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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그래도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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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08 22:22:42 수정 : 2020-05-08 22: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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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넷 뉴먼의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

바넷 뉴먼은 세로 242센티미터, 가로 543센티미터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화면 위에 붉은색 물감을 고른 밀도로 칠했다. 그 위에 흰색, 검은색, 좀 옅은 붉은 색선을 사용해서 그 색면을 구분해 놓았는데, 단순하고 무의미해 보이며 공허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암시도 없고, 화면 구성을 위한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극도로 단순화한 형태로 회화 평면 자체를 강조했으며, 붉은색 면이 끝없이 펼쳐지는 색채공간의 자유스런 흐름이나 무한성의 공간을 암시하려 한 듯하다. 제목은 ‘영웅적 숭고를 향하여’이다.

숭고가 무얼까? 18세기 미학에서 미가 아닌 자연과 예술의 다른 가치로 새롭게 주목한 개념이 ‘숭고’였다. 자연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화사하고 평온한 자연풍경을 보면서 친화감을 갖고 조화를 느낄 때 쾌의 감정을 갖게 되며, 그 대상을 아름답다고 한다. 다른 경우로 거친 파도에 휩싸인 망망대해나 거대한 산 앞에서 처음엔 위협적인 힘과 크기로 인해서 부조화와 공포의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할 수 있을 때 생명감이나 삶의 의지가 고양되면서 처음의 공포가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찬탄과 감동으로 바뀌는 것도 경험한다. 이때 나타나는 가치가 숭고다.

칸트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찬탄으로 이어지는 이 숭고를 특정 형식이나 이미지로 가둘 수 없다는 점에서 무형식과 무한성의 이미지라고 했다. 그러면 뉴먼 그림의 거대한 크기가 우리 시야의 통제를 벗어나게 하고, 붉은색 면이 무한히 펼쳐질 것 같다는 무한성의 이미지가 숭고와 닮았다는 점이 이해될 것 같다.

살다 보면 공포심과 한계를 느끼는 일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그랬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데서 비롯됐고, 자연이 주는 인간의 한계 각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찾아온 셈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생활방역이라는 다소 약화된 방식이 얘기된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자연의 위협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니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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