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극도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홍콩 정부가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를 근거로 복면금지법 시행을 밀어붙이면서다. 특히 18세 고교생에 이어 지난 4일 14세 소년도 경찰이 쏜 총에 부상하면서 시위대가 크게 격앙됐다. 시위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홍콩 지하철(MTR) 운행이 지난 5일 전면 중단됐다. 친중 기업 사무실도 집중 공격을 받았다. 경제 문제를 넘어 홍콩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복면금지법 시민 불복종 운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마스크를 쓰고 복면금지법 시행에 항의하는 수천 명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침사추이와 홍콩섬 등 곳곳에서 최루탄과 화염병, 벽돌이 난무하는 등 3일째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또 침사추이 한 빌딩과 몽콕 전철역 승강기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곳곳에서 양측 간 충돌로 불길이 치솟았다.
극심한 혼란 속에 완차이 지역 한 시위자는 굴착기로 도로를 파내려는 시도까지 했다. 또 시위대를 때린 것으로 알려진 한 택시 기사는 시위대에 구타를 당해 얼굴과 머리가 피에 물들었고, 출동한 소방관에게 구조됐다.
지난 5일 0시 복면금지법 전격 시행 이후 이틀째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극단적 반중 정서를 보이며 도심 곳곳의 지하철 역사를 공격하고 친중 기업 사무실을 공격했다.
시민들은 모두 마스크와 가면을 쓰고 “홍콩이여 저항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저항의 상징인 ‘가이 포크스’ 가면도 등장했다. 가이 포크스는 1605년 영국 성공회 수장 제임스 1세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18세 고교생 총상 이후 지난 4일 14세 소년이 또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은 것이 시위 강도를 높이는 촉진제가 됐다. 소년은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았지만, 폭동 혐의로 체포됐다. 한 중국인이 시위대에 의해 구타당하기도 했다. JP모건체이스 홍콩 본사 앞에서 시위대가 중국의 표준어인 푸통화로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라며 항의하는 중국인 직원의 얼굴 등을 수차례 가격하고 안경 등을 깨뜨리는 동영상이 퍼지고 있다.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중신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 지점은 유리창이 깨지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폐쇄회로(CC) TV 등이 부서졌다. 중국인 소유 제과점도 식당, 약국 등도 공격 대상이다. 홍콩 최대 재벌그룹 중 하나이자 친중 재벌로 알려진 맥심그룹 산하 체인점인 센료, 심플리라이프 등이 포함됐다.
SCMP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도 홍콩 지하철은 정상 운행되지 못했다. 낮 12시(현지시간) 기준 94개 역 중 45개만 일부 운행을 재개했다. 그러나 애드머럴티, 몽콕 등 주요 환승역들은 운행이 재개되지 않았다. 침사추이와 코즈웨이 베이 등 도심 상점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현지 전문가들은 홍콩 정부가 대화와 설득을 포기하고, 강제진압을 선택하면서 홍콩 사태가 혼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동영상 메시지에서 “폭도들의 극단 행동으로 ‘매우 어두운 밤’(4일)을 보냈다”고 비판했다. 홍콩 정부는 더 나아가 통행금지법 시행을 검토하고, 현장 체포 뒤 보석석방 기간을 현재 48시간에서 96시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초강경 대응을 이어갈 태세다.
시위대와 시민들도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집회에 나온 한 시민은 “정부의 대응이 터무니없다”며 “젊은이들이 복면금지법에 가로막힌다면 누가 홍콩을 위해 싸울 것인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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