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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말 3필은 뇌물”… 국정농단 3년 만에 최종 판단 [대법 '국정농단'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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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30 06:00:00 수정 : 2019-08-30 00: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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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승계 대가 인정”… 다시 뒤집힌 판결 / “朴 前 대통령 뇌물혐의는 따로 분리해 선고해야” / 이재용 재산 국외 도피죄는 원심대로 무죄 확정 / ‘과거와 단절’ 공식입장 표명 / “국민께 심려 끼쳐 대단히 송구 / 경제 이바지할 수 있게 도움을” / 이재용 당장 거취 변화 없지만 / 사업 추진 탄력 붙기 힘들어져 / “삼성에 특혜 없었다고 인정돼” / 李부회장, 횡령 피해 이미 변제 / ‘법관 재량으로 감형 가능’ 분석 / 법조계·정치권 반응 / 특검 “마필 뇌물로 인정돼 다행” / 與 “상식의 승리” 野 “국민들 허탈”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게 준 말 세 마리 모두를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최씨에게 건넨 뇌물 혐의와 횡령액이 2심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여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및 최씨의 2심을 모두 파기하고 재판을 다시 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말 3마리(34억1797만원)는 삼성이 지원한 뇌물이라고 최종 확정했다. 2016년 9월 비선실세가 개입한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지 3년 만에 내려진 사법부의 최종판단이다.

 

“국정농단 재판 다시 하라”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원합의체는 “최씨가 윗선에서 삼성이 말을 사주기로 다 결정이 됐는데 왜 삼성 명의로 하냐고 화를 내는 태도를 보인 건 말 소유권을 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그 뒤 삼성은 최씨에 대해 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실질적인 처분권한이 최씨에게 있는 걸 인정했다”면서 “이후 삼성에서는 마필 위탁관리계약서가 작성되지 않고, 자산관리대장에 말이 등재되지도 않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날 대법원의 결정은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2심은 삼성이 대납한 정유라 승마지원 용역대금(36억원)은 뇌물로 인정했지만 말 구입액(34억원)과 영재센터 지원금(16억원)은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았거나 대가성이 없다며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말 구입액 자체가 뇌물에 해당하고 영재센터 지원금도 삼성의 경영권승계 현안과 관련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지급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의 뇌물 총액은 말 구입비와 승마지원 용역대금 및 영재센터 지원금을 모두 합쳐 86억원이 넘는다.

 

재판부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1·2심 재판부가 다른 범죄 혐의와 구별해 따로 선고해야 하는 뇌물 혐의를 분리하지 않아 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공직선거법상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혐의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제한과 관련되기 때문에 분리해 선고해야 하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향후 박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유죄가 인정된 뇌물 혐의에 대해선 다른 범죄 혐의인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 등과 구별해 따로 선고해야 한다. 범죄 혐의를 분리 선고할 경우 기존 묶어서 선고했을 때보다 형량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은 미르·K스포츠재단 등의 출연금을 기업에 요구한 최씨의 행위에 대해선 강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해 각각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최씨의 경우 징역 20년 및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日 경제보복 힘겨운데… “일할 기회 달라” 삼성의 호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9일 대법원에서 원심 파기환송판결을 받으면서 삼성호(號)는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한·일 갈등과 미·중 패권전쟁,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주력사업 부진 등 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총수 리스크까지 겹치며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된 것이다. 삼성은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문을 내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삼성은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기를 바랐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파기환송판결을 내리면서 이 부회장은 또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다만, 법정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와 뇌물 액수가 가장 큰 재단 관련 뇌물죄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된 만큼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재산국외도피죄는 도피액이 50억원을 넘을 경우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이어서, 형을 감경받아도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최소 징역 5년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당장 이 부회장의 거취에는 변화가 없지만, 재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만큼 경영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 부회장 재판 등으로 인해 미뤄온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과감한 투자가 언제 재개될지 불투명하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서 공격적인 M&A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삼성은 2017년 초 미국 전장업체 하만(Harman) 인수가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8월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계획과 올해 4월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투자계획 등을 발표했지만, 총수 거취에 불확실성이 더해지며 탄력이 붙기 힘든 상황이 됐다. 2017년 이 부회장의 구속수감 당시에도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경영위원회가 거의 열리지 못했다.

