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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코로나 백신 접종 EU보다 월등… 일단 반대파 불만 압도 [뉴스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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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0 06:00:00 수정 : 2021-04-09 18: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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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단행 100일

英, 발 빠르게 세계서 가장 먼저 접종 시작
대상자 48% 1회차분 맞아… 佛·獨과 대조
국민 40% “EU와 이혼 코로나 대처에 도움”
관료들 “EU 벗어 났기에 백신 확보 가능”
탈퇴 주도 존슨 총리, 2024년 총선 ‘파란불’

원산지·식품위생·기술규제 등 새로 적용
통관절차 복잡해져 산업현장선 아우성
1월 對EU 수출 전월比 41% ↓·수입 29% ↓
존슨 내각, 亞·太서 번영 계기 마련 시도도
제대로 된 평가는 코로나 이후 가능할 듯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신화연합뉴스
“영국에 놀라운 순간이 왔다. 우리는 자유를 손에 넣었고 그것을 어떻게 최대한 이용하는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완전한 결별’을 이룬 올해 1월1일(현지시간) 신년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EU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지 48년 만에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을 가진 공동체에서 벗어난 데 따른 불안감을 달래면서 이제는 27개 회원국의 집단적 의사결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 즉 주권을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었다.영국과 EU는 10일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지 꼭 100일째를 맞는다. 하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성적표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무엇보다 최근 브렉시트 과정 전반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압도했기 때문이다. 올 초 양측 국경에서 벌어진 각종 혼선과 교역량 감소는 브렉시트의 당연한 결과인지, 시행 초기 진통일 뿐인지, 아니면 코로나19 봉쇄령에 따른 영향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브렉시트 불만 지운 백신 접종 성과

뉴욕타임스(NYT)는 EU가 영국을 상대로 시작한 ‘백신 전쟁’을 언급하며 “영국이 EU를 떠나는 적기를 택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보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관련해 “영국보다 EU에 먼저 내놓으라” 혹은 “EU 내 생산분의 역외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으르렁댄 것이 오히려 영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켰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2월 브렉시트 단행 직후 코로나19가 유럽을 강타했을 때만 해도 영국은 방역 실패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EU와의 무역조건 등 미래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설정한 브렉시트 이행기(Transition Period) 동안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했다. 코로나19 백신 물량 확보와 접종 속도에서 영국이 EU보다 훨씬 앞서나가면서다.

지난해 말 영국은 유럽의약품청(EMA)의 코로나19 백신 승인 권고보다 보름 이상 앞서 독자적 사용승인을 했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접종을 시작했다. 8일 현재 영국에서는 백신 접종 대상자의 48%가 최소 1회차분을 맞은 상태다. 프랑스(14%)와 독일(13%) 등은 그에 한참 못 미치고, 최근 감염도 확산일로다. 오는 12일부터 봉쇄를 완화해 식당·술집의 야외 좌석과 헬스장, 미용실 등을 개방할 예정인 영국과 3차 대유행 위기에 직면해 지난 3일 전국 재봉쇄에 들어간 프랑스의 모습은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지난 7일(현지시간) 웨일스 카마던의 웨스트 웨일스 종합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코로나19 백신을 주사기에 담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 모리(Ipsos MORI)가 지난달 16세 이상 영국 성인 2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67%는 영국이 EU보다 백신 전략을 더 잘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영국이 못했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특히 ‘브렉시트가 영국의 코로나19 대처에 도움이 됐다’는 답변은 40%로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38%), ‘더 악화시켰다’(14%)는 응답보다 우세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가 옳았다는 근거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국이 EU에 잔류했더라도 ‘중대 공중보건 사건’ 발생 시 예외조항에 따라 독자적으로 백신을 확보·승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지만, 영국 관료들은 EU 틀을 벗어났기에 과감한 백신 물량 확보전을 펼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다른 회원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고, 위험 회피적 접근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EU 안에서는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주장이다.

