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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문명을 친근하게… 중동서 태어난 예수 형상도 변했다 [박상현의 일상 속 미술사]

입력 : 2019-10-16 07:00:00 수정 : 2019-10-16 00: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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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시각 어휘와 이미지의 토착화 / 외국에서 건너온 사상이나 문물 / 자국의 제한된 문화적 어휘로 묘사 / 그림으로 예수 표현 금했던 기독교 / 짧은 머리·샌들 신은 청년으로 그려 / 수백년 후 긴머리 백인으로 굳어져 / 김기창 화백의 작품 ‘예수의 생애’ / 조선시대 인물로 재해석 흥미로워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다. 일본식 경차 디자인이 미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미국인들은 아주 신기해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직사각형 박스에 지나치게 작아보이는 바퀴가 달린 디자인은 당시만 해도 일본 밖에서는 거의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일본 도로가 좁다고는 하지만 유럽도 도로 사정은 일본과 별로 다르지 않을 텐데 유독 일본에서 특이한 디자인이 나온 것을 두고 ‘디자인 갈라파고스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박스형 경차 디자인을 설명하던 당시 한 미국 자동차 평론가의 글이다. 그런 신기한 모양의 자동차가 일본에서 생겨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그 평론가는 “일본 전통의 세단의자” 디자인을 이야기했다. 세단의자(sedan chair)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가마에 해당한다. 작은 박스나 지붕이 없는 의자에 높은 사람이 앉고, 하인들이 의자에 붙은 긴 막대를 들고 이동하는 이 운송수단은 사실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중국,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 전 세계적으로 역사가 깊다. 그런데도 굳이 일본의 전통 이동수단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박스형 경차 디자인이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건 다소 억지스럽게 읽혔다.

하지만 그 평론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외국의 문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출발점, 혹은 발생 이유를 찾아야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일본에서 제일 비슷하게 (=박스처럼) 생긴 전통적인 이동수단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뒤지다가 세단의자를 찾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결과 그 자동차 평론가가 맞는 답을 찾았느냐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비슷한 시도는 항상 일어난다. 사람들은 낯선 물건, 낯선 개념을 만났을 때 자신들이 알고 있거나 익숙한 ‘시각적 어휘’를 뒤져서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도 그렇다. 지금은 긴 머리와 수염, 그리고 발등까지 내려오는 통으로 된 긴 옷을 입은 남성의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그 탄생부터 시작해서 2000년 넘는 역사 속에서 예수의 형상을 묘사하는 일을 두고 씨름을 벌여온 종교다. 일단 기독교의 모태가 된 유대교의 율법이 사람을 얼굴을 포함한 모든 형상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엄하게 금했다. (이런 금기는 기독교로 넘어오면서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완화되지만 비슷한 뿌리를 지닌 아브라함계열 종교인 이슬람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예수를 구세주이자 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섬겼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었고, 형상을 묘사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예수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멘 목자로 묘사된 그림(3세기). 로마의 칼리스토 카타콤(지하묘지)에 그려진 그림으로, 최초로 그려진 예수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전형적인 당시 로마 남성의 복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가 지금의 이스라엘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터키 지역, 그리고 로마에 도착하는 초창기에는 예수의 얼굴을 그린 예가 없었다. 하지만 로마에 도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이미지를 그림과 조각으로 옮기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얼굴도 알지 못하는 신을 믿으라고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 세계 종교의 역사가 보여주지만 항상 전통은 교리보다 강하다. 기독교가 그림과 조각을 좋아하는 로마에 도착한 이상 예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결국 기독교가 생겨난 지 300년이 채 되지 않아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 잃었던 양을 찾아 어깨에 멘 ‘선한 목자’ 예수다. 아직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감시를 피해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묘지에서 모였고, 이 그림도 그런 곳에 그려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로마의 청년이다. 허벅지까지만 내려오는 짧은 튜닉에 종아리를 감싸는 부츠형 샌들을 신고, 긴 수염은 보이지 않고 머리카락도 짧다. 미술사가들은 이런 그림이 등장한 이유가 당시 로마에서 그림으로 묘사된 젊은 남성들은 대부분 황제들이었고,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특별히 지중해를 건너 이스라엘 지역으로 여행하지 않는 이상 유대인들이 어떤 차림을 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자신이 가진 시각적 어휘를 총동원해서 할 수 있는 묘사가 이게 전부였던 거다.

하지만 이렇게 외국에서 건너 온 사상이나 문물을 자국의 제한된 문화적 어휘로 묘사하는 것에는 이점도 존재한다. 바로 이질적 문명의 토착화다. 수백 년이 지나 기독교가 유럽 북부까지 퍼져나갔을 때 그들 눈에 전혀 낯선 중동지방의 남자 모습을 한 예수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백인 남자의 모습을 한 예수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쉽게 받아들였겠는지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최후의 만찬’(1952∼53). 김기창은 ‘예수의 생애’ 연작을 통해 예수의 일생을 조선시대의 인물로 재해석했다.

내 대학원 시절 인도미술을 가르치던 한 인도계 교수는 “서구는 불교와 불교미술을 힌두교, 힌두미술보다 좋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기독교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불교를 보면 이해가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교수에 따르면 부처도 예수처럼 젊어서 고난의 길을 걸으며 주위에 진리를 가르치다가 세상을 떠났고, 제자들이 그 사상을 전파하면서 종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불교의 절과 승려제도도 가톨릭 수도원의 전통을 통해 (다소 부정확해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다신교인 힌두교의 신의 개념과 종교의 개념은 유럽인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해서 비슷한 설명틀이 유럽문화에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해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

결국 한 문화가 전혀 다른 문화에 이해되고 이식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문화에 비슷한 어휘가 존재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틀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토착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달라서, 가톨릭의 경우 오래전부터 토착화에 적극적인 반면, 개신교는 이를 조심스럽게 경계해왔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예수의 생애를 그리면서 예수와 제자들을 조선시대 인물들로 그린 것도 개신교에서 자란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라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자동차 이야기로 돌아가면, 자동차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유럽 자동차와 미국 자동차의 미묘한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유럽에서 자동차는 귀족들이 타는 고급 마차 개념의 연장선상에 존재하고, 그래서 유럽 브랜드들이 대부분 비싼 가격의 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지만, 그런 자동차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누구나 탈 수 있어야 하는 이동수단으로 바뀌었다. 포드의 모델 T가 미국 자동차의 선조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대중성 때문이었다. 유럽의 고급 마차는 미국에는 없는 전통이었고, 넓은 땅과 귀족문화의 부재로 인해 미국의 마차는 대중적, 실용적 이동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에 유럽의 자동차 문화도 미국에서 그렇게 토착화 과정을 겪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미국에서 온 가족을 태우고 서부로 향했던 ‘포장마차’의 전통과 사고방식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온 가족을 넉넉하게 태우고도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어야 하는 대형 미니밴과 SUV는 미국적 전통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런 이동수단이 다시 태평양을 건너면 택시로 탈바꿈하기도 하는 것이 토착화의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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