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3월 초가 되면 일명 개공파(開恐派), ‘개강을 공포스러워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곤 했었는데, 올해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개강이 공포스럽기만 하다. 대학가는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를 초비상 상황이다. 개강 일자를 2주 미루어 지난 16일로 결정한 바 있는데, 이후에도 최소 2주 동안은 오프라인 수업 대신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라는 공문이 전달된 덕분이다.
이미 온라인 강의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스쳐 지나간다. 온라인 강의가 ‘양날의 칼’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 강의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대표적 강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학생들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언제든 접속가능하다는 점을 온라인 강의의 매력 포인트로 꼽고 있다.

관련해서 학습자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은 채 자신의 학습 진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도 온라인 강의의 장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수업 시간 자체가 75분 혹은 50분으로 고정되어 있는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수업 시간 중 교수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하다 내용을 놓칠 수도 있기에 100% 이해하는 것이 대체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남다른 장점이 있다. 온라인 강의 수강생들이 이 장점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나아가 이 장점을 충실히 활용하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더불어 “모니터는 사람과 개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명언도 있듯이 온라인 강의는 상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중류층인지 하류층인지, 백인인지 유색 인종인지 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차별을 배제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강의의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서 공들여 제작한 온라인 강의 중에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수강생들의 흥미를 배가(倍加)시킴은 물론 집중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점과 함께 온라인 강의는 명백한 한계 또한 내포하고 있다. 수강생들로부터 나오는 가장 빈번한 반응은 ‘역시 휴먼 터치가 그립다’는 것이다. 정보통신혁명이 시작되면서 향후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직업으로 교사 및 교수직이 단골로 등장했던 적이 있었으나 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든 강의가 머지않아 온라인 속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전망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온라인 강의가 오프라인 강의를 대체하기보다는 둘 사이에 상호보완적 공존이 가능하리란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배경에는 온라인상의 상호작용이 폭증하고 있음에도 동시에 오프라인상의 면대면(面對面)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 또한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는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강의에 대한 일반적 평가 가운데는 ‘온라인 상호작용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왠지 가식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온라인상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방종과 무례함을 표출하는 데 익숙한 불편한 공간이다’ 등의 부정적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들 온라인 강의의 두 얼굴에 대한 평가는 기존에 진행 중인 온라인 강의의 수강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앞으로 2주 동안 대학의 모든 강의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자 온라인에서 진행될 것이다. 대학별로 이 시기의 수업 결손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수업의 질을 담보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빠른 시간 안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닌 데다, 강의의 성격에 따라서는 온라인으로 대체하기 불가능한 경우도 허다한 만큼, 대학가의 혼란과 불안, 실망과 좌절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교수들의 특성상 온라인 친화성이 높지 않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던가.
코로나19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은 우리의 불안을 가중하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돌발적 위기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 온라인 강의라는 사실 또한 명백하지만, 온라인 강의는 나름의 논리와 개발 방식을 갖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사이버대학에서 강좌를 개발할 때 1학기분의 강의 내용을 결정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제작하는 데 최소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교수 개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대학 강의는 파행될 수밖에 없고 수업의 질 또한 일시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할 경우 학사일정 등의 행정 절차 조정에 소요되는 비용 못지않게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부담과 비용에 대해서도 사회적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상호 희생과 양보의 가치를 공유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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