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서로 확전을 피함에 따라 양국 간 충돌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양국이 ‘휴전’ 조건으로 상대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 사항을 고집하고, 타협보다는 압박을 통해 상대국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어 언제든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이하 현지시간) “양측이 단기적으로 군사적 충돌을 피했지만,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개월 내에 또 다른 방식으로 양국 간 충돌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군사적으로 반격하지 않고, 혹독한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의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 미국 측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이란이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지도자들도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이 유엔 헌장에 보장된 자위권 차원에서 비례적 대응을 했고, 종결했다(concluded)”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긴장 고조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는 이란이 더는 미국에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결국 미국과 이란 모두 ‘공격과 응전’이라는 명분을 챙기면서 전면전이라는 파국을 피하기 위한 퇴로를 열어놓은 셈이다. 이란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후 공언한 대로 미국에 보복했다는 것을 대내외에 각인시키고, 미국은 사상자 없이 자국민 보호와 방어에 성공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특히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말 대선을 앞뒀다는 국내 변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다”며 “트럼프는 이란이 물러서고 있다고 했지만, 자신도 빠져나갈 방법을 원했다. ‘강경하게 말하되 무력 충돌은 피한다’는 그의 외교 패턴에 들어맞는다”고 전했다.
정면충돌은 피했지만 미국과 이란은 서로 상대국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 개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친이란 시아파 단체들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에서 미군과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친이란 무장 조직이 ‘대미 항전’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이라크 등에 주둔하는 미군 철수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양국이 서로 요구 조건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며 타협이 이뤄지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NYT는 “이란이 중동에 수많은 ‘대행 그룹’을 두고 있어 이들이 미군이나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미국의 우방국을 겨냥해 문제를 일으키고, 이란이 미국의 국내 시설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계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도 충돌 재개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 합의를 탈퇴한 이후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한하는 등의 경제 제재를 계속해왔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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