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또 다시 강력한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놨다. 작년 12월 16일 단행한 종합 부동산 대책 이후 지속한 이른바 풍선효과를 차단하고 최근 집값 상승을 주도한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입)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긴급 처방이다.
지난 12·16 부동산대책으로 집값 불안의 진앙인 서울 강남의 집값은 잠시 안정세를 보였으나 수도권 비(非)규제지역으로 투기가 확산하고 서울지역의 집값도 다시 꿈틀거리자 정부가 다시 독한 추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하는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대책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집값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나온 부동산 대책은 이번을 포함해 21차례에 달한다. 그간 쏟아진 그 많은 규제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대책이 나오면 잠시 주춤하던 집값은 금세 틈새를 비집고 다시 치솟아 오르는 양상이 반복되면서 서울지역의 중위 아파트 가격은 3년 만에 50% 이상 올라 9억원을 훌쩍 넘었다.
강남을 규제하니 비강남의 중저가 주택 가격이 뛰고, 서울 전역을 규제하자 수도권의 비규제지역과 지방으로 투기가 번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집값을 억제해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갖게 하겠다는 정책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2∼3개월 꼴로 반복된 규제가 오히려 백신 주사처럼 투기 세력의 내성을 키우면서 집값만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계가 드러난 수요억제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공급 불안 심리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정부는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의 경우 주택보급률은 96%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확 넘도록 대대적으로 공급을 확대한다는 선제적 자세로 잠재적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집값의 상승 기조 속에서 저소득층이나 청년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임대주택의 공격적 확대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 층고나 용적률 규제 완화, 도심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등 동원 가능한 정책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당국이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17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에 대해 경기지역에서는 효과의 지속성 여부를 떠나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다만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로 신규 지정된 지역에서는 "아파트값 상승이 특정 지역 일부 아파트 중심으로, 그것도 상당수 투기 세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주변 지역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의 이번 부동산 대책은 규제 지역의 확대 지정,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대출 규제 및 처분·전입 의무 규제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도내에서는 접경지역과 농촌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됐고, 성남 수정과 수원, 안양, 안산 단원, 구리, 군포, 의왕, 용인 수지 및 기흥, 화성 동탄2신도시가 투기과열지구로 새로 묶였다.
◆'묻지마' 투기 열풍 잠재우는데 단기적인 효과 있을 듯
정부의 이번 조치로 일부에서는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 등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투기세력의 '묻지마식' 부동산 거래를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투기과열지구로 신규 지정된 성남시 수정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수정구는 6개 구역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역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한 측면이 큰데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며 집값 상승이 한풀 꺾이고 당분간 진정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정구는 서울 강남의 접근성이 좋고 실수요자가 많기는 하지만 투기과열지구 지정으로 전매 제한 등 재개발사업에 대한 규제가 많아지고, 민간주택분양가 상한제마저 우려돼 매수자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이번에 규제가 확대된 것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 연장선에 있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규제가 발표되면 아무래도 심리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치므로 당분간 시장은 안정화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가격 급등 일부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핀셋 지정' 했어야 한다는 시각도
이번 정부의 조치에 대해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신규 규제지역을 중심으로 한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요 불만 내용은 '집값은 일부 지역, 일부 아파트를 중심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왜 그동안 오르지 않은 다른 아파트까지 규제를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안산시 단원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안산지역에서 일부 아파트 가격이 1∼2억원씩 오른 것은 맞다"며 "하지만 이는 2018년 20∼30% 하락은 안산지역 아파트 가격의 회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안산 지역은 주변 시군과 비교해 가격이 거의 변동이 없었는데, 최근 일부 재건축 및 신규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서 단원구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는 것은 지나치다"며 "가격이 급등한 일부 아파트 단지 등을 중심으로 '핀셋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구리시 부동산중개업협회 관계자는 "이번 규제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라며 "시장에 갈 데 없는 유동 자금이 많이 풀린 데다 금리가 낮아 어차피 돈 있는 투자자들의 갭투자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영호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용인 기흥구지회장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동별로, 아파트별로 가격 차이가 심한 현실을 반영 못 한 부분이 있다"며 "정부가 지역별, 동별로 세분화해서 규제지역을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에 갈 데 없는 유동자금 많이 풀리고 금리도 낮아 갭투자 지속될 것"
'6·17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작년 12·16대책에 이은 고강도 대책이라고 평가하면서 풍선효과 차단과 '갭투자' 봉쇄 등 일정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수도권 동북부 등 비규제지역으로 옮겨가고, 잦은 대책에 대한 내성이 대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차별 규제로 실수요자의 내집마련마저 어려워질 것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이번 대책은 서울 강남뿐 아니라 수도권 및 지방의 투기 수요도 모두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고강도 대책으로 보인다"며 "규제 사각지대로 몰리는 투기 수요를 봉쇄하고 풍선효과를 차단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도 "당초 예상보다 규제지역이 넓게 설정됐고, 규제의 강도도 센 편이어서 규제지역의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김규정 위원은 "특히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주택 구입 시 전세 대출이 막히게 돼 대출을 이용한 단타 투자나 갭투자가 어려워지게 됐다"고 말했다.
