 생존자는 14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2027년이면 생존자가 5명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할머니 절반 이상이 치매 진단을 받은 데다 스스로 평가한 건강상태에 대해 ‘나쁘다’고 답한 비율이 75%에 달했다.

 

26일 여성가족부가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기준 할머니 14명의 평균 연령은 만 92.2세다. 85∼89세는 3명, 90∼95세는 9명, 96세 이상은 2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실시한 건강생활 실태조사에서 “2020년까지 10년간 2012년 등 5년을 제외하면 매년 20% 이상의 사망률을 보였고, 최근 3년간 평균 생존자 감소율은 20.7%였다”면서 “20% 감소율만으로 추정해도 2027년이면 생존자가 5명 이하로 예측되는데, 현재 대부분 피해자의 연령이 이미 90대임을 감안하면 그마저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11월(16명) 기준 할머니들의 절반 이상은 치매를 앓고 있었고, 고혈압·고지혈증·골다공증 등 각종 노인성 질환도 겪고 있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16명 중 9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는데, 이 중 6명이 고도치매였다. 치매 진행 속도도 빨랐다. 첫 진단 때 5명이 경증, 2명이 중등도, 1명이 고도치매였지만 2020년 조사에서 경증은 2명, 중등도 치매는 1명으로 줄어든 반면 고도치매는 6명으로 늘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추모비와 각종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응답한 할머니는 4명뿐이었다. 그 외 ‘약간 지장이 있다’는 할머니가 6명, ‘매우 지장이 있다’가 4명,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가 2명이었다.

 

이와 함께 할머니 중 6명이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갖고 있었고, 골다공증이 5명, 그 외 당뇨(4명), 협심증(3명)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이 외에도 할머니들은 뇌경색, 폐마비, 역류성식도염, 관절염 등 다양한 질환을 겪고 있다. 정부는 “2011년 이후 할머니들의 일상생활 수행능력의 꾸준한 감소세가 관찰돼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정부 조사 이후 세계일보가 확인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2017년만 해도 독일 베를린까지 가서 난민 여성을 위한 시민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할 정도로 활발한 인권운동을 펼쳤던 길원옥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 길 할머니 가족은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 간다거나 하는 것도 못하고 누워만 계신다”며 “가족 정도만 알아보는 수준이고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한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힘든 가운데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다른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해져 요양보호사가 자주 바뀌기도 했다. 나눔의집 관계자도 “잘 걷던 할머니가 잘 걷지 못하고, 잘 드시던 할머니가 거의 드시지 못하고 잠만 주무신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옥선 할머니

◆“위안부 판결, 정부서 설명 한번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부로부터 최근 잇달아 선고된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 결과와 그에 따른 정부 입장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2015년 이뤄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던 문재인정부가 정작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자’와의 소통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7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나눔의집 할머니들은 지난 1월 할머니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배 소송 판결, 4월 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제기한 손배 소송 선고 이후 정부로부터 판결의 의미나 정부 입장 및 향후 계획 등과 관련해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국내 법원의 선고가 1월에는 원고 승소, 4월은 원고 패소로 갈렸기에 할머니들은 그 배경과 정부의 입장을 궁금해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재판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와서 설명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대신 직원들이 알려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옥선(93·사진) 할머니는 지난 2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할머니한테 일본과 협상 진행상황을 알려주나’라는 질문에 “절대 없다. (정부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알려주지 않아”라면서 “내가 생각할 때는 (정부가)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아”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판결은 당사자 간의 문제이고 그걸 저희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설명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대신 비정기적으로 연락이 닿는 할머니들로부터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듣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원고 승소 판결 후 기자회견에서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재판 결과가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뉘앙스를 풍겨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본 상대 손배 소송이 단순히 당사자 간 문제에 그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판결 의미와 정부 입장을 할머니들에게 설명하지 않는 건 배려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정권 초기에는 2015년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는데, 최근 몇 달 사이 갑자기 더 이상 문제제기를 안 하겠다는 기조로 바뀌니까 피해자들이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위안부 문제 꼭 해결됐으면… 문 대통령에 편지 보내”

 

“코로나19 때문에 들어앉아서 혼자 이 궁리를 하면서 내가 죽을라고도 생각했어요. 내가 왜 이래야 되노. 나 혼자, 내가 한다고 (문제 해결이) 되지도 않고 갈 건데. 그러나 내가 먼저 간 할머니들한테 할 말이 있어야 될 건데, (할머니들이) ‘너 여태까지 있다가 오면서 너 왜 해결도 못 하고 왔냐’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93) 할머니가 지난 24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은 대부분 치매이거나 말을 제대로 못 한다. 내가 살아 있을 때 꼭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신성철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14명 중 1명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93) 할머니는 지난 24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빨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지만, 세월이 날 기다려주겠나. 요즘 좀 외롭다”며 이렇게 말했다.

 

1992년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이 할머니는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규명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일본을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CJ는 국가 간 분쟁을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유엔의 사법기관으로, 한·일 양국이 합의해야 재판이 열린다.

