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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신화’ 그림자… “돈 날렸다” 투자 실패 비관해 목숨 끊는 청춘들

입력 : 2021-04-29 23:00:00 수정 : 2021-04-29 18: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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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극단적 선택 사건 잇달아
정부 등이 나서 ‘보호 장치’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전문가 “‘코인이 도박이니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궁지에 모는 것”
“청년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몰두하는 이유를 분석해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2030 투자자들이 신변을 비관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가상화폐는 원금까지 잃을 수 있는 고위험 자산임에도 ‘대박’을 노리며 뛰어드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어 정부 등이 나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4일 강원도에서 가상화폐 투자로 거액의 손실을 본 20대 남성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A씨는 최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2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부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코인 투자에 실패해 심적으로 괴로워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경위를 조사 중이다.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8년 1월31일 오전 7시50분쯤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대학 휴학 중이던 20대 B씨가 자신의 방 침대에서 숨져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시신 상태 등을 봤을 때 타살 정황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B씨는 2017년 8월부터 아르바이트 등으로 모은 돈 2000여만원으로 가상화폐를 사서 한 때 2억원까지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시세가 폭락해 원금까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2월7일 30세 C씨도 비슷한 이유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숨져 있는 C씨를 그의 어머니가 발견해 신고했다. C씨의 컴퓨터 책상 주위에 담배와 소주병 등이 널려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건강한 아들이었다”며 “최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C씨가 투자한 금액은 10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5월엔 경남 창원 한 사무실에서 가상화폐에 10억원을 투자했다가 전액을 잃은 30대 D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약 3년간 지인들의 투자금과 자신의 돈을 모아 비트코인에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D씨의 아내는 “남편이 투자 실패로 괴로워했다. 지난해 11월께부터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해 왔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올해 2월 말 기준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의 실명 확인 계좌 수는 250만1769개다. 투자자 예탁금은 4조619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5배나 늘었다. 가상화폐 하루 거래 규모는 약 20조원으로 이미 주식 시장을 넘어섰다. 

 

29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855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가상화폐 투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40.4%)가 이미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30대(49.8%)가 가장 많았고 20대(37.1%), 40대(34.5%), 50대 이상(16.9%) 순이었다. 2030세대가 전체의 86.9%인 셈이다.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이유로는 ‘월급만으로는 목돈 마련이 어려워서’(53%,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이처럼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급등락을 막을 수 있는 ‘안전 장치’조차 없다. 주식시장은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서킷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정지)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호가 효력정지) 등의 제도가 있어 과열을 막을 수 있지만, 가상화폐 시장은 무방비 상태다. 이 때문에 급격히 시세가 상승해 높은 수익률을 내는 일도 가능하지만 그만큼 한 순간에 폭락해 투자금을 크게 잃을 위험도 존재한다. 투자자들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29일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6천400만원대 중반에서 거래 중이다.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날 “(가상화폐 투자를) 도덕적·원칙적으로 접근해 ‘하라 하지 말아라’할 게 아니라 젊은 친구들이 왜 일확천금을 좇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며 “청년들이 기성세대와 달리 ‘내 집 마련’과 결혼 등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충족할 만한 사다리가 많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로또 복권은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산다. 부자들은 굳이 그런 걸 안 해도 다른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코인에 2030세대가 몰리는 건 어찌 보면 로또를 사는 것과 결이 비슷하다. 이들에게 ‘코인은 도박이니 이걸 하는 건 나쁘다’고만 하는 건 궁지에 모는 것과 같아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단순히 규제만 하기보다 청년들이 과도하게 가상화폐 시장에 몰두하는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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