전세 대출 후 규제지역에서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들이면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하기로 한 조치나 모든 규제지역에서 주택 구입 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6개월 안에 기존 집을 처분하고 전입하도록 한 것도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재건축 규제, 추진 속도 늦춰…공급 감소 우려
이날 대책 중 서울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만 분양권을 주기로 한 것은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다.
노후한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소유자들이 실거주하지 않고 세를 놓는 경우도 많아 비거주 소유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연말까지 법을 정비한 뒤 이후부터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하는 단지부터 이를 적용할 예정이어서 목동 등 재건축 초기 단계인 단지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박원갑 위원은 "재건축 시장의 지표가 부동산시장을 이끄는 선행지표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재건축 갭투자나 원정 투자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이라며 "재건축 단지들은 추진 상황에 따라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 소장은 "재건축 단기 수요를 차단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재건축 추진 속도를 늦춰 결과적으로 공급 감소를 낳을 우려도 있다"고 봤다.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자문지원센터 안명숙 부장은 "안전진단 통과 단지의 경우 조합설립인가를 빨리 받으려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고, 나머지는 오히려 추진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사실상 부활하는 데다 거주 요건이 2년 부과되면 재건축보다 재개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재건축 열기 식을 듯…재개발 투자 관심 늘어날까?
정부는 최근 세금과 대출 등 부동산 규제를 피하려 법인을 통해 투기적 주택 구입에 나서는 사례가 증가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도 내놨다.
내년부터 법인이 소유한 주택을 처분할 때 기본 법인세율에 더해 추가로 적용하는 법인세율을 현행 10%에서 20%로 올리고, 내년 6월부터는 법인 보유 주택에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할 때 최고세율인 3∼4%를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인 법인 거래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가 이뤄진 것"이라며 반겼다.
다만, 저금리, 풍부한 유동성이 이번 대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저금리 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고, 하반기 30조원 규모의 대규모 3차 추경과 3기 신도시 토지 보상자금 유입 등 부동자금이 만만치 않게 풀릴 전망"이라며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원천봉쇄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집값의 조정까지 기대하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규정 위원은 "저금리 상황에서 풍부한 유동성이 투자처를 찾고 있어 여전히 비규제지역이나 가격이 저렴한 지방, 미분양 아파트 등으로 유동성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대책으로 단번에 투자심리가 꺾여 시장이 관망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출 옥죄기 등 일괄적인 규제, 실수요자 내집마련 위협할 수 있어
안명숙 부장도 "현재 주택시장은 유동성 강세장"이라며 "대출 없이 전세 보증금을 승계하는 30∼40대 갭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출 옥죄기 등 일괄적인 규제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함영진 랩장은 "자칫 과도한 수요억제책으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이 위축되고 규제가 임대차 시장의 가격 불안과 분양시장 과열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집값 안정을 위한 대체 투자처 발굴과 도심지역의 꾸준한 주택공급을 통한 정비사업의 공급 방향 모색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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