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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고뇌의 시간이 잘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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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24 22:04:04 수정 : 2020-04-24 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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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지옥문’

클로드 모네와 인상주의에 의해서 새로운 회화의 길이 열린 것처럼 이 시대의 조각에서도 새로운 움직임과 방향성이 제시됐다. 천재적인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네가 사진 같은 기계적인 묘사나 입체감으로부터 회화를 해방시켰듯이, 로댕은 조각을 기계적인 사실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를 위해서 로댕은 전통적인 조각의 원리를 부정했는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매끄러운 표면처리를 거부하고 표면에 자국을 남기거나 주름을 잡는 수법을 사용한 점이다. 거친 표면을 그대로 남겨서 미완성이며 생성되어가는 상태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조각의 형태란 무한히 변화할 수 있는 돌 속의 잠재적인 형태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고, 예술가의 영감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는 것임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렇듯 로댕은 돌이나 청동 같은 죽은 물체가 미술가의 손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나타내려 했다. 미의 본질은 생명이라는 그의 생각에서였다. 생명을 가장 고귀하고 실감나게 나타내는 방법은 무얼까.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자세나 표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댕은 ‘지옥문’의 인물상들에 인간이 운명적으로 맞이하는 고뇌, 절망, 소외와 죽음 등을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나타냈다. 1879년 파리 공예미술관의 문을 만들기 위해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착상을 얻어 제작했는데, 완성하지는 못했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나중에 만든 독립적인 작품들의 모체 역할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생각하는 사람’인데, ‘지옥문’에 묘사된 인물들을 대변하듯 인간의 삶과 운명, 절망에 관해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자세로 표현됐다. 사색하는 자세와 근육의 움직임은 삶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역동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고뇌에 찬 표정과 웅크린 자세가 거친 표면처리나 근육 묘사 형식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삶과 운명에 대해 고뇌하는 이 인물상이 작품 중앙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모두 힘든 시기인 지금이기에 새삼 뜻깊게 보인다. 이 시간이 잘 지나가겠지.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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