존슨 총리는 “영국이 EU의 백신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었다면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뻔했다”고까지 했다. 영국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였던 데이비드 프로스트는 한발 더 나아가 “EU 회원국 지위는 우리의 의사결정 능력에 일종의 걸림돌이었다”며 “브렉시트는 우리의 태도를 개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제공해 준다”고 강조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신화연합뉴스

브렉시트를 주도한 존슨 총리의 2024년 총선 가도에도 일단 청신호가 켜졌다. 매슈 굿윈 영국 켄트대 정치학과 교수는 NYT에 “일각의 예상대로 브렉시트에 심각한 유감을 나타내거나 아예 브렉시트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기미가 백신 성공으로 인해 사라졌다”고 짚었다.

EU 입장에서는 다른 회원국들이 영국 뒤를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라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산업 현장은 아우성

지금은 백신 접종 성과에 가려졌지만 경제·산업 현장에서는 아우성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24일 극적으로 타결돼 올해부터 발효된 영·EU 무역협력협정으로 무관세·무쿼터는 유지됐지만, 기존과 달리 원산지 규정·식품위생·기술규제·통관 절차 등이 새로 적용돼 상품이 양측 국경을 넘어가려면 번거로운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AFP연합뉴스

영국령이지만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EU 단일시장에 남게 된 북아일랜드 지역에서는 올 초 슈퍼마켓 선반이 텅 비는 사태가 일어났다.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건너가는 상품에 통관 및 검역 절차가 적용되면서 생필품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네덜란드 항구에서는 영국에서 카페리를 타고 온 운전자가 세관에서 샌드위치를 압수당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샌드위치에 들어 있는 고기가 유제품, 과일 등과 함께 EU에 개인적으로 반입할 수 없는 품목으로 규정돼서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EU로의 상품 수출은 전월 대비 40.7%나 줄었다. EU로부터의 수입은 28.8% 감소했다.

특히 중소·중견업체의 고충이 크다. BBC방송은 “화물트럭 한 대에 여러 종류의 물건을 싣는 작은 업체들은 수출에 필요한 통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품목별로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페이지 번호 하나만 잘못 매겨도 화물 전체의 배송이 지연된다”고 전했다. 영국과 유럽 대륙의 관문인 도버항에는 최근 화물차량 대기줄이 사라졌지만, 이는 프랑스에서 온 트럭이 되돌아갈 때 영국산 화물 적재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BBC는 덧붙였다. 빈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통관 지연으로 며칠씩 발이 묶이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영국 어민들은 자국 해역 내 EU 어획량을 최소 5년반 동안 기존의 75%까지 보장해준 것도 모자라 1월 대EU 해산물 수출량이 83% 급감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어획증명서, 건강확인서 등 서류작업에 따른 배송 차질로 새벽 어시장에 싱싱한 해산물을 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매주 5만t 이상의 랍스터와 조개 등을 스페인, 벨기에 등에 수출해 온 요크셔 지역 어패류 수출업체 ‘바론 셸피시’는 브렉시트 여파로 지난 2월 창업 60년 만에 문을 닫았다.

◆유보된 평가

여전히 EU가 최대 교역 상대인 영국으로서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1월 수출입 지표는 지난해 말 영국과 EU 각국의 봉쇄령, 브렉시트 본격화에 대비한 재고량 초과 비축 등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브렉시트 충격파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더 지나 코로나19의 그림자가 걷혀야 한다는 얘기다.

영국 도버항에 트럭들이 체크인 줄을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존슨 내각이 유럽 대륙과의 관계를 느슨하게 하는 대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래 번영의 계기를 잡으려 하는 것도 지켜봐야 한다. 영국은 이미 지난 2월 아태 지역 11개국이 참여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 신청을 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전망도 밝은 편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브렉시트 준비 상황을 총괄했던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이 최근 스코틀랜드 업체들과의 간담회에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구매자를 찾느니 현존 유럽 고객에게 파는 게 훨씬 낫다”는 쓴소리를 듣는 등 업계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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