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해서 입양해서는 안 돼"
"입양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조건없이 제공하겠다는 다짐 있어야"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논란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입양 관련 발언을 직격한 비판처럼 들린다. 10년 전의 얘기니 문 대통령 발언과는 전혀 상관성이 없음을 우선 알려드린다.
10년의 시간을 접어 두 사람을 2021년 1월19일 동시간으로 소환해 보자.
“입양 부모의 경우 마음이 변할 수 있어서 일정기간 내 취소한다든지, 여전히 입양 마음이 강하지만 아이와 맞지 않는다고 하면 입양 아이를 바꾼다든지…”(문 대통령)
“아이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해서 입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입양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아무런 조건없이 제공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과 설전을 펼치는듯한 발화자는 입양 관련 단체 인사도, 야당의 국회의원도 아니다.
내로라하는 정부기관들도 벌벌 떨게 하는 가을 서릿발 같은 감사원의 최재형(64) 원장이다.
공교롭다. 최 원장은 전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최 원장이 이끌고 있는 탈원전 정책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가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석열 총장을 향해서는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보듬었다. 현 정부와 가장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운 ‘최재형·윤석열’ 두 사람을 다독인 것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말꼬리 잡기보다는 답변 내용의 맥락과 취지를 감안해서 평가해야 하지만 이 (입양 관련 발언)부분만은 도저히 넘어가기 어렵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도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있나”
여권에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떠난 금태섭 의원이다. 문 대통령을 향해 다시 한번 입바른 소리를 날렸다.
“입양 아동을 마치 물건 취급하는 듯한 대통령 발언은 너무나 끔찍하게 들렸다.”
장애를 지닌 딸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인 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도 가세했다.
최 원장은 텍스트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한다.
“입양은 평범한 아이에게 그가 놓칠 수도 있었던 평범한 가정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고.
최 원장에게는 위로 38살, 34살 된 딸 2명과 아래로 26살, 22살 아들 2명이 있다. 딸 둘은 아내 이소연씨가 배 아파 난 자식이고 아들 둘은 가슴을 앓아 낳은 자식이다. 지원, 예원, 영진, 진호다.
2000년 둘째 아들 진호를 먼저, 2006년 첫아들 진호를 입양했다
‘영진이 낳아주신 엄마가 입양보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막상 동의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생모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 맘이 아프다.~귀한 아이를 저희 가정에서 키우도록 허락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2006년 9월 11살이던 영진이를 처음 입양할 당시 최 원장의 아내가 쓴 글이다.
그런 영진이가 5년이 지난 2011년 5월 양엄마·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제가 입양가는 날 기억에 남는군요. 처음엔 체험학습으로 갔었는데 진짜 가족이 되어 가장 기분이 좋았죠. 엄마 아빠께서 저를 입양해 주셨기 때문이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최 원장은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입양이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철저하게 숨기고 살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서란다. 최 원장 가족이 입양과정에 겪은 일들은 인터넷사이트에 ‘영진, 진호네집’ 일기장으로 올려져 있다.
그는 2011년 5월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법률신문과 인터뷰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입양 당시 그 사실을 알았더라도 입양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행복한 가정이 점점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희준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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