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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미사일·한국판 스페이스X 가능” 정말 그럴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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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02 08:00:00 수정 : 2020-08-02 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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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첫 군사통신위성 아나시스-2호를 탑재한 팰컨9 로켓이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기지 발사대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한미 미사일 지침.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얻기 위해 1979년 합의한 이 지침을 두고 “로켓 주권을 제약하는 도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2001년 사거리가 180㎞에서 300㎞로 늘어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지침이 개정된 것은 ‘미사일 주권’을 의식한 행보였다.

 

지난달 28일. 정부는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우주산업 진흥을 통한 ‘한국판 스페이스X’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우주가 돈이 되는 시대가 한국에서도 열린다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길이 열렸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선결 과제 많아…“단기간 성과 불확실”

 

기존에는 국내에서 고체연료를 쓸 수 있는 발사체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추력이 100만 파운드·초로 제한됐다. 국내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연구가 2013년 발사된 나로호의 2단 킥모터에서 진전되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고체연료 제한이 사라지면서 다양한 방식의 우주발사체 개발이 가능해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발사체에 고체연료 부스터를 장착할 수 있다.

 

일본 H-2A 로켓은 고체 부스터 2개를 장착하면 4.1t, 미국 델타-2 발사체도 고체 부스터 3개를 붙이면 2.8t짜리 위성 발사가 가능하다. 1.5t급 위성을 탑재할 예정인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더 큰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다.

 

누리호에 120만 파운드·초의 추력을 내는 고체연료 상단 모터를 장착, 4단으로 로켓을 구성하면 300㎏ 수준의 달 착륙선을 달에 보낼 수 있다.

 

유럽의 베가 로켓. 고체연료를 쓰는 상업용 로켓으로 10여 차례 발사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무 탄도미사일을 통해 고체연료 엔진 경험을 축적한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유럽 베가 로켓, 일본 엡실론 로켓처럼 고체연료를 쓰는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들은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 나로우주센터는 지구관측위성 같은 저궤도(고도 500~1500㎞) 위성은 쏠 수 있으나, 최근 발사된 아나시스-2호 군사통신위성 같은 정지궤도(고도 3만6000㎞) 위성 발사는 어렵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와 함께 자전한다. 적도 궤도는 지구 자전 속도가 가장 높다. 위성을 적도 궤도에서 동쪽으로 쏘면 자전 속도를 이용해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다. 아나시스-2호가 적도와 가까운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에서 발사된 이유다. 

 

군사통신위성 아나시스-2호가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공장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에어버스 제공

나로우주센터에서 쏘면 적도까지 먼 거리를 날아가야 한다. 동쪽으로 도는 지구를 따라 쏘면 1단 로켓이 일본에 떨어질 수도 있다. 쏘려면 2006년 무궁화-5호 위성 발사처럼 적도 부근 바다에 해상 기지를 만들어 로켓을 발사하거나, 국산 발사체를 적도와 가까운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나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로 옮겨야 한다. 유럽 아리안 로켓이나 일본 H-2A 로켓 같은 정지궤도 위성 발사체를 만들어 쏘기가 쉽지 않다.

 

남은 방법은 고체연료를 쓰는 저궤도 위성 발사체 개발이다. 하지만 기존 액체연료 발사체와 유사한 성능을 지닌 발사체를 따로 만드는 것은 중복 투자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판 스페이스X’가 실현되려면 로켓발사만으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 구조가 필요하다. 위성발사 수요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간기업과 우주군, 항공우주국(NASA) 등이 위성을 쏘고 있고 외국의 발사의뢰도 많다. 중국은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구축 등 자체 수요가 충분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 구축에 나서기 전까지는 위성 수요가 적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많은 수의 정찰위성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액체와 고체연료 발사체를 따로 운용하면, 발사체의 기술적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우려가 있다. 단기간 내 많은 위성을 발사해야 기술적 검증을 빨리 마치고 위성발사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데, 동등한 성능을 지닌 고체와 액체연료 발사체가 공존하면 둘 다 발사체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로켓 개발 전략을 재정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시험발사체가 발사를 앞두고 발사대에 기립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도 난제

 

1.5t짜리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누리호의 1단 추진체 추력은 300t, 2단 추진체는 75t이다. 나로호 로켓 2단 추진체 추력(7t급)이 사거리 300㎞의 현무-2A 탄도미사일(탄두중량 500㎏) 추력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누리호 2단 추진체 수준의 추력을 지닌 고체엔진만으로도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비행거리 1000~3000㎞)이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비행거리 3000~5000㎞)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1단 추진체와 동일한 추력이라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가능하다.

 

문제는 엔진만으로 미사일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은 탄두가 대기권에 들어오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핵심이다. 북한의 화성-12형 IRBM은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시 마하 15 안팎의 속도에 온도는 5000도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ICBM은 마하 20 이상에 온도는 7000~8000도에 달한다. 대기권 재진입 시 탄두가 마찰열을 견디면서 표면이 균일하게 깎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회전하다 폭발한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다.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1단 추진체가 무인 보트에 착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IRBM급 이상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려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전략 기술이라 이전에 응하는 선진국이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개발 후에는 10여 차례 이상 시험발사를 해야 하는데, 협소한 한반도 지역에서는 최대 사거리로 쏠 수 없다. 북한처럼 고각 발사를 하면 기술적 검증이 완벽히 이뤄지기 힘들다. 제주 남쪽 공해상으로 발사하면 중국과 일본을 자극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미사일 전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정치학 측면에서 주변국 정세를 고려한 전략적 고민이 필수다. 탄도미사일이 전략무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절차다.

 

문제는 미사일 관련 이슈가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일부로서 유기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대전 유성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첨단 무기와 군사장비를 시찰한 뒤 현황보고를 받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 앞으로 한국 최초의 군사전용 통신위성인 아나시스-2호 와 한국형 중고도 무인정찰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대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 “세계 최고 수준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성공한 데 대해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북한 지하시설 파괴용인 사거리 800㎞, 탄두 중량 2t으로 추정되는 현무-4가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같은날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특사가 돼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면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을 달래는 언급과 자극할만한 말이 같은날 함께 나온 것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혼란을 느낄 소지가 있다. 정부의 메시지 관리 문제가 지적되는 이유다. 실제로 문 대통령 발언 직후 일부 군 관계자들은 “북한과 잘 지내려는 게 이 정부 기조 아니냐. 그런데 왜 저런 ‘쎈’ 발언이 나오냐. 배경이 뭐냐”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과 관련해 “완전한 미사일 주권 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자”고 당부한 것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전날인 28일 “사거리 제한 문제도 인 듀 타임(적절한 시기에 머지않아란 뜻)에 해결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군의 현무-2A 탄도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 대통령과 김 2차장의 언급은 800㎞인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거리 800㎞는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에 둔다. 그런데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이보다 연장되면, 베이징과 텐진, 선양, 상하이, 난징 등 중국 동부 대도시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략적 의미를 지닌 신형 MRBM이나 IRBM이 한국에서 탄생하는 셈이다. 

 

한국의 신형 미사일을 중국과 러시아가 묵인할 가능성은 낮다. 강력한 반발이 뒤따를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우리나라를 강하게 압박한 전례가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우주발사체나 미사일을 쏘고 싶어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큰 미사일 분야 정책은 명확한 로드맵 하에서 유기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혼란과 마찰,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이후 정부의 행보가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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