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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가족이 위기에 대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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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02 23:24:01 수정 : 2020-03-02 23: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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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배우자 죽음·실직·질병… 가족의 삶 ‘위기의 일상화’ 경험 / 위기 상황 긍정·낙관적 인식과 ‘가족 자원’여부가 극복 지름길

요즘처럼 왠지 모를 불안감에 분노가 겹쳐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이런저런 근심걱정이 밀려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고령에 당뇨, 고혈압 등의 기저질환이 있는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입장에선 행여라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어쩌나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위험 여부를 알려주는 앱까지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순간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덕분인가, 아침저녁으로 가족과 친지들 안부를 묻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대구에 살고 계신 이모님댁은 안녕하신지 궁금하고, 개학도 미뤄지고 학원도 잠시 문을 닫은 동안 손주 녀석들은 어찌 지내는지도 마음이 쓰인다. 이럴 때 가족들 얼굴이라도 한번 볼까 하다가도 ‘왠지 찜찜해서’ 목소리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스스로를 달래곤 한다.

함인희 이화여대교수 사회학

와중에 가족은 항상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제도라는 주장에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게 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담당해온 가족의 삶은 그 자체로 ‘위기의 일상화’를 경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전에 가족 위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가족의 위기 대응 역량 공식을 제안한 글을 접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C=T-P+R가 그것이다.

 

여기서 C는 가족의 전반적인 위기 대응역량을 지칭하며, 그 역량은 일차로 가족이 직면한 위기가 어떤 종류(Type)인가에 따라 좌우된다. 나아가 가족구성원이 위기를 어떻게 인식(Perception)하느냐 여부도 주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위기를 부정적·비관적으로 인식할수록 대응역량이 떨어지는 반면 긍정적 낙관적으로 인식할수록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된다. 뒤를 이어 가족이 보유한 자원(Resource)이 풍부할수록 위기 대응역량이 증가하리라는 것이다.

 

가족이 직면하는 위기의 종류를 보면 규범적 위기와 비규범적 위기가 있다. 규범적 위기라 함은 대부분의 가족이 가족주기를 지나가는 동안 언젠가는 경험하게 되는 위기를 뜻한다. 출산도 위기의 한 형태요, 배우자의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위기임이 분명하다. 비규범적 위기로는 자녀를 원했지만 불임으로 판명된 경우, 정년퇴임을 기대했지만 중간에 실직한 경우, 장수(長壽)를 바랐지만 뜻밖의 질병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비규범적 위기가 더욱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야기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위기에는 내부적 요인에 의한 것도 있고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도 있다. 실직을 예로 든다면,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대상자가 되듯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적 요인에 의해 실직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요, 자신의 무능함이나 각종 중독 또는 성추행 등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실직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보다 내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가 더욱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한편 위기에는 예상했던 위기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위기도 있다. 배우자의 죽음은 예상되는 위기이지만 자살이나 병사(病死)는 분명 예상치 못한 위기일 것이요, 이제 이혼은 흉도 아니라고들 하지만 자녀의 이혼은 상당한 충격을 안겨줄 것임이 분명하다. 예상치 못한 위기일수록 가족의 위기 대응역량을 감소시키리라는 것 또한 쉽게 추측이 된다.

 

그렇다면 코로나19 확산은 어떤 유형의 위기에 해당할까? 생각해 보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위기요 아무런 준비 없이 다가온 비규범적 위기라는 점에서 가족의 위기 대응역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개별 가족 차원에서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간 위안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한데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여부도 중요한 관건이다. 마치 예기치 않은 실직 상황에서도 개인의 불운으로 간주하여 좌절하거나 자신을 해고한 고용주를 비난하기보다는, 실직 상황을 일단 수용한 후 구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지름길이듯, 현재의 위기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과도하게 두려워하기보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수용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생동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앞에서 누군가를 향해 과도한 책임을 묻거나, 불필요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 등은 위기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가용 자원이 충분할 때 위기 극복 역량 또한 향상된다는 것이 공식에 반영되어 있다. 가족의 자원이라면 경제적 재화가 일순위로 떠오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족구성원 간의 심리적 결속 및 정서적 유대도 소중한 자원이요, 더불어 가족이 보유한 다양한 네트워크도 가족 위기를 극복함에 실질적으로 유효한 자원임은 물론이다.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 개방적 가족이라면, 희생과 헌신과 이타주의의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가족이라면, 위기를 회피하거나 갈등을 덮기보다 위기 극복과 갈등 해소를 위해 적극 소통하는 가족이라면, 지금의 당혹스러운 위기상황을 현명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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