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회동은 다양한 해석과 관측을 쏟아냈다. 이번 회동은 대한민국 재계 1, 2위 그룹이자 ‘전차(電車)군단’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제조업 상징 간의 만남이다. 이들이 정부 주도 행사나 재계 총수 모임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서로의 사업을 놓고 단독 회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그룹은 1995년 삼성그룹이 일본 닛산과 손을 잡고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이후 소원해졌던 터라, 세대교체가 끝난 젊은 총수들 간 회동은 단순한 만남이 아닐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電動化)’라는 패러다임의 급변 아래 산업 경계가 붕괴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한국판 뉴딜’ 정책을 통해 미래차를 핵심 먹거리로 밀고 있고,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검찰 조사와 파기환송 선고를 앞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사업적으로든 재계 동반자로든 손을 맞잡는 게 불가피했을 것이란 시각이다.
◆“현대차, 삼성전자 원천기술에 관심”
이날 회동은 오전 10시 삼성그룹의 배터리사업 거점인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양사 경영진은 차세대 전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과 방향성,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은 현대차그룹 경영진이 삼성SDI 및 삼성종합기술원 담당 임원으로부터 관련 글로벌 기술 동향, 삼성의 개발 현황 등에 관해 설명을 들은 뒤 상호 관심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엔 삼성 배터리 선행(미래) 기술 개발 현장도 둘러봤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자리와 관련,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상용화가 멀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완성차 업계에선 초미의 관심사”라며 “최근 삼성이 원천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해 현대차그룹에서 관심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중에선 도요타가 2022년 전고체 배터리를 판매하겠다고 밝혔고, 폴크스바겐과 BMW는 2025∼2026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와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해질의 상태’다.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배터리와 달리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고체다. 이외 리튬이온이 이들 전고체를 통과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충·방전되는 작동 원리는 똑같다. 이런 차이에서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과 ‘에너지 고밀도’란 장점을 얻는다. 지금 배터리는 전해질이 액체다 보니 얼거나 기화, 팽창하는 등 온도변화, 외부충격에 취약하다. 지난해 국내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태는 물론이고, 종종 새카맣게 불탄 전기차가 보고되는 게 그런 이유다.
다만 고체 전해질을 쓰면 리튬이온의 이동속도가 떨어져 출력이 떨어지고, 고체인 양극과 음극, 전해질이 서로 닿으면서 분리막을 훼손해 수명이 떨어지는 단점이 생긴다. 이를 해결하는 데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그런데 삼성이 이 분리막 훼손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고 공개하면서, 현대차그룹이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삼성종합기술원은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전성을 높이면서 크기는 반으로 줄일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며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게재했다. 한 번 충전으로 800㎞ 주행이 가능하다는 게 삼성 측 발표다. 현재 가장 앞선 기술인 ‘3세대 배터리’는 500㎞ 수준이다.

◆삼성·현대차, 손잡고 미래차 주도할까
이날 회동에서 어떤 논의나 합의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르노삼성차 등 문제로 소원했던 두 그룹이 격변하는 사업 환경 아래서 세계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를 함께 선도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그간 현대차 전동화 모델엔 LG화학 배터리, 기아차 모델엔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주로 사용됐다.
현대차는 △전동화 △자율주행 △차량공유 등으로 압축되는 미래차 혁명에 맞서 미래사업 기반에만 20조원을 투자한다는 ‘2025 전략체계 전환’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전동화(9조7000억원)는 물론 도심항공모빌리티(1조8000억원)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 배터리는 핵심이다. 현대·기아차는 2025년까지 모두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이 중 23종을 순수전기차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삼성그룹 역시 2018년 4대 미래 성장사업 가운데 하나로 반도체 중심의 전장부품을 선정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정책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를 신성장 산업으로 강력하게 육성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정부의 경제 재건 의지에 책임감 있게 응답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최근 각각 “우리 사회가 보다 윤택해지도록 하고 싶다”,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뤄내겠다”고 밝혀, ‘사람이 중심인 사회’를 꿈꾸는 대통령과 보조를 함께했다. 경영승계, 노조문제 등으로 실형을 받을
처지에 놓인 이 부회장의 사회적 책임에 정 수석부회장이 동행,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부회장(1968년생)과 정 수석부회장(1970년생)은 개인적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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