 

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무법천지일 때 일본이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고, 죽이고 했는데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죄가 없다고 하는 걸 그냥 볼 수가 없었다”면서 “(일본의 만행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ICJ까지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너희(일본)가 잘했는지 우리가 잘못했는지, 우리가 잘했는지 너희가 잘못했는지를 ICJ에 가서 밝히자는 것”이라면서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 또 자라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역사는 알려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확실한, 진실된 사죄를 한다면, 죄는 밉지만 사람은 용서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는 완전한 해결을 지어 일본과 원수지지 않고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내면서 이 역사를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쓴 손편지도 보냈다. 이 할머니는 “(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이 역사 문제만은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걸 실천하는 것이 문 대통령인 만큼, 이 역사도 먼저라고 생각하고 해결해주리라 믿는다”고 촉구했다. 이어 “문 대통령도 피해자 나라의 대통령인 만큼,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면서 “하늘나라 할머니들한테 가서 ‘문 대통령이 이리 해결하셨습니다’ 할 수 있도록 꼭 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5월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전 정의연 이사장) 등을 향해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했던 것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 그리고 올바른 ‘위안부 운동’을 위한 마음에서였다. 이 할머니는 “모금을 하는데, 도대체 모금을 해서 뭘 하는지 (몰랐다)”면서 “데모(수요시위)를 하면 초등학교 학생들이 오는데, 학생들이 돼지(저금통) 털어서 가져온 걸 받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요시위 등을) 그치는 게 아니고, 데모를 하더라도 고생시켜가면서, 없는 사람과 아이들 용돈까지 털어가면서 하는 것은 안 해도 되지 않는가”라며 앞으로의 위안부 운동은 한·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에 초점을 두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교육관을 마련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교육하고,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점차 올바른 역사를 알려 나가는 방식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정의연과 관련해서는 “어쨌든 간에 (1년간) 많이 변했다”면서 “상대가 거기(정의연)니까 ‘그 사람들 만나지 마라’가 아니다. 의논도 해가면서 해야지, 그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럴 게 아니고 만나서 좋은 얘기도 해주고 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 의원에 대해선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다”면서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5월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할머니는 국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서 나아가 다른 국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표했다. 이 할머니는 “저희들뿐만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피해자들 명예회복도 해주고 싶다”면서 “그래서 끝까지, ICJ까지 (위안부 문제를) 끌고 가려 하는데 여러분도 협조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못할 경우, 후세대에 ‘문제 해결’이란 과제를 남기게 될 것에 대한 걱정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다 죽기만 바란다”면서 “역사의 산증인이 있어도 (일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분한테 또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든지 여러분한테 (이 문제가) 돌아가지 않기 위해 결사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확실히 밝혀서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제일 바라는 점이 뭐냐면, 위안부 문제 해결 싹 해갖고 여러분한테 제가 떳떳하게 해결했다고 나설 수 있는 그 날이 제일 소원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마음 놓고 살지.”

 

이 할머니의 말끝에는 비극적 역사가 할퀴고 간 흔적만큼 가늠할 수 없이 깊은 간절함이 맺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93) 할머니가 지난 24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은 대부분 치매이거나 말을 제대로 못 한다. 내가 살아 있을 때 꼭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신성철 기자

◆“일본 사죄만 받으면 여한이 없을텐데…”

 

‘체념하고 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사죄는 꼭 받고 싶다.’

 

세계일보 취재와 정부 조사를 통해 확인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심경은 이렇게 요약된다. 나날이 몸이 쇠약해지고 기억이 흐려지는 상황에서 할머니들은 본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일본이 사죄를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자포자기 심정에도 할머니들은 마지막까지 일본으로부터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아픈 역사를 미래 세대에 알리고 싶어 했다.

 

27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방안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이뤄진 정부의 심층조사에서 한 할머니는 “일본은 더 이상 사과 등을 안 할 거라서 이제 더 이상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른 할머니도 “더 바라는 것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할머니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심층조사를 진행한 관계자는 “(일본의 직접 사죄 표명에 대해) 할머니들이 일단은 포기를 하신 것”이라면서 “이 정도 수준에서 ‘됐다’가 아니고,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고 싶은데 사죄를 할 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할머니의 경우, “일본은 할 만큼 했고, 화해·치유재단의 남은 돈을 피해자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면 된다”고 말했다. 할머니를 조사한 관계자는 “‘할 만큼 했다’라는 건 ‘일본이 더 하겠느냐. 내가 내일모레 죽을 텐데’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고, 이 할머니도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면서 “돈과 관련해서는 딴 데 쓰지 말고 할머니들한테 사용해 달란 의미였다”고 부연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 박근혜정부 당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을 집행할 목적으로 세워진 재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외교부 조사를 거쳐 2019년 1월 재단 설립이 취소됐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 정부 심층조사에서 제외된 할머니들도 일본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옥선(93) 할머니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일본이 우리를 끌고 가서 잘못 만들었는데 지금 와서 자기네들 그런 일 없다고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돈 문제가 아니라 솔직하게 (일본이) 자기네들 한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대로 말하라는 거”라고 말했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일본이 어제 미안해하고 오늘은 그런 적 없다는 식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게 할머니들의 입장”이라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미래세대에게 알리라는 게 할머니들의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이희경·나진희·이강진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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