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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오디세이기’ 20대의 이유 있는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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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06 21:59:06 수정 : 2020-07-06 21: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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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지나 성인기 이전 20대 / 도전과 좌절의 생애주기 맞아 / 취업 준비 스트레스 가장 높아 / 공정 훼손 인국공 사태로 폭발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10대는 철이 없고, 20대는 답이 없고, 30대는 집이 없고, 40대는 돈이 없고, 50대는 일이 없고, 60대는 낙(樂)이 없고, 70대는 이(齒)가 없고… 100세는 다 필요 없단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와 무수한 시행착오를 특징으로 하는 20대 초반의 여성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직업 탓인가, ‘답이 없는 20대’에 유독 눈길이 간다. 와중에 인천국제공항공사발(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보니, 더더욱 20대의 목소리에 담긴 분노와 좌절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20대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음은 일면 반가운 일이다. 우리네 생애주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20대라는 것이 생애주기 연구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20대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업’(task), 곧 평생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직업을 탐색하는 과업, 더불어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업을 적극 탐색하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두 가지 과업 모두 결코 만만치 않다는 데 20대의 고민이 숨어있음은 물론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실제로 한국사회에 등장한 20대론의 제목만 일별해보아도, ‘88만원 세대: 절망의 세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청춘일기: 광장 밖 호모 비정규니언스에 관한 기록’ 등에서 감지되듯, 20대론의 전반적 분위기는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논조에 일자리의 엄혹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이 눈에 띈다.

SNS상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져, 금수저 흙수저론,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朝鮮)을 합친) 등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가진 것 없는 젊은 세대가 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란 의미의 “죽창”,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아주 적은 보수로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뜻’의 “열정 페이”,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평가를 풍자’한 표현인 “노오력” 등도 SNS상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대 취업 및 구직 과정의 고단함을 담은 “지여인”(지방대 출신 여성 인문대생)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 등도 자주 오르내렸고, 취업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전화기”(전자전기·화학공학·기계공학) 전공생을 향한 부러움도 종종 표출되었다.

최근 20대의 생애주기에 주목한 연구자들은 유아기→사춘기→성인기→노년기의 4단계 모델 대신 유아기→ 사춘기→오디세이기→성인기→적극적 은퇴기→노년기의 6단계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오디세이기란 사춘기를 지나 본격적인 성인기로 진입하기 전 10여년에 걸쳐 끊임없이 탐색하는 와중에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결국 생물학적 성숙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는데 사회적 성숙은 현저하게 지연되는 과정에서 생애주기상 오디세이기란 새로운 단계가 출현했다고 보는 셈이다.

생애주기는 주요한 전이 지점(transitional point)을 지나간다는 특징을 보이는데, 오디세이기의 전이로는 취업 준비, 첫 직장생활, 연인과의 첫 성경험 (혹은) 이별, 배우자 선택 등을 들 수 있다.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생애주기 과업 중 스트레스 경험률이 가장 높은 것은 단연 취업 준비로 95.9%에 이르는 대다수가 스트레스를 받았노라 응답하고 있고, 다음은 첫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경험했노라는 응답자가 84.3%로 뒤를 잇고 있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스트레스를 경험했다는 응답률 또한 79.2%로 비교적 높게 나타난 반면, 첫 성경험이나 배우자 선택으로 인한 스트레스 경험률은 각각 56.6%, 54.8%의 동의율을 보였다.

스트레스의 강도(强度)는 100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취업 준비과정이 69점으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첫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60점으로 나타나, 오디세이기 삶의 중압감은 취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스트레스 수준이 일관성 있게 높게 나타났고, 중류층의 스트레스 수준이 상류층이나 하류층보다 높음이 눈에 띈다.

취업을 위해 취준생들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진정 눈물겹다. 자격증을 준비하고, 직무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은 기본이요, 영어 및 외국어 점수는 필수에다, 체력단련 및 외모 관리는 물론 의사소통 및 표현력 향상 훈련에도 아낌없이 투자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야말로 자신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공정성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이유 있는 분노가 “날로 먹으려 한다”는 거친 표현 속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지.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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