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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부드러움이 지닌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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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30 23:06:42 수정 : 2019-08-30 23: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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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 속 법과 정의의 여신인 디케는 주관성을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눈은 가려져 있고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도 재판관은 교환에서 일어날 법한 이익과 손해를 동등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제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때는 마치 레스보스섬의 건축에서 쓰이는 납으로 된 표준자처럼 유연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적 논리만이 제1순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국 아동법(칠드런 액트) 제1조에는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한다. 영화 ‘칠드런 액트’(감독 리처드 에어)에서는 이성적 논리만을 최우선시하던 런던 가정법원 판사인 피오나 메이(에마 톰슨)의 무의식적 감성의 흔들림을 그린다. 원작을 쓴 부커상 수상작가 이언 매큐언은 전작 ‘어톤먼트’(속죄)에서처럼 딜레마 상황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작은 심리적 파동의 의미를 날카롭게 잡아챈다.

피오나는 한 쪽이라도 살리기 위해, 샴쌍둥이를 갈라 한쪽을 죽여야만 되는 딜레마 상황에서 솔로몬의 지혜 같은 판결을 해야 한다. 이 판결까지만 해도 명쾌하게 한쪽이라도 살리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논리적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문제로 수혈을 거부하는 17세 백혈병 환자의 판결은 만만치 않다. 수혈을 주장하는 병원 측과 18세 이하라는 아동법에 의해 종교적 문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부모 의견이 중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피오나는 아동법의 특징을 최대한 적용해 판결을 내리고자 한다. 철저한 완벽주의자답게 그는 애덤(핀 화이트헤드)을 만나러 병원까지 방문한다. 그의 마음을 열게 해, 그가 치는 기타에 맞춰 노래까지 부르는 감성적 접근과 구체적인 논리로 애덤을 설득해 결국 수혈을 결정하도록 한다. 피오나의 진심에 감동한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녀에게 존경심을 표현한다. 논리적 합리성이 삶의 원칙이던 피오나에게 감성이 촉발한 문제는 그녀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이 영화는 가장 첨예하며 굳건한 논리가 펼쳐지는 법정을 무대로 살아가는 판사 피오나를 통해 부드러움이 견고함을 이긴다는 것을 알지만 천하에 실천하는 자가 없다는 노자의 ‘도덕경’에서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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