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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가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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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06 23:02:43 수정 : 2020-11-06 23: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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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시장으로 가는 마차’.

가을이 깊어간다. 이맘때면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과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단풍을 보는 즐거움이 그저 좋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날씨가 몸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을 놓칠 수야 있겠는가. 그래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 한장을 떠올렸다.

영국미술이 자리를 잡아가던 18세기 조슈아 레이놀즈와 쌍벽을 이룬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그림이다. 둘은 작품 창작의 방법이 서로 달랐다. 레이놀즈는 아카데믹한 이론을 주장하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주제를 숭고하고 엄숙하게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반해 게인즈버러는 이론과 원칙을 강조하기보다 쾌활하며 자연스러운 느낌의 감각적 모습을 나타내려 했다. 자연 이외의 어떤 스승도 인정하지 않았고, 레이놀즈가 얕잡아보고 그리려 하지 않았던 풍경화에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레이놀즈가 고전주의적이라면, 게인즈버러는 낭만주의적이라고 구분해서 말할 수 있다.

‘시장으로 가는 마차’에서 게인즈버러는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가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묘사했다. 어머니와 딸은 마차 위에 앉았고,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양을 몰며 길을 이끌고 있다. 나무 뒤의 장난기 서린 아이는 오늘 시장가는 길에 마냥 신이 난 듯하다. 숲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도 가족 나들이에 동반하듯 바람 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꾸밈없이 나타낸 배경이 한껏 정겨운 분위기를 더하며, 소박하고 유쾌한 인상을 주는 풍경화이다.

게인즈버러는 인위적으로 다듬은 자연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직접 체험한 자연을 담으려 했다. 나무줄기와 나뭇잎을 불규칙하면서 오밀조밀한 형태로 묘사했고, 획일적인 구도나 규칙적인 선의 묘사는 피했으며, 감각적으로 사용한 붓 터치들만이 두드러지게 했다. 짜 맞춘 자연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감각적 체험에 충실하게 화폭 위에 옮기려 했다.

알록달록하게 물든 주변 풍경이 우리를 유혹하는 주말이다. 짜 맞춘 일상과 복잡한 일을 잠시 접어두고, 못 이기는 척 자연 속으로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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