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Libra). 페이스북이 발행하겠다고 밝힌 자체 가상화폐(암호화폐) 이름이다. 천칭자리라는 뜻과 공평, 정의라는 뜻도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통한 ‘금융의 정의’, 곧 ‘정의롭지 못한 기존 금융’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리브라의 백서는 “리브라의 미션은 전 세계에서 통용할 수 있는 간편한 형태의 화폐와 금융 인프라를 제공해, 전 세계 모든 이에게 금융의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메시지와 사진을 주고받듯 디지털 화폐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은 ‘새로운 글로벌 화폐’를 활용해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사용자를 연결하는 블록체인 은행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화폐 패권에 도전하는 공격적인 출사표에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페이스북이나 다른 기업이 은행이 되려고 하면 다른 은행처럼 새로 은행 인가를 받아 금융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발끈했다. 미국 상·하원 청문회에서는 리브라를 놓고 금융 안정성 저해와 통화 정책 무력화, 자금세탁, 데이터 독점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국내에 비트코인 열풍이 불 때부터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며 애써 의미를 두지 않았던 국내 금융당국도 이번엔 달랐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리브라는 기존 가상통화의 문제를 해결, 현재 어떤 가상통화보다 상용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가치를 보장하는 방식이 불분명하고 향후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가능하다면 투기 수단이 될 것을 우려했다. 한발 더 나아가 금융·외환위기가 오면 법정화폐에서 리브라로 자금이 쏠리는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도 지적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금융업의 변화는 금융업과 관계없던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카카오가 2년 전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공인인증서 없는 비대면 계좌개설, 매주 납입액을 늘려가는 적금, 모임 회비를 편하게 관리하는 ‘모임통장’ 등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샀다. 최근 네이버는 결제 사업 부문을 분할한 네이버파이낸셜을 설립하며 금융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온라인 결제서비스 1위 기업인 네이버페이의 많은 이용자와 쇼핑 판매 플랫폼을 바탕으로 네이버는 대출, 보험서비스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업 내의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으로 돌아올 것이다. 다만 다수 이용자의 빅데이터를 갖춘 IT 공룡들이 금융 데이터까지 확보하면 향후 그 영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보다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금융기관에 지워진 사회적 책무가 이들 기업에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리브라가 예정대로 내년에 출시될지, 규제에 막혀 무산될지는 알 수 없다. 출시되더라도 정부, 금융권과 어느 정도 타협과 조율을 거친 금융서비스 형태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하지만 리브라가 실패하더라도 제2, 제3의 리브라는 계속 나올 것이다. IT 공룡발 금융혁신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지, 기존 금융질서를 파괴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금융기술을 맞을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가.
백소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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