 

입장 밝히는 삼성 변호인단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재판을 파기환송한 29일 이인재 변호사(가운데)를 비롯한 삼성 측 변호인단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방청을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저희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드린다”고 토로했다.

 

삼성이 2016년 하반기 국정농단 의혹사건이 시작된 이래 공식적인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 절차가 남았음에도 삼성이 이례적으로 머리를 숙인 것은 대법원 선고를 계기로 국민에게 과거 정경유착 관행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히고 새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 잇따른 수사와 여론재판으로 리더십이 마비되는 악순환에 대한 답답함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다”면서 “리더십 위기 등으로 3년여간 미래 준비를 못 했는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파국을 맞을 수 있으니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절박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삼성 변호인단 “뇌물 공여죄 인정 아쉽다”

 

입장 밝히는 삼성 변호인단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재판을 파기환송한 29일 이인재 변호사(가운데)를 비롯한 삼성 측 변호인단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측 변호인단은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상고심 판결과 관련해 다소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심 때보다 인정된 범죄 혐의가 늘어났기 때문에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태평양 이인재 변호사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금품 지원에 대하여 뇌물 공여죄를 인정한 것은 다소 아쉽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변호사는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와 뇌물 액수가 가장 큰 재단 관련 뇌물죄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법원은) 삼성은 어떤 특혜도 취득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며 “마필 자체를 뇌물로 인정한 것은 이미 원심에서도 마필의 무상사용을 뇌물로 인정해 사안의 본질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법원 선고로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죄는 무죄가 확정됐다. 앞서 이 부회장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1심에서는 재산국외도피죄와 89억원 상당의 뇌물죄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재산국외도피죄를 무죄로 봤고,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여원만 뇌물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형을 감경했다.

 

이 변호사는 “마필에 관해서는 별개 의견이 있었음을 상기해 달라”면서 “마지막으로 피고인들은 이번 일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치게 된 데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죄로 인정된 내용 중 가장 형량이 높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는 횡령 피해를 모두 변제했고, 이 부회장의 경제 기여 노력 등을 감안할 때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정상 참작해 줄 가능성에 기대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유죄로 인정된 부분 중 형이 가장 높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는 횡령액이 50억원이 넘으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데, 이럴 경우 ‘작량감경’이 이뤄지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형법 제53조에 규정된 ‘작량감경’은 재판부가 정상참작사유 등을 고려해 재량으로 형을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징역이나 금고형의 상한과 하한을 모두 2분의 1로 감경할 수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최소 징역 2년6개월까지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는데, 3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의 경우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윤석열 “중대한 불법, 판결로 확인 의미”

 

29일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상고심 판결에 대해 법조계와 여야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쏟아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수사팀장으로 활약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국정농단의 핵심 사안에 대해 중대한 불법이 있었던 사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된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검도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에서 이재용 피고인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고, 마필 자체를 뇌물로 명확히 인정해 바로잡아 준 점은 다행한 일”이라며 “특검의 상고에 대해 일부 기각된 부분은 아쉬운 점이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파기환송심에서는 정치적 고려, 정국 상황을 배제하고 오직 증거와 법률에 의한 엄밀한 심리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며 “문재인정권에서 세상에 드러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총체적 비리, 대통령 일가에 관련한 의혹, 이미 고발된 여러 국정농단 사건들은 오늘 전 대통령의 재판을 지켜보신 많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은 “사법부의 엄정한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번 판결만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법원의 판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 연합뉴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재벌개혁과 적폐청산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과 상식이 반영된 판단으로 환영하고 존중한다”며 “최종 형량은 환송 항소심에서 정해지겠지만 재벌과 남용된 최고권력이 결탁하여 자행된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당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오늘 대법원 판결로 인해 국정농단이 중대한 불법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사태와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한국당은 진정한 과거반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도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에 대한 화답이자,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정의의 횃불”이라고 언급했다.

 

김건호·유지혜·김수미·장혜진·배민영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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