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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20대도 사랑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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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3 23:09:12 수정 : 2019-12-23 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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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포기 1순위가 연애 / 사랑·결혼도 당당하게 분리 / 현대인 관계성 인식의 변화 / 20대 사랑 의미 존중해줘야

사랑을 이야기하기 ‘딱 좋은’ 계절,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사랑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젊은 층 사연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던가. 한데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에서 출발해 N포(꿈과 희망, 삶의 가치를 포기)에 이르는 동안 신세대가 포기하는 리스트 1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연애이고 보니, 신세대의 사랑을 둘러싼 속내가 문득 궁금해 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24세를 전후해 결혼에 진입하던 예전과 남녀 공히 30세는 넘어서야 결혼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요즘 사이에는, 사랑 풍경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일단 졸업을 앞둔 대학생에게 연애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답이 의외로 많다. 이 가운데는 아예 사랑이나 연애 자체에 무관심한 경우도 흔하게 발견된다.

언론에선 ‘연애마저 포기한 청년 실업세대’라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곤 하지만, 연애할 여건이 되지 않기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청춘 못지않게 적극 무관심을 표명하는 경우도 빈번한 것 같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는 책이 출간됐을 때 격하게 공감했던 20대 독자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물론, 자신이 비혼주의자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경우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성, 사랑, 결혼의 순서를 묻는 간단한 설문조사에 결혼을 선택지로 넣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35세 아들이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와 부모에게 소개까지 했는데, ‘언제 결혼할 것인지’ 물었더니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관계의 궁극적 목적지는 결혼이었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부모 세대로서는 사랑과 결혼의 분리 앞에서 당혹스럽기만 하다.

20대가 짐짓 연애 전반에 무관심해 보이는 이유는 주머니 사정도 한몫하겠지만 그보다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 내재한 독특한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현대인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몰입적 관계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원할 때 쉽게 관계를 맺고 빠져나오고 싶을 때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네트워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불만족스러우면 딜리트 키를 누르면 된다”는 주장 속에 현대인의 관계성 인식이 가감 없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주장으로는 우리네 소통 수단이 ‘목소리’ 중심에서 ‘텍스트’ 중심으로 이행해 가고 있다는 견해를 들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관계를 유지해 감에 목소리보다 문자를 선호하게 된 이유다. 목소리는 한번 뱉으면 주워 담는 것이 불가한 반면, 문자는 끊임없이 수정·가필·정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요, 그런 만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담기게 마련이란 사실이 목소리를 통한 소통을 기피하게 된 이유라는 점도 흥미롭다. 신세대 입장에서는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해석하고, 배려하는 과정 자체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여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문자로 소통할 경우는 타인의 감정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은 채, 이모티콘을 활용해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생의 연애관을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친구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할 경우 상대방의 배경이나 조건에 대해서는 즉각적이고도 폭넓은 관심을 보이지만, 연애 당사자로서 미묘한 속내나 밀당 과정을 고백할라치면 친구들 대부분이 ‘구리다’는 반응을 보이며 외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정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대세라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가 가까워 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연애관계에 들어가긴 하는데, 관계의 성격을 사랑, 연애, 썸 등으로 정교하게 세분화하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여건이 허락하면 결혼할 수 있는 사이, 아직 결혼을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연인 사이, 좋은 감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썸 타는 관계 등으로 말이다.

사랑의 단계를 이리저리 나누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사랑을 연구하는 대표적 사회학자인 에바 일루즈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여주인공과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여주인공을 비교하면서, 현대사회 진입 후 사랑이 상처를 주는 경험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여성 입장에서 두드러지는 만큼, 상처받기를 꺼리는 여성이나 상처받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선뜻 사랑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연애든 결혼이든 이를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요 관심을 넘어선 간섭이라는 인식이 우세한 가운데 사랑과 연애의 환상 및 고정관념이 다양한 미디어 프로그램을 통해 끊임없이 유통되고 있음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사랑과 결혼의 속성은 시대가 변화해도 불변할 것이요 세상이 바뀌어도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 없는 환상이자 편견임은 물론이다. 20대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를 인정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결혼관을 존중해주는 것이 부모 세대가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 아닐까 